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와 겨울 나그네
1823년 5월경 슈베르트는 친구인 란트하르팅거(Benedikt Randhartinger, 1802~1893) 집에 가게 된다. 마침 친구가 집에 없어 기다리게 되었는데 우연히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시집(詩集)을 보게 된다.
그것은 뮐러(Wihelm Muller, 1794~1827)의 77편의 『방랑하는 뿔피리 연주자의 유작집에 의한 시집(Gedichte aus den hinterlassenen Papieren eines reisenden Waldhomisten)』(1820년)이었는데 슈베르트는 내용에 반해 친구를 기다리는 것을 잊고 책을 가지고 가버렸다.
다음날 친구가 슈베르트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이 시(詩)에 의한 곡을 3곡이나 작곡했고 책을 가져간 것을 사과하고는 곡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one Mullerin)>였던 것이다.
빌헬름 뮐러는 독일의 시인으로 영국 낭만파 시인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영국)의 모방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민요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서정시들이 바로 민요시들을 기초로 하여 탄생된 것이다.
그의 77편의 『방랑하는 뿔피리 연주자의 유작집에 의한 시집』에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 후 다시 뮐러는 1820년부터 『겨울 나그네』를 만드는데 첫 12편의 시를 1823년 잡지 『우라니아(Urania)』에 『방랑자의 노래(Wanderlieder)』란 제목으로 발표한다. 그리고 다시 1824년 『방랑하는 뿔피리 연주자의 유작집에 의한 시집』 제2권에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 전 24편을 ‘인생과 사랑의 노래’라는 부제를 붙여 발표하였던 것이다.
이런 시집을 뮐러는 아들 막스(Max Muller)의 후견인인 작곡가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에게 헌정한다.
슈베르트는 바로 이 뮐러 시집을 접하곤 곡을 붙였던 것이다. 슈베르트 자신의 최후의 가곡집이 된 이 <겨울 나그네>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보다 4년 늦게 1827년 작곡되었는데, 뮐러는 이해 9월 33세로 세상을 떠났고 슈베르트 역시 다음 해 뮐러보다 젊은 나이인 31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30대의 젊은 나이였고, 특히 뮐러는 자신의 시에 곡이 붙여진 사실을 모른 채 세상을 떴다. 곡은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가 세 편을 빼고 20곡으로 만든 것과는 달리 <겨울 나그네>는 24편의 시 모두에 곡을 붙이고 있다.
친구인 슈파운(Josep von Spaun, 1788~1865)은 <겨울 나그네>를 처음 들었을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어느 날 슈베르트가 쇼버(Franz von Schober, 1796~1882)집으로 빨리 오라고 했다.
자신이 작곡한 새 노래를 들려주고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전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24곡 속에 담겨있는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쇼버는 5곡<보리수(Der Lindenbaum)>만 마음에 들고 나머지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슈베르트는
“나는 다른 어떤 노래들보다 이 노래에서 큰 감명을 받았고 그 어떤 노래도 이토록 나를 감동시킨 것은 없었어, 너희들도 언젠가는 좋아하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독일 가곡 중 <겨울 나그네>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 작품은 그의 진정한 백조의 노래이다.’
이 <겨울 나그네>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는 달리 일정한 줄거리가 없다.
열병처럼 그를 사로잡았던 꿈은 이제 사라져 벼려 즐거운 추억이 갑자기 환영처럼 나타나는 땅, 사람의 발길조차 끊어진 그 얼어붙은 땅을 하염없이 걷는 나그네의 모습이 거기에 담겨있다. 젊은이가 그 황량한 여행을 끝마쳤을 때 그가 쉴 수 있는 길은 죽음밖에는 달리 없었다.
19세기 감상적 염세 감정을 나타낸 <겨울 나그네>는 완벽하게 절망한 인간만이 창조해낸 진실 되고 아름다운 노래로 죽음에 대한 동경과 삶의 좌절을 절묘하게 표현한 뮐러의 시와 더불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저명한 평론가 그레이(Cecil Gray, 1895~1951)는
“슈베르트의 천재성은 그가 시의 어휘에 대해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적절한 선율을 만들어 낸 것에 있다”라고 하였다.
이런 면에서 <겨울 나그네>는 4년 전 작품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보다 더욱 진보된 것으로 특히 반주부의 충실한 표현력과 뛰어난 음악적인 심리 묘사와 같은 고도의 수법이 구사되고 있다. 결국 슈베르트는 불과 4년간의 시간을 통해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여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업적을 이루고 있어 그의 천재적 음악 특성이 최고조로 발휘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평론가 비이(Oscar Bie, 1861~1938)는
“만약 다른 사람 같으면 수십 년 걸려서야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는 변화가 그에게 있어서는 불과 수년으로 이루어졌다”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전 24곡을 관류하는 분위기는 한마디로 절망이다. 현실과 환상 사이를 방황하며 상처 입은 젊은이를 고통에 가까운 진지함으로 다루어 극한까지 치닫는다. 거의 병적으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에서는 이런 비애를 맡길 곳도 있었고 또 위로해 주는 소리도 있었지만 <겨울 나그네>에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에 내몰려 낯설고 차가운 눈보라의 겨울 들녘을 맞이하며 염세적인 방랑으로 세상을 등진 자기 파멸적 이방인이 되고 만다.
나그네는 결국 슈베르트 자신의 자전적인 자화상이었고, 외로움 속의 창작, 젊은 시절 사랑의 환멸, 삶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자각, 그리고 무서운 소외감이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독일의 낭만파 화가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년)나 『겨울 풍경』(1811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 이런 <겨울 나그네>의 근본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실연을 당한 젊은이의 정신적 갈등과 체념? 인생을 바라보는 관조의 감흥? 인내심을 통한 인생의 희망적 가르침? 아니면 죽음을 눈앞에 둔 슈베르트 자신의 탄식의 읊조림인가?
듣는 이를 전율케 하는 침울하고 애수에 찬 분위기 이것은 바로 돌아올 길 없는 무(無)로 향한 외로운 여행의 종착점인 것이며, 슈베르트 자신의 장착할 곳 없는 죽음의 형상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돌아갈 곳 없는 예술가의 고독과 좌절, 사랑의 실패, 다가오는 종말에 대한 희망을 잃은 영혼의 노래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이 곡을 부르는 이나 듣는 이의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통한 자기성찰의 진지한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이런 모습은 여러 성악가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다.
참고로 제목으로 통용되는 ‘겨울 나그네(Winterreisende)’는 ‘겨울 여행(Winterriese)’의 잘못된 번역이다.
이런 오류는 일본어의 번역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추측되는데, 일본어로 번역할 때 다비는 ‘여행’과 ‘나그네길’이라는 뜻이 있는데 더 멋스러운 의미로 ‘나그네’를 선택한 것 같다. 어쨌든 그 결과가 그리 나쁘지가 않다. 잘못된 무식한 의역이라고 악평을 하는 이도 있으나 필자도 이 <겨울 나그네>라는 표현에 그리 크게 거부감이 일지는 않는다.
오히려 겨울 여행을 하는 슈베르트의 나그네적인 정취가 가슴에 더욱 와 닿는다. 제목은 중요하지는 않다. 나그네면 어떻고 여행이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슈베르트가 나타내고자 했던 음악 자체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