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르 그뤼미오(Arthur Grumiaux, 1921-1986)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는 이자이의 뒤를 이어 벨기에의 바이올린 음악을 빛낸 20세기 위대한 바이올리니트스 중의 한 사람으로, 그 우아하고 품격어린 명연주는 생전에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칼날 같은 날카로움과 번쩍이는 기교보다는 듣는 사람의 마음 심연에 원래부터 내재해 있던 심상을 조금씩 배어 나오게 만드는 것이 그뤼미오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독특한 매력이다.

억지로 음악의 어법을 빌어 감동을 강제하기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선율과 세밀한 표현의 섬세함을 통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그뤼미오의 비범함은 자칫 별다른 특색이 없는 연주자로 오인될 가능성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아폴론 같은 남성적인 힘과 태양의 정열로 드세게 다가오기보다는 은은한 달빛과 정결의 수호신 아르테미스처럼 밤새 대지에 촉촉히 내리는 밤이슬 같은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뤼미오 바이올린의 음색은 듣는 사람의 귀를 따갑게 만든다거나 긴장시키지 않는다.
으레! 바이올린 소리는 그런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그의 음색은 평범함 속에 내재된 비범한 재주이다. 아름다운 벨벳의 윤기처럼 귀부인의 몸을 감싼 세련됨으로,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같은 내밀(內密)한 시적 표현으로 단아함을 들려준다. 그뤼미오 연주의 특색은 견고한 무색무취의 순수함에 있다.

그는 수많은 녹음을 남겼고, 넓은 레퍼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흔하다는 것이 주는 깊이의 부재(不在), 혹은 전문성의 부재를 논한다는 것은 옳은 판단이 아니다. 그뤼미오처럼 견고하고 응집력 있는 음색으로 로맨틱한 선율 미를 표현할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의 모짜르트를 들어보라.

혹자에 의해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그뤼미오.
과거에의 막연한 동경에서가 아니라 화려한 테크닉으로 현란하게 활을 그어대고 멋대로 곡을 해석해 내는 분방한 자의성을 개성으로 착각하는 배우 같은 연주자에게서 찾을 수 없는 진지한 무색무취를 찾기 위해 그를 다시 꺼내 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연주는 무즉유(無卽有, 없음은 곧 있는 것이고)하고 유즉무(有卽無, 있음은 곧 없는 것임)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원리를 담고 있다고 해석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20세기 바이올린 연주자를 선대 연주자들에게 받은 연주 방법과 스타일의 영향에 따라 계보(系譜)를 나누어 살펴보면 크게 양대 산맥을 형성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랑베르 마사르 문하의 크라이슬러, 비에니아프스키, 사라사테, 자크 티보 등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이어지는 프랑코-벨기에 악파, 그리고 레오폴드 아우어에서 시작하여 야사 하이페츠, 미샤 엘만, 나탄 밀슈타인 등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악파로 대별(大別)된다고 볼 수 있다.

프랑코-벨기에 악파는 부드러운 비브라토에 우아한 선율미가 특징이라면 러시아 악파는 강렬한 비브라토와 활을 현에 밀착시켜 탄력있고 긴장된 음색을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

물론 계보에 의한 연주자의 구분은 각 연주자의 개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음에 개략적일 수 밖에 없다. 같은 계보 안에 속한 연주자라도 스타일의 측면에서 혹은 태생적인 표현의 리듬감에서 일반적인 공통점을 발견할 수는 있을지언정 변화무쌍한 바이올린 연주의 미묘한 표현과 음악해석이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코-벨기에 악파의 계승자로서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바이올린 음색 또한 잘 정제된 단정함으로 ‘티보의 재래(再來)’라는 형용이 주어졌을 정도로 철저히 프랑코-벨기에 악파의 계보를 이어 나간다.그러나 그뤼미오의 연주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그뤼미오의 연주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조차 부드럽고 우아하게 표현되는 바이올린의 선율에 쉽게 매료 당할 것이다.

아르투르 그뤼미오는 1921년 벨기에의 빌레르페르망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출생했다.
4세때 할아버지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하였고 11세때 우등으로 졸업한 샤를루아 음악원(Charleroi Conservatory)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다.

12세의 나이로 브뤼셀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여기서 알프레드 뒤부아 (Alfred Dubois - 그 역시 벨기에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의 제자)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쟝 압실(Jean Absil, 1893-1974)에게 대위법과 푸가를 배웠다.

1936년 파리로 가 조르주 에네스쿠(Georges Enesco, 메뉴힌의 스승)에게 배웠으며, 앙리 비외탕의 제자였던 외젠느 이자이(Eugene Ysaye, 1858-1931)에게도 사사했다. 그뤼미오에게 있어서 스승 에네스쿠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스승의 가르침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여 연주와 레코딩에 임했다고 말한바있다. 이것이 프랑코-벨기에 악파의 주류를 이루는 사제관계다.

1939년 Henry Vieuxtemps(비외탕)상과 Francois Prume를 수상했으며, 1940년 벨기에 정부로부터 Prix de Virtuosite를 수상했다. 1943년 Brussels Philharmonic Orchestra과 함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여 첫 데뷔무대를 가졌으며 또한 1945년 영국에서 BBC Symphony Orchestra와 협연무대를 가졌다.

