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랄드 무어(Gerald Moore, 1899 - 1987)
영국의 피아니스트.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조역이나 단역으로 평생을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무대인으로 생활해야 하는 기악 연주자라면 화려한 독주자를 처음에 동경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조역에게 조명이 비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역들과 잘 어울리면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하는 사람이 없다면, 주역들의 기량도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는 법이다.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없이 제대로 된 협주곡을 기대할 수 없듯이, 가수의 리사이틀에서 호흡을 잘 맞춰 주는 예민한 반주자 없이 훌륭한 리사이틀을 들을 수 없음을 경험 있는 감상자는 누구나 안다. 하지만, 반주자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는 의외로 오래지 않다.
그것도, 한 겸손하면서도 탁월한 예술가가 없었다면 훨씬 늦었을 게다. 자신의 은퇴 무대에서 "Am I too loud?"라 말해 관객을 폭소시키던 인물, 그가 바로 제럴드 마틴 무어(Gerald Martin Moore)이다.

그는 영국 워트포드(Watford) 태생이다.
그 지역 음악원에서 배운 후 일가와 함께 14세 때 캐나다로 이주해서 마이클 햄버그(Michael Hambourg)에게 배웠다. 그가 자신의 아들인, 유명한 마크 햄버그(Mark Hambourg)에게 제럴드를 소개했으며, 제럴드는 20세 때 영국으로 돌아와 마크 햄버그에게 사사했다.

캐나다에서는 독주와 반주 양편으로 출연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독주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으며, 영국에서 마크 햄버그에게 배운 후 독주로 나갈 결심을 했는데, 그의 마음을 돌린 사람은 Sir 서품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지휘자며, 피아니스트와 지휘 양쪽에서 탁월한 반주자였던 랜던 로널드(Landon Ronald)였다.

영국의 테너 존 코우츠(John Coates)의 반주를 1926년부터 5년간 맡은 뒤, 표도르 샬리아핀, 존 맥코맥(John McCormack), 알렉산더 키프니스(Alexander Kipnis), 매기 테이트(Maggie Tate), 엘레나 게르하르트(Elena Gerhard), 엘리자베트 슈만(Elisabeth Schumann), 페리어, 플라그슈타트, 호터, 티토 고비(Tito Gobbi), 제프리트, 슈바르츠코프, 피셔-디스카우, 프라이, 루드비히, 데 로스 앙헬레스, 자네트 베이커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부분의 유명 성악가들과 공연한 외에, 카잘스, 미샤 엘만, 가스파르 카사도(Gaspar Cassado), 라이오넬 테티스(Lionel Tettis), 메뉴힌, 윌리엄 프림로즈(William Primrose), 포이어만, 푸르니에, 슈타커, 데니스 브레인, 뒤 프레 등 기악 주자와도 연주하여 파트너를 가리지 않는 다재다능함을 과시했다.

무어가 어느 젊은 예술가와 새로 리사이틀을 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별이 떠오르는군"이라 말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떨친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은 모두 독주자로서였다.
무어는 단 한번의 독주회도 가지지 않고 오직 평생을 반주자로서 보낸,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

1967년 로열 페스티벌 홀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뒤에도 1973년까지 프라이 및 피셔-디스카우와 녹음을 했으며, '반주자의 발언' 등 반주에 대한 저작도 몇 있다.

기악에서의 반주뿐만 아니라 노래의 반주, 특히 슈베르트, 슈만, 볼프 등 가곡의 반주는 단지 노래를 받쳐 줄 뿐만 아니라 노래를 끌어내고 빛을 발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높은 음악성이 요구되며 반주의 잘잘못은 가곡 연주에서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다투어 무어의 반주를 받고자 원했던 까닭은 그가 이러한 반주의 원리에 투철하였기 때문이며, 또 그만큼 탁월한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참으로 뒷그늘에 묻혀서 음악을 해온 위대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가 얼마나 적응력이 뛰어난 예술가였는지는, 그와 함께 일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찬사 뿐 아니라 레코드로 남은 곡들을 보아도 명백하다. 물론 반주자가 자기 마음대로 곡을 고를 수는 없기에, 많은 연주가와 공연하면 다양하고 잡다하기까지 한 곡들을 다루게 되지만, 무어의 경우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양과 질에서 핵심적이라 할 독일 리트는 물론이고, 크리스토프와 러시아 가곡, 테이트와 드뷔시 가곡, 고비와 공연한 이탈리아 민요, 데 로스 앙헬레스와 연주한 스페인 레파토리 등에다가 기악 반주까지 합하면, 정말 그에게는 연주할 수 없는 반주 레파토리는 없었던 것 같다.

