The Melody
그리움을 춤추는 손가락 발레리나 오늘날 뉴에이지 음악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뉴에이지 음악의 탄생과 관계 깊으며, 영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힐링이나 요가, 명상용 등으로 쓰이는 음악이다. Aeoliah, 폴 혼, 스티븐 핼펀 등의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우리가 음반 매장에 가면 ‘뉴에이지’ 섹션에서 볼 수 있는 음반들이다. 우리가 ‘뉴에이지 음악’이라 부르는 것은 보통 이 두번째 정의에 해당한다. 조지 윈스턴, 폴 윈터, 윌리엄 애커만, 기타로, 야니, 유키 구라모토, 류이치 사카모토, 케빈 컨, 짐 브릭만, 스티브 바라캇 등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다수파라 할 수 있는 뉴에이지 피아노 음악의 원류는 멀리 19세기 피아노의 시인 쇼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빗방울 전주곡’ 이나 ‘겨울바람’처럼 쇼팽의 감상적이며 회화적인 건반연주가 마음속에 그려낸 이미지는 오늘날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의 연주 속에서 그 명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뉴에이지 피아노 음악은 감상용 음악인 동시에 연주용 음악이라는 참여적 특성을 지닌다. 팬들이 직접 악보 피스를 구입해 연주하면서 수동적인 감상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르화된 뉴에이지 음악들도 그 기능적인 측면은 여전히 유효하다. 뉴에이지 음악의 아름답고 인상적인 멜로디와 수채화같은 풍경을 연상시키는 회화적인 성격은 바쁜 도시의 일상 속에 매몰된 지금 우리에게 휴식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최윤정의 음악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전무후무했던 뉴에이지 붐 시대를 회상케 한다. 이미지를 멜로디로 치환하는 감성이 기시감(데자뷔)을 던져주는 것이다. 요즘도 올드 팝과 쿨 재즈를 즐겨 듣는 애호가들이 많이 있는 것은 음악이 절실했던 시대적 분위기와 꽉찬 퀄리티로 한 음 한 음을 조탁한 아티스트들의 시대가 그립기 때문이 아닐까. 뉴에이지 음악, 특히 피아노 음악도 조지 윈스턴과 유키 구라모토, 케빈 컨이 공존하던 시대가 하나의 ‘좋았던 옛시절(Good Old Days)’의 모델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 클래식 음악에서 지루함을 버리고, 록음악에서 사나움을 버리고 포크에서 가사를 버리고, 필터로 한 번 걸러 투명하게 만들면 탄생하는 음악이 바로 그 시절의 뉴에이지 음악이었다. 따라서 최윤정의 음악은 그녀가 영향받은 류이치 사카모토나 히사이시 조의 반복적이면서 자가 발전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는 동시에, 단순하면서도 투명한, 그리고 객수를 자아내는 여행지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최윤정은 이번 음반 타이틀을 ‘The Melody'로 정했다.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한, 친구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아니면 속삭임을 듣고 있는 듯한, 마음속에 자리 잡을 멜로디. 머릿속에 내내 기억되며 잊혀지지 않는 멜로디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최윤정의 의도대로 모든 곡의 멜로디가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듯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숨을 쉬듯,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멜로디는 일상의 무게만큼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그리움, 사랑, 배려, 아름다움이 포근하게 녹아있다.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면 타이틀곡 ‘See Ya Someday'가 흘러 나온다. 처음에는 간결함과 무던함으로 일관하다. 그 사이에 자리잡고 있던 애틋함이 톡톡 터지듯 하며 점차 그리움으로 이행한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그 과정이 그리는 스토리텔링이 자못 탄탄하다. 이어지는 곡은 피터폴앤메리(Peter, Paul & Mary)의 명곡. '크리스마스 디너(Christmas Dinner)‘를 연상시키는 'Missing You'이다. 예쁜 발레리나가 턴을 하듯 단순한 음형이 반복되면서 점차 회상의 장면으로 바뀌듯 나아간다. 첫 두 곡을 관통하는 정서는 ’그리움‘이다. 미니멀리스틱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는 ‘Ocean Breeze’는 깎아지른 절벽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듯하다. 점차 공간감과 색채감이 서로 중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도맡아온 히사이시 조의 취향이 어렴풋이 묻어나는 ‘Voyage'는 앨범에서 하나의 구두점과 같은, 휴식 같은 여백을 선사하다가 점차 벅차오르듯 절정으로 향하는 구조를 선보이고 있다. 