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 완주로 제2의 전성기 구가 서혜경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네 곡이다.
하나같이 기교적으로 힘들뿐만 아니라 낭만적인 동시에 정열적인 표현이 요구되는 대곡들이다.
피아니스트에겐 반드시 넘어야 할 숙명적인 음악의 히말라야인 셈이다.
연주자들은 보통 한 곡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1년을 넘게 고생한다. 이번에 출반되는 서혜경의 전곡 레코딩은 일주일 만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다가온다. 이런 일은 유례가 없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 레코딩은 또한 서혜경이라는 이름 석 자를 다시 세계 음악계에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서혜경은 20대 시절 무섭게 떠오른 피아니스트였다.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인 부조니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최연소 우승을 기록했으며, 뮌헨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고, 샤를 뒤투아·리카르도 무티 등 거장 지휘자와 함께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었다.
1988년에는 카네기홀이 선정한 세계 3대 피아니스트에 꼽혔다. 음악계의 대부 아이작 스턴은 서혜경의 집을 찾아 점심을 함께했다.
서혜경의 연주는 남성 피아니스트 못지 않은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연주로 오케스트라를 압도했다.
그녀가 베토벤의 ‘황제’를 협연하면서 카덴차를 연주할 때면 청중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랜드 피아노가 들썩거릴 만큼 파워풀한 연주는 줄리아드 시절의 산물이다. 동양인은 테크닉 위주라는 말이 듣기 싫어 삼손 같은 힘으로 정열적인 연주를 해내려고 애쓴 결과물이라 한다.
병마를 극복한 후 더욱 성숙하고 깊어진 연주
화려한 20대를 거쳐 서혜경의 슬럼프는 30대에 찾아왔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서다.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완고한 아버지, 엄격하게 자식들을 교육시킨 어머니, 세계적인 연주가로 키운 딸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그녀는 거의 피아노를 치지 못했다.
경희대 교수가 된 후에도 뉴욕을 오가며 가정을 돌봐야 했다. 그녀는 점점 잊혀져 갔다. 세계 무대에서 연주할 사람이 왜 캠퍼스에 있나 자괴감이 들어 비가 오면 울고 다녔다. 뼛 속 깊이 고독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고독은 예술의 자양분이 되었으니 그저 잃어버리기만 한 10년은 아니었을 테다.
그러던 중 암이 찾아온 것은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된 녹음을 하러 떠나기 직전이었다. 2006년 10월이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도 서혜경은 녹음을 강행하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면 암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독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러나
“녹음을 강행하면 매니저를 살인죄로 고소하겠다”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녹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의사는 피아노를 칠 수 없다고 말했다. 2007년 4월에 가슴 주변 근육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보통, 수술 후 1주일은 병원에서 회복 기간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사흘 만에 퇴원을 감행했다.
“선생님께서 수술을 제대로 하셨는지 피아노를 한번 쳐봐야겠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면서 그녀는 주치의에게 그렇게 말했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나면 바로 팔을 들어올리지 못한다. 오랜 시간 집중적인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다.
33번의 방사선 치료와 대수술, 8번의 항암치료, 살이 타 들어가는 고통과 날로 심해지는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피아노와 씨름했다. 마침내 서혜경은 2008년 1월, 한국인 최초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동시에 연주했다. 투병 1년만의 초인적인 재기였다.
“피아니스트로서 다시 사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냥 생명만 살리면 서혜경이 아니었죠.”
재기 무대의 성공에 힘입은 서혜경은 전곡 녹음에 도전한다.
지난해 7월 평생 하고 싶었던, 그러나 암 때문에 좌절되었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을 녹음하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이 악단의 상임지휘자인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가 그녀와 호흡을 맞추었다.
주어진 녹음 세션은 1주일. 강행군이었던 만큼 고비도 있었다. 긴장한 탓에 왼쪽 팔에 마비가 왔다. 마지막 한 악장만 녹음을 하지 못해도 전곡 음반은 요원해진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루 쉬면서 응급처치를 했다. 다행히 팔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녹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서혜경에게 라흐마니노프는 특별하다.
시련이 있을 때마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피아니스트로서의 재기를 확인시켜준 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부조니 콩쿠르 우승 후 3년의 슬럼프를 겪고 재기할 때 연주한 곡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병마는 서혜경의 음악세계를 바꿔놓았다.
화려하고 파워풀한 연주에 깊이가 더해졌다. 가슴을 울린다. 일상의 삶도 달라졌다.
오로지 피아노 하나만 알고 살아왔던 그녀가 이제는 사람들과 어울려 등산도 다니고 자전거도 탄다. 피아노 치느라 만나지 못했던 죽마고우는 병이 걸려서야 재회를 했다.
치료 후 처음 낸 소품집 ‘밤과 꿈’에서도 사람들은 그녀의 놀라운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치열함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온한 서혜경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
서혜경은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집착과 완벽주의에서 한발 비켜 서 있다.
그러나 피아노에 대한 애정,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연주만큼은 여전하다.
혼신의 열정은 팬들이 더 알아주는 것일까.
현재 그의 손가락은 한 열성 팬에 의해 100만불의 보험이 들어 있다. 서혜경은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글 : 조윤(음악 컬럼니스트)
출처 : 월간 <안단테> 2010. 10.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