슈베르트 등을 자신이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설명하는데, 유머도 곁들인 그의 유창하고 재미있는 화법은 그가 어떻게 그리도 많은 예술가들과 공연할 수 있었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데 로스 앙헬레스는 "그는 내 최고의 반주자였습니다.내가 기분이 저조한 채 있도록 절대로 내버려 둔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서 유명 예술가들을 매료시키고 다투어 그와 공연하기 원하게 만들었다던 무어의 매력을 알 수 있다.

그의 레코드 전 목록을 나열하기는 이 분야의 전문가라도 벅찬 과업이다.
1920년대에 HMV와 계약한 후, 1973년 피셔-디스카우와 슈베르트 가곡 전집을 완성할 때까지 그는 반세기 동안 마이크로폰 앞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 중에 몇 개를 꼽기는 대단히 어렵다.

우선, 반주자의 숙명으로 인해 무어에게 촛점을 둔 레코드는 일반 반주 레코드에 비해 훨씬 적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무어는 이 분야의 개척자인 만큼 그런 레코드가 있다. 바로 1967년의 은퇴 연주회 실황인 'Tribute to Gerald Moore(EMI)'이다.

원래 월터 레그가 기획하여 슈바르츠코프, 피셔-디스카우, 데 로스 앙헬레스를 출연시킨 이 실황 녹음은 최근에야 그 날의 전체 연주 곡목을 담아 2CD set으로 제대로 발매되었는데, 성악가의 리사이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권해 볼 만 하다.

아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곡은 '고양이 2중창'일 것이다.
자신의 짧은 말에 이어 슈베르트 'An die Musik'을 피아노 독주로 편곡하여 연주하는데, 50년을 반주라는 음악의 한 분야에 공헌한 그의 업적을 돌이켜 볼 때 경외감을 억누를 수 없다.

2LP를 2CD로 옮길 때의 여백에는 보너스로 성악가 외에 메뉴힌, 레온 구센스, 뒤 프레 등 기악 연주자들을 반주한 녹음과, 4손 피아노로 바렌보임과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을 연주한 것도 들어 있다. 이런 '독집' 외에 그의 본령이라 할 리트 반주 음반으로는, 거장 피셔-디스카우를 받쳐 준 음반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모노랄 시대부터 시작하여 수없이 많으므로 부득불 선별해야만 하는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1966~72년의 녹음인 3권의 슈베르트 가곡 전집(DG)이다. 3대 가곡집의 모노랄과 스테레오 녹음(EMI)이나 유명 곡들의 발췌 녹음들(EMI) 보다는, DG 쪽이 체계적으로 구하기 쉽고 저렴하다.

가곡의 팬이라면 특히 3대 가곡집이 든 3권(낱장 또는 3장 세트로 구할 수 있다)은 필수며, 몇 가지로 발췌가 있으므로 아무리 버짓이래도 21장을 한 번에 사기 망설이는 분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도 있다. DG에는 녹음이 하나 더 있는데, 지금 originals 시리즈로 나와 있는, 슈바르츠코프와 피셔-디스카우의 반주를 맡은 볼프 '스페인 가곡집'이 유명하다.

EMI의 다른 녹음은 슈만 '아이헨도르프 가곡집', 볼프 '뫼리케 가곡집', 브람스 가곡들, R.슈트라우스 전집 등이 있다. 그 이외에는 거의 EMI의 녹음인데,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슈바르츠코프와 호터를 받쳐 준 녹음들이다.

