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호터(Hans Hotter, 1909 ~2003, 바리톤)
독일 오펜바흐(Offenbach) 태생으로, 어릴 때 부친을 잃어서 어머니의 고향인 뮌헨으로 이주해서 피아노를 배우고, 소년 시대에 뮌헨 성가대원으로노래를 했는데, 그 때 종교음악에서 감명을 받아 오르가니스트와 합창 지휘자가 될 목적으로 종교음악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던 가운데 마트아우스 뤼머(Matthaus Romer)의 눈에 띠어 그에게 성악 레슨을 받았다.

뮌헨 음악원에 진학해서 성악, 피아노, 오르간을 전공했고, 뮌헨 대학교에서는 철학과 음악학을 배웠다. 연기는 뮌헨 오페라 감독에게 사사했다.

1929년 헨델의 '메시아'의 베이스 대역으로 데뷔했고, 오페라 데뷔는 체코와 폴란드 국경 근처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스피커 역으로 했다(뵘 지휘의 음반이 있다).

이후, 프라하와 브레슬라우의 극장에서 주로 활약했고, 1934-1938년에 함부르크 오페라, 1939년 빈 국립 오페라와 계약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뮌헨 오페라에는 1937년부터 출연했고, 1972년에 고별 공연을 갖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활약했다.

2차 대전 후, 그의 연주 무대는 국제적으로 넓어졌다. 1947년 빈 국립 오페라가 런던 공연을 가졌을 때 호터는 '돈 조반니'의 타이틀 롤로 절찬을 받았고, 이후 영국 Columbia(현 EMI)와 계약하고 레코딩에 본격적으로 참가한다. 1948년 런던에서 한스 작스 역을 맡은 후 매년 코벤트 가든에 초청받았고, 바그너를 중심으로 한 레파토리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50년부터는 메트로폴리탄에도 출연했다. 1952년부터 바이로이트에 출연했는데, 이 때가 그의 경력의 정점을 이룬다.
1952년 보탄과 쿠르베날 역으로 데뷔한 이후 1966년까지 매해 출연했다. 그는 위엄 있는 보탄으로 압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한스 작스와 포크너, 암포르타스와 구르네만츠(후에는 티투렐까지), 마르케 왕, 네덜란드인 역 등 바그너 작품의 거의 모든 베이스 및 바리톤 역할을 다 맡았다. 1966년 빌란트 바그너가 죽은 후에 호터는 그의 유작 '반지'의 연기지도를 위촉받아 1968년 바이로이트에 한 번 더 등장했다.

바그너 역 외에도 그의 오페라 레파토리는 모차르트에서 베르크나 쇤베르크까지 매우 폭 넓게 걸쳐있다.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 역은 그를 능가할 가수가 없을 정도였고, 특히 유명한 역으로는 R.슈트라우스 '카프리치오'의 올리비에, 피츠너 '팔레스트리나'의 보로메오, 베르디 '돈 카를로'의 종교 재판장, '보리스 고두노프'의 타이틀 롤 등이 있다. 특히 '보리스'는 프라하 시절에 전설적인 베이스 샬리아핀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아서, 한때 호터가 가장 자신 있게 부르던 역이었다고 한다.

1970년 이후 호터는 오페라 출연을 자제하고 오페라 연출 및 리트 리사이틀에 주력했다.
피셔-디스카우의 경이적으로 넓은 리트 레파토리에 비하면 조금 좁아 보이겠지만, 이는 호터의 베이스에 가까운 목소리 때문일 것이고, 보통 다른 가수들에 비하면 호터의 리트 레파토리는 결코 적지 않다.

레코드만 하더라도 뢰베,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볼프, R.슈트라우스 등 정통 독일 리트의 작곡가들을 거의 다 포괄하며, 특히 R.슈트라우스는 1944년 작곡자의 80세 기념 연주회 때 초청받아서 부르고 작곡가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호터의 스튜디오 녹음은 그의 명성에 비해 의외로 그다지 많지 않으며, 실황이 꽤 많으나 녹음이 오래됐거나 음질이 불만인 경우가 많다. 그의 대표격인 보탄 역으로 솔티 지휘의 '발퀴레'(Decca, 1965년)와 '지크프리트'(Decca, 1962년)가 있는데, 존 컬쇼가 이끈 기술진의 노력으로 음질도 좋을 뿐 아니라 명실공히 '반지'의 대표반으로 손꼽히는 좋은 음반이다. 다소 고령일 때의 녹음이긴 하지만 표현력 하나는 정말 높이 살 만 하며, 그의 보탄이 2차 대전 후 최고로 평가받는 이유의 단면을 알 수 있다.

크나퍼츠부쉬 지휘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Philips, 1962년 바이로이트 실황), 포크너 역의 카일베르트 지휘 '마이스터징어'(Eurodisc)가 바그너 역이다. 그 외에는 뵘 지휘의 '마술피리'(DG), '그림자 없는 여인'(DG) 등이 전곡이며, 그 외 실황 녹음들이 발매되고 있다.

이 중에는 바이로이트 실황이 많은데, Decca에서 조지 런던을 기용하는 바람에 솔티의 전곡반에서 듣지 못한 '라인의 황금'의 보탄을 클레멘스 크라우스와 크나퍼츠부시의 '반지' 실황에서 들을 수 있다. 물론 음질은 Decca 음반과 비교가 안 되겠지만, 젊을 때의 그의 목소리로 보탄을 들을 수 있다.

그의 리트 녹음들은 피셔-디스카우의 녹음처럼 양에서 압도적이진 않고 겹치는 레파토리도 많지만, 호터의 개성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레코드들이다. 곡에 따라 피셔-디스카우의 약간 밝은 목소리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 어두운 분위기가 필요한 '겨울 나그네'같은 곡에서는 피셔-디스카우와 충분히 동급으로 (취향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평가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도 자신에게 이 곡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4번이나 녹음했는데, 레이블 및 피아니스트가 각각 다르다. 무어와 녹음한 '백조의 노래'(EMI)는 내 사견으로는 그의 최고의 녹음 중 하나로 손꼽힐 자격이 충분하다.

슈베르트, 슈만, R.슈트라우스의 리사이틀(EMI), '엄숙한 4개의 노래'를 포함한 브람스 가곡집(EMI), 시인의 사랑(Preiser), 볼프 및 뢰베 가곡(EMI), 한스 호터의 예술 Ⅰ,Ⅱ집(Decca) 등이 있다.

Testament의 노력 덕에 EMI 시절의 많은 가곡 녹음들을 대부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DG에서 original masters 시리즈로 그의 DG '겨울 여행'과 Decca 가곡 녹음들을 내 주어서 그의 가곡 녹음은 5~6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구하기 수월하다. 그의 팬으로서 매우 기쁜 일이다.

그 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카라얀 지휘(EMI, 1947년 빈 필하모닉)와 클렘페러 지휘(EMI, 1957년 필하모니아) 음반과 카라얀 지휘 브람스 '독일 레퀴엠'(EMI, 1947년 빈 필하모닉), 바흐 칸타타 82번(EMI)이 지금 구할 수 있는 음반이다.

쟈료 출처 : 음악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