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풀이란?
살풀이의 어원은 살을 푼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살풀이는 원래 춤이름이 아니고 장단 이름이다. 무속음악에 쓰이는 장단의 하나. 충청도와 전라북도지방 무가의 중심이 되는 장단으로, 살풀이계장단에는 살풀이·자진살풀이·도살풀이·동살풀이 등이 있다. 살풀이장단은 12/8박자이고, 도살풀이는 6/4박자, 동살풀이는 4/4박자로 각기 다르다. 살풀이장단으로 부르는 무가, 살풀이장단으로 추는 춤, 살풀이장단으로 연주하는 시나위도 <살풀이>라고도 한다. 살풀이춤의 유래는 조선조 중엽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가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 광대예술이 발전함에 따라 창우(倡優)들이 창작한 춤으로 보인다. 살풀이춤의 핵심적인 형식은 손에 수건을 들고 남도무악인 「살풀이」에 맞추어 추는 것인데, 이때 수건을 들고 추는 까닭은 춤을 만들어 낸 창우(소광대)들이 판소리를 할 때 땀을 닦거나 멋(발림)으로 사용한 데서 온 것이거나 아니면 춤꾼이 자기의 감정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살풀이곡을 반주 음악으로 사용한 이유는 창우들이 무당 출신이고 그들은 인간적으로 어두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슬픈 곡을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리광대들을 중심으로 창우들이 한말 때 식량이 풍부한 호남 지방으로 모였기 때문에 이곳의 무악인 살풀이곡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살풀이춤은 사랑방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예술적으로 보여 주는 공연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춤은 원래 살풀이춤이라 하지 않고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이라는 명칭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꾼 한성준이 1903년대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라는 말을 쓴 데서부터 그 명칭이 비롯된다. 그러나 살풀이춤은 한성준이 창작한 춤이 아니라 조선조 중엽 이후 창우나 기생들이 판소리와 병행하여 승무와 같이 연행하였으므로 춤사위의 호칭도 대삼, 소삼, 잉어잡이, 완자걸이 등 판소리 음악의 용어가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춤은 왜정시대에는 기생춤으로서 한(恨)에 치우친 예술로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대학 풍물학과 학생들에게 한국무용의 기본이 되면서부터 한층 고전무용으로 정립된 것이다. 살풀이춤은 경기도 지방에 전승된 김숙자류의 춤과 전라도 지방에 전승된 이매방류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었는데, 김숙자는 작고하였다. 김숙자류의 춤이 섬세하고 고운 면을 가지고 있다면 이매방류의 춤은 구수하면서도 화끈한 멋을 가지고 있어서 대조적인 멋을 보이고 있다. 살풀이 살(煞)을 푸는 춤으로 일명 도살풀이춤 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한해의 액을 막기위해 굿을 하고 '살'을 푸는 춤이 추어졌는데, 무당들이 신행위로서 엄격한 의식성을 갖추었다. 반면에 일반인들은 굿판에서 흥으로 신명에 도달한 일종의 주술성이 있는 허튼 춤을 추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살풀이 춤의 기원은 이러한 굿판의 춤에서 찾을 수 있으며 현재 계승되고 있는 살풀이 춤은 종교적 관련의 춤이 아닌 시나위권의 무악 살풀이가락에 맞추어 추는 아름다운 춤사위로,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굿판에서 추던 허튼 춤은 아름답게 다듬어지면서 뒷날 기방예술의 하나가 되었으며, 이 변천 과정에서 기생들의 한풀이 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호남지방에서는 판소리와 병행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살풀이춤의 춤사위가 점과 선의 조화를 이루면서 은은한 곡선미를 갖추고 있는 이유는 한복의 아름다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며, 동작에 있어서 여백미(餘白美)가 드러나는 것은 동작을 남발하지 않고 절제된 동작으로 표현한데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살풀이춤은 단순한 슬픔의 춤이 아니라 슬픔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에 머무르기 않고 그 비탈을 넘어 정(情)과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려는 인간본연의 이중 구조적 심성을 표현한 춤이라 하겠다. 자료출처 : 한국인의 멋과 맛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