간결한 기도를 그린 듯한 ‘Prayer'는 눈을 계속 감고 있으면 깜깜한 검은색 가운데 검푸르게 맴도는 만화경이나 데칼코마니같은 색채들을 연상시킨다. 스크래치 기법으로 표현한 그림 같기도 하다. ‘Moonlight Melody'는 내게 달 밝은 밤, 애인을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을 떠오르게 한다. 가로등 조각빛을 맴돌던 하루살이들의 비행. 부푼 가슴을 안고 그녀를 만난 하루를 돌이켜보며 어깨 위에 내려앉는 달빛은 그녀의 집 앞에 있었던 조각난 가로등보다 몇 배는 더 밝게 느껴졌다. 알콩달콩한 젊은 연인들에게 적절한 어둠은 오히려 그들을 더 밝아 보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첼로와 피아노의 2중주로 연주되는 ‘December. 31'은 발랄하면서 모던하다. 12월 31일이 생일인 사람들이 모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친구와 걷던 오래된 담벼락에 낀 이끼, 아침에 향기를 발산하는 이름모를 들꽃, 온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은 눈을 밟는 뽀드득 소리가 연상된다. 중간 부분에 ’피아노‘의 사운드트랙처럼 구슬픈 분위기로의 전환이 눈에 띈다. ‘The Rose Melody'는 바람에 춤추는 작은 장미들같이 아기자기하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냘픈 줄기와 잎은 내리는 땅거미처럼 하강 음형으로 스러진다. 이어지는 ‘Choral'은 경건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코랄은 원래 루터파 교회의 찬송가를 의미하던 것이었다. 이들은 바흐의 종교곡과 칸타타에서 풍부하게 화성화되어 나타났다. 자장가를 의미하는 ‘Lullaby'는 간헐적으로 부드러운 아기 뺨에 와 닿는 엄마의 콧바람같이 간지러우면서 평화롭다. 첼로와 2중주로 더욱 풍성해진 ‘The Rose Melody'는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 풍의 바흐‘를 연상시킨다. 마지막 트랙으로 최윤정은 가수 박선주의 ‘Sleepless Forest'을 선택했다. “언제나 떠날 사람처럼 늘 내 곁에 있고/ 영원히 같이 있을 사람처럼 넌 내 곁에 있다. / 나에게 너는 잠들지 않는 숲...” 인상적인 가사 대신 영화 ’라붐‘ 중 ’Reality'를 연상시키는 건반이 여운으로 남는다. 음반을 들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흰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의 환영을 느꼈다. 약동하는 손가락은 발레리나의 턴과 점프 같고, 그리움을 자아내는 멜로디는 발레리나의 시선 같았다. 최윤정의 미덕은 파스텔 톤의 타건 속에 과장과 허식이 없다는 점이다. 과잉과 잉여, 수면부족의 시대에 최윤정의 새 음반은 선식처럼 깔끔하게 다가온다. 2010년 1월 -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 최윤정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최윤정은 대구 가톨릭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하였다. 재학 중에는 모스코바 국립음악원 교수 초청 마스터 클래스 등 다수의 마스터 클래스를 비롯하여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피아노 페다고지 컨퍼런스에도 참가하고 있다. 졸업 후에는 음악전문출판사인 (주)상지원 및 대구 가톨릭대학교 음악대학 산학협력교수로 재직하며 피아노 페다고지와 유아음악관련 세미나에서 500여회 이상에 달하는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앞으로의 일정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세미나 외에도 중앙대학교, 대구예술대학교, 대구 가톨릭대학교, 목포대학교, 공주영상정보대학, 부산여자대학, 계명문화대학, 구미1대학, 수원여자대학, 혜천대학 등 전국 각 대학 음악대학에서 피아노 페다고지와 유아음악에 관한 특강을 진행하였다. 저서로는 대학교재로 “수준별 유아 동요 반주의 이론과 실제(도서출판 파란마음)”가 있으며, 저서와 더불어 유아음악과 피아노 페다고지에 관한 편집에도 많은 참여를 하고 있다. 1집 음반 [The Melody]로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는 최윤정은 2007년부터 “최윤정의 The Piano Stories"란 타이틀로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콘서트에서는 자신의 곡을 비롯하여 유명 뮤지션을 게스트로 초청하고 있다. 최윤정의 음악은 클래식을 바탕으로 다져진 탄탄한 음악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마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듯하다. 국내 뉴에이지 음악계에 또 한 명의 기대되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의 탄생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