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게르하르트 휘쉬(Gerhard Husch, 1901~1984, 독일)의 1933년 연주는 인생체험의 심화라는 보편적 이미지를 구현함과 동시에 전쟁을 통해 상실된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시킨 선구자적인 연주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무려 10차례의 녹음을 남긴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 1925~ , 독일)의 연주를 잊을 수 없다.
세계 대전 종식 후 밝은 희망이 넘치는 1947년의 첫 녹음은 신선한 충격을 주며, 피셔-디스카우는 이 곡 연주에 관한 한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하였다.
이런 훌륭한 연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스 호터(Hans Hotter)가 들려준 인생을 관조하는 깊이나 폭을 능가하는 연주는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1941년 독일 함부르크 공연을 시작으로 모두 5종의 연주를 남기고 있다.
1942년 라우하지젠(Michael Raucheisen, 1889~1984, 독일)과 DG 녹음, 43년 라우 하이젠과의 실황 녹음, 54년
제랄드 무어(Gerald Moore)와 모노 녹음, 61년 에릭 베르바(Eric Werba, 1918~ , 오스트리아)와 녹음, 69년 한스 도코우필(Hans Dokoupil)과의 도쿄 실황이 있다.
첫 녹음인 1942년 연주는 느긋한 템포로 부드럽고 따스한 감흥의 절제된 힘을 보여주어 무척 인상적이며, 무어 반주의 1954년 연주는 안정되고 원숙함이 돋보인 가장 완성도 높은 연주라 할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의 두 가지 녹음들은 나이 탓에 감정의 다양한 표현이 되지 못해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
호터의 가창은 다른 바리톤과는 달리 당대 최고의 바그네이란(Wagnerian : 바그너 풍, 바그너 숭배자) 베이스 바리톤(Bass Baritone)의 음성답게 그 특유의 묵직함이 압도적인 위압감과 무게감으로 남다른 감흥을 전하고 있다. 그의 해석은 섬세한 표정보다는 전체적인 감성의 흐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저역(低域)이 뒷받침되는 음성의 고혹적인 자태는 일품으로, 종곡(終曲)인 거리의 악사에서 보여준 깊은 절망은 고통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마치 겨울날의 훈훈한 감정과 고독한 방랑자의 심경을 토로하는 탄식의 노래는 깊은 감동을 아로새기고 있다.
무어의 연주도 연가곡 반주의 뛰어난 통찰력을 통해 가장 적절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섬세한 감정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뉘앙스로 최고 수준의 반주를 펼쳐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호터가 들려준 비극적이며 어두운 정서에 빛나는 절창이 곡의 이상적 해석의 경지를 보여준다. 모노(mono)이지만 지나간 시대의 암울한 정서가 주는 감흥은 현대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으로 마치 어려웠던 시절의 서글픔을 달래는 노래가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피셔-디스카우의 연주보다 이 호터의 연주에 더욱 끌리게 되는 것은, 호터가 보여준 대범하면서도 엄격한 모습이 인생의 뒤안길에 도달한 무언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