그는 한때 '제2의 자크 티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티보의 연주스타일에 충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뤼미오는 계보상으로 볼때 프랑크-벨기에 악파의 계열에 속하며, 비외탕과 이자이, 그리고 스승인 에네스쿠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물려받은 귀중한 존재였다. 언제나 고품격의 깊은 맛을 잃지 않으면서 연주 그 자체에 자신의 인격을 모두 담아낸 참연주자의 귀감을 보여준것이다.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는 동안에는 공개연주회를 자제하고 2차 대전 후에 한때 프로아르테 현악 4중주단 멤버로도 활동했는데, 얼마 후 다시 솔리스트로 나서서 유럽무대에 두각을 나타냈다. 프랑크-벨기에파를 계승하는 그의 특징은 단정하고 우아한 점이며, 특히 바로크 음악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았다.

국제적인 연주경력이 다른 연주자들보다도 늦긴 했지만 굉장히 빠른 명성을 얻었다.
1949년 스승 알프레드 뒤부아(Alfred Dubois)가 세상을 떠나자 브뤼셀 왕립음악원은 그 뒤를 계승할 교수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로 그뤼미오를 지목했다. 그로부터 세상을 떠난 86년까지 그뤼미오는 전통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1973년 벨기에 보도앙 1세로부터 음악적 공헌을 인정받아 남작 칭호를 받았다.

그뤼미오가 1986년 브뤼셀에서 65세라는 완숙기에 이르러 돌연히 사망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콜린 데이비스와 협연한 모짜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집이 그의 대표적인 유산으로 남아있다.

그뤼미오의 레코딩은 30여종에 이르는데 거의 필립스에서 나왔으며 EMI, Belart and Music & Arts 에서도 볼수있다. 주로 연주된 작곡가는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슈베르트, 브람스이며 라벨과 드뷔시의 작품들도 만나볼수 있다.

그의 음악적 인생에 가장 기쁜 시절은 아마도 클라라 하스킬과 함께 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뤼미오는 50년대 들어 클라라 하스킬과 듀오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의 음악 스타일은 너무나 완벽히 들어맞았으며, 이들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의 연주(필립스)는 이 분야에서는 전설적인 명연으로 남았다.
물론 낭만주의 협주곡들을 녹음해 남기기도 했지만 그뤼미오의 연주는 후기 바로크에서 고전주의에 걸친 레퍼토리, 그것도 특히 실내악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사실이다. 두 사람은 서로 존경하는 파트너가 되어 열심히 연주활동을 하였지만 하스킬이 기차 플랫폼에서 떨어져 사망한 후 연주자보다는 교수로서의 생활에 더 전념하였다. 단, 독주연주, 그뤼미오 앙상블과 함께한 모차르트 현악 5중주, 그리고 그뤼미오 트리오와 다양한 셀렉션을 함께 했을 뿐이다.

그뤼미오의 연주들은 조금 빠른 듯한 템포설정 속에서 유려함과 우아함을 빚어내는 세련미를 발하는 것이다. 거기에 균형감과 양식감이 잘 갖추어진 느낌을 주는 단정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낭만에서 현대를 거치며 무르익은 연주법을 제대로 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부각되고 있는 원전 연주가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런 특징은 더욱 명확히 살아날 것이다.

이들에 비한다면 훨씬 강건하고 명확하며 거추장스런 장식들을 배제한 것으로, 듣는 이들에게 곁가지보다는 구조적 핵심에 치중하게 한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의 경우(필립스), 그뤼미오의 연주는 바흐적이라기 보다 훨씬 모차르트적이다.

텔레만의 12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환상곡(필립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얘기를 할 수 있다. 바로크적이라기보다 고전적인 취향인 것이다. 이런 해석이 더 듣기 편하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취향의 문제일뿐이다.


Yehudi Menuhin, Arthur Grumiaux, David Oistrakh


■ 앨범

01.Mozart - 4 Sonatas For Piano And Violin / Grumiaux, Haskil
         Arthur Grumiaux, Violin,
         Clara Haskil, Piano


02. Beethoven, Bruch - Violin Concertos / Grumiaux, Et Al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Philharmonia Orchestra,
         Sir Colin Davis, Conductor,
         Heinz Wallberg, Conductor,
         Arthur Grumiaux, Violin



03. Mozart - Violin Concertos (Complete)
         Arthur Grumiaux, Violin
         London Symphony Orchestra,
         Colin Davis, Conductor,


04. Arthur Grumiaux - Philips Recordings 1955-1978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New Philharmonia Orchestra,
         Guller Chamber Orchestra,
         Les Solistes Romands,Ensemble,
         Edo De Waart, Conductor,
         Jan Krenz, Conductor,
         Arpad Gerecz, Conductor,
         Leon Guller, Conductor,
         Heinz Wallberg, Conductor,
         Arthur Grumiaux, Violin,
         Robert Veyron-Lacroix,Harpsichord,
         Egida Giordani Sartori,Harpsichord,
         Paul Crossley, Piano


05. Bach - Complete Sonatas & Partitas For Solo Violin / Grumiaux
         Arthur Grumiaux, Violin,


쟈료 출처 :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