한스 호터의 '겨울 여행'과 '백조의 노래'는 피셔-디스카우의 녹음과 아울러 꼭 추천하고 싶은 걸작이며, 브람스 가곡집과 볼프 가곡집, 아쉽게도 부분적으로만 스테레오로 나온 독일 가곡 선집도 매력적이다.

슈바르츠코프를 반주한 녹음의 양은 피셔-디스카우 다음으로 많은데, 피셔-디스카우도 가담한 볼프 '이탈리아 가곡집'과 브람스 '독일 민요집'을 위시해서 '괴테 가곡집', '여성을 위한 가곡집', '이탈리아 가곡집'중 여성용 가곡의 구녹음, 'Song book' 1~4집, 제프리트도 참가한 듀엣 등을 볼 수 있다.

그 외 프라이와 베토벤 가곡집(EMI), '백조의 노래'(Philips), 볼프 등(Decca), 루드비히와 '여인의 사랑과 생애', 데 로스 앙헬레스와 리사이틀 및 피셔-디스카우도 참가한 듀엣, 제프리트와 모차르트 가곡집, 로텐베르거와 리사이틀, 베이커와 프랑스 가곡집, 슈만의 슈베르트 가곡, 크리스토프와 무소르그스키 가곡, 테이트와 드뷔시 가곡, 플라그슈타트와 바그너 등(전부 EMI)이 유명하다.

기악 반주로는 메뉴힌과 멘델스존 소나타와 '악마의 트릴' 등을 포함한 리사이틀, 포이어만과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토르틀리에와 드뷔시 소나타, 푸르니에와 'Cello Encores', 'Cellist's Hour'의 2장(모두 EMI)이 있다. 푸르니에와 한 독집은 LP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인기 있는 음반인데, 지금은 다행히 Introuvable 시리즈 중에 대부분이 들어가서 CD로 들을 수 있다.

독주자의 리사이틀 앨범에서 'with piano accompaniment'라고만 표기된 경우를 상당히 볼 수 있다. 반주자에 대한 인식이 겨우 그 정도, 익명이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알렉산더 키프니스는 자신의 독집이 나왔을 때 반주를 맡은 제럴드 무어의 이름도 같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품위가 손상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주자의 위치를 지금 정도로 혼자 확립한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뒤를 이은 제 2세대 전문 반주자들, 에릭 베르바(Erik Werba), 제프리 파슨즈(Geoffrey Parsons), 어윈 게이지(Irwin Gage) 등의 등장도 무어가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서구 유명 음대의 피아노과에는 모두 반주 과정이 있으며, 배우는 것도 매우 많고 힘들다고 한다.
물론 무어 없이도 시대의 흐름 상 누군가는 반주의 중요성을 인식했겠지만, 훨씬 늦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가장 자주 공연했던 파트너 중 하나인 피셔-디스카우가 그 탁월한 솜씨로 독일 리트의 인식을 세계화했다는 평가를 받듯이, 무어는 "피아노에 앉은 사람이 그 날의 연주회를 성공시키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을 현실로 보여 준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 글 출처 : 이영록의 음악페이지




■ 앨범

01. Schubert - Winterreise / D. Fischer-Dieskau, Gerald Moore
         Dietrich Fischer-Dieskau (Bass Baritone)
         Gerald Moore (Piano)


02. Hans Hotter - Wolf Lieder Recital / Gerald Moore
         Hans Hotter (Bass Baritone)
         Gerald Moore (Piano)


03. Schubert - Lieder / Dietrich Fischer-Dieskau, Gerald Moore [Box set]
         Dietrich Fischer-Dieskau (Bass Baritone)
         Gerald Moore (Piano)


04. A Tribute to Gerald Moore - Dieskau / Moore / Schwarzkopf / Victoria
         Gerald Moore (Piano)
         Elisabeth Schwarzkopf (Soprano)
         Victoria de Los Angeles (Soprano)
         Dietrich Fischer-Dieskau (Baritone)


05. Wolf - Italienisches Liederbuch - Fischer-Dieskau,Moore, Schwarzkopf
         Dietrich Fischer-Dieskau, Tenor,
         Dame Elisabeth Schwarzkopf,Soprano,
         Gerald Moore, Piano


쟈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