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호로비츠) 이야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의 연주로는 단연 신출귀몰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거장(巨匠)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의 집념 어린 연주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이 곡에 대해
‘이 협주곡 3번은 음악과 피아니즘의 모든 요소를 결합시킨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 협주곡이 주는 중요한 것은 소리와 음이 생명력이며 라흐마니노프가 나에게 이 협주곡을 주었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깊은 피아니즘과 러시아적인 유산 그리고 낭만성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기에 호로비츠는 자신에게 아주 걸맞은 작품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더불어 이런 것은 자의적인 환상도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비록 그에게 헌정되지는 않았지만.
호로비츠는 1928년 1월 미국 데뷔에 앞서서 라흐마니노프를 만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를 그의 집에 초대하였고 둘을 곧 가까워졌다. 그리고는 협주곡 3번을 연습하였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로 관현악 파트를 연주하였고, 호로비츠의 연주에 대해 몇 가지 조언만을 하였다.
그의 연주에 대해
“그는 완전히 곡을 삼켜버렸어!”라고 하였다.
호로비츠는 이 곡을 1930년 세계 최초로 코츠(Albert Coates, 1882~1953) 지휘의 런던 심포니와 녹음(EMI)한 바 있다.
그 후 1941년 바비롤리(John Barbirolli, 1899~1970)의 뉴욕 필하모닉과의 카네기 홀 실황(APR), 방송 녹음인 쿠세비츠키(Sergey Koussevitzky, 1874~1951)의 할리우드 볼 심포니와의 50년 연주(M&A), 그리고 화려한 기교가 최고조를 이룬 라이너(Fritz Reiner, 1888~1963)와의 51년 연주(RCA) 그리고 78년 오먼디(Eugene Ormandy, 1899~1985, 헝가리)와의 카네기 홀 실황의 절대적인 연주를 남기고 있다. 또한 같은 해인 1978년 9월 주빈 메타(Zubin Mehta, 1936~ )의 뉴욕 필하모닉과의 실황도 영상으로 남기고 있다. 이렇듯 이 곡에 대한 호로비츠의 집념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1930년 최초 녹음은 라흐마니노프가 이 연주를 듣고, 그도 1940년 오먼디와 녹음을 남기게 된 유명한 것이다.
1941년 바비롤리와의 연주는 전설적인 연주회로 기록되면, 1950년 연주는 쿠세비츠키의 향수에 찬 반주가 일품이다.
라이너와의 연주는 젊은 시절의 정열을 간직한 완벽한 기교가 돋보인다. 이렇듯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훌륭한 것이지만, 말년의 녹음인 1978년 연주가 가장 완성도 높고 긴장감 넘치는 최고의 연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 곡에 많은 집착을 보여준 지휘자인 오먼디와의 뛰어난 협연이 빛난 것으로, 노대가(老大家)의 원숙한 경지를 엿볼 수 있는 감동의 기념비적 연주이다. 그리고 이 연주회는 호로비츠의 미국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1악장에 쓰인 카덴짜는 두 가지 중 비르투오조풍의 고난도의 것을 쓰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첫 번째 작곡된 카덴짜라고 하는데, 작곡자인 라흐마니노프 역시 언제나 이것을 연주하였다. 또한 라흐마니노프는 또 다른 평이한 카덴짜가 곡에 어울리지 않음을 알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으며, 호로비츠 역시 이 평이한 카덴짜를 연주하지 않았다.
호로비츠는 원래 기질의 밑바닥에는 러시아의 슬라브적인 우울과 낭만주의의 잔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것이 가장 잘 발휘된 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는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행한 것으로 74세 나이를 뛰어넘는 실로 놀라운 기록이라 하겠다. 나이 탓에 초인적인 기교의 맛은 덜 할지는 모르나 그 폭발적인 정열에는 변함이 없다.
아련한 러시아적 정취가 감도는 1악장을 지나 감미로운 아다지오(adagio)의 2악장 간주곡(intermezzo)에 이르면 넘실거리는 낭만이 가득한 연주로 이어진다. 오먼디의 관현악은 피아노를 잘 받쳐 주면서도 우아하고 수려한 반주를 펼쳐 독주와 잘 어우러지고 있다.
음울한 정열을 짙게 표출한 연주로 실황의 생생한 긴장감도 일품이며, 피날레의 활력이 극적으로 짜릿한 결말을 이끈다. 정말로 주체하기 힘든 흥분을 일으키는 불명의 연주로 관객의 환호도 말할 수 없이 열광적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