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와 피아노 협주곡 2번

러시아의 평론가 겸 작곡가인 아사피에프(Boris Vladimirovich Asafyev, 1884~1949)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정성이며, 그 서정성은 나긋나긋하고 넉넉한 선율법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그의 모든 작품에는 러시아적인 폭 넓은 늠름한 선율이 담겨있고 그 선율에는 유동성과 경쾌함을 갖추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은 바로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일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1892년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하고 피아니스트로서도 명성이 높았고, 사촌인 실로티(Alexander Siloti, 1863~1945)가 런던에서 그의 피아노곡인 전주곡 Op.3-2를 연주한 것이 인연이 되어 1899년 런던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초청을 받아 영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협회로부터 피아노 협주곡의 작곡 의뢰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귀국 후 교향곡 1번의 혹독한 비판으로 인한 심한 노이로제를 겪고 있어 작곡은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때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애호가이자 의사인 리콜라이 달(Nikolai Dahl, 1860~1939)을 만나 “당신은 협주곡 작곡을 시작하며, 그 협주곡은 걸작이 될 것이다”라는 암시적 최면요법을 통해 그 고통의 굴레를 벗어 던지게 된다. 그리고는 1900년 여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뒤 돌아와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하게 된다.

곡은 다음 해인 1901년 10월 자신의 피아노와 실로티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관현악단에 의해 초연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물론 곡의 헌정은 달 박사에게 이루어졌다.

1악장 모데라토(moderato)는 시작부의 독주 피아노와 현이 마치 종(鐘)과 같이 어둡고 장중한 정열적인 화음으로 펼쳐지는데 정말로 인상적이다. 그래서 흔히 이것을 ‘크레믈린궁의 종’이라고도 한다.
2악장 아다지오(adagio)는 라흐마니노프만의 서정성이 눈부시게 발휘되고 있는데 촉촉한 감미로움은 말 그대로 로맨틱의 정수이다.
한편 종(終)악장인 3악장 알레그로(allegro)는 큰북과 심벌즈가 동원된 강렬하고 당당한 피날레이다.
아사피에프가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을 원천으로 하고 있다’라고 한 바 있듯이 전편에 걸쳐 친근미 있는 선율이 러시아적 분위기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그 스스로가 일급의 피아니스트였던 만큼 피아노가 고도의 기능이 발휘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작곡가의 대표적 걸작으로 친숙하기 쉬운 통속성과 힘찬 박력의 긴장감도 겸비한 시적(詩的)인 정서가 가득한 협주곡이라 하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