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은 런던의 한 비평가로 부터 "신을 위해 모짜르트(Mozart)를 연주한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가혹한 운명을 건반으로 승화시켰던 슬픈 전설로 남은 피아노의 성녀였다.

클라라 하스킬은 자신에게 다가 왔던 무수한 시대의 고난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바람처럼 스러져 간 20 세기 최고의 모짜르트 스페셜리스트였다.

러시아 피아노계의 대모이자 바흐 연주의 권위자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구소련이 자랑하던 레이블 '멜로디아'의 간판 피아니스트였다. 젊은 날의 그녀는 처음으로 잘츠부르크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서유럽 예술계에 아직은 어두웠던 그녀에게 경험 많은 한 선배가 조언을 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가면 카라얀이란 젊은 지휘자의 연주를 꼭 들어봐라. 그는 지금 젊은 토스카니니라고 불리고 있는, 가장 주목할 만한 떠오르는 신인이야."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니콜라예바는 그 조언에 따라 카라얀의 콘서트 티켓을 구했다.
그 명성만 들어온 카라얀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서, 그녀는 음악회가 시작될 때까지도 카라얀과 협연할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음악회가 시작되자 처음 보는 어떤 여자가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녀의 독특한 모습은 니콜라예바의 눈을 사로잡았다.

"몸은 뒤틀려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마녀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카라얀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건반으로 손을 옮기자 곧 나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실로 내가 평생 동안 들은 최고의 모차르트 전문가였다.

그녀의 마력은 너무나 강력해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다시 울려퍼질 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풍부하면서도 자연스런 음이 오케스트라로 전달되어 지휘자마저 마술에 걸려 있었다. 그녀 덕택에 그들 모두는 음악적 진실을 접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콘서트가 되었다."

라고 회상했다.

당시 니콜라예바를 그토록 감동시킨 충격적인 연주를 들려준 그 피아니스트는 자기 손으로 머리조차 제대로 빗지 못하는 꼽추였으며, 쪼그러들어가는 몸뚱이를 지탱하기 위해 등과 허리를 보조대로 감싼 채 연주를 해야만 했던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1895~1960)은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유태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그녀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홀로 남은 어머니는 그녀를 극진한 사랑으로 키웠다.

하스킬을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에피소드는 그녀의 천재성에 관한 것들이다. 가령 그녀의 나이 6살 때 하스킬은 모차르트 소나타의 한 악장을 단 한번 듣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따라 쳤으며, 그 악장 전체를 다른 조로 바꾸어서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10세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 그 곳에서 정상의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에게 작곡과 이론을, 최고의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5세의 나이로 파리 음악원을 수석 졸업했다.

그러나 신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18세(1913년)에 발병하여 숨지던 그날(1960년)까지 일생동안 병마와 고독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간 병은 '세포경화증(Sclerosis)'이라는 뼈와 근육이 붙거나 세포끼리 붙어 버리는 불치의 병이었다.

그녀는 이후 4년간 피아니스트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해야 할 시기에 몸에 깁스를 댄 채 살아야 했으며 당연히 연주도 할 수 없었다.
불행한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병의 후유증으로 그녀의 아름다움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고, 보기 흉한 꼽추가 되어 버렸다. 20대의 나이에 젊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병마와 싸워 일어난 그녀는 다시 연주활동을 시작했고, 다시 예전의 인기와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1921년에 모차르트를 연주하며 화려하게 재기한 그녀는 1924년부터 캐나다와 미국, 영국을 오가며 이자이, 카잘스, 그뤼미오 등 많은 당대의 대가들과 함께 연주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행복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녀에게 또 다른 고난과 시련을 안겨 주었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그녀는 남프랑스의 마르세유로 피신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극도의 공포와 피곤으로 인한 뇌졸증을 일으켰다. 실명의 위기에 부닥쳤으며 각종 신경계에도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유명한 유태계 의사가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달려왔고, 어려운 수술을 통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스킬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한 번 돌아섰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그녀는 전쟁 기간 동안 마르세유 근교에 숨어 지내야 했다. 당시 그녀에게는 바이올린 한 대와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전쟁이 끝나자 마르세이유를 경유해 스위스로 입국한 하스킬은 스위스와 네덜란드를 활동의 기반으로 삼게 된다.

그 시기를 전후로 하여 각광받기 시작한 하스킬은 카라얀을 비롯한 저명한 지휘자나 카잘스, 채플린과의 만남, 그리고 고대하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의 활동 등으로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대부터 필립스와 도이치 그라모폰등에 레코딩을 남기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일류 음악가들과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레코드 녹음은 그녀가 52세가 되던 1947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하스킬의 음악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순수였고, 그녀의 연주는 명징했으며 아름다웠다. 어떤 꾸밈이나 과장없이 다만 마음을 다해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하스킬은 당시 막 떠오르고 있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많은 연주와 음반작업을 했다. 그뤼미오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중 중요한 몇 곡을 녹음했다.

그녀의 청명한 음색이 가장 어울리는 곡이 바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곡들이었다. 또한 그뤼미오 역시 기막하게 아름답고 우아한 바이올린 음색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였으므로 두 사람의 만남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가히 천상의 2중주라고 할 만했다. 그들의 음반은 이 곡들의 연주 중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반들이다.

그녀의 불꽃은 다시 살아났다.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의 녹음은 콘서트 실황이다.
1960년, 스위스 레만 호반의 그림 같은 도시 몽트뢰에서는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지휘하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열렸다. 피아니스트는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그녀는 이날 있었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연주에 자신의 꺼져가는 마지막 숨결을 모두 불어넣었다.
그녀의 비극적인 인생과 그녀가 지금 받고 있는 육체적 고통을 생각한다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연주였다. 특히 제2악장은 그녀 특유의 영롱한 빛을, 그러나 흔들리며 꺼져가는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몽트뢰는 레만호에서도 황혼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 연주가 끝난 지 3개월 후에 하스킬은 비극적인 생애를 마감한다. 신은 그제야 그녀를 고통에서 놓아주었다. 이 녹음은 그녀의 유언과 같은 마지막 연주이자, 역사적인 그리고 너무 슬픈 기록이다. 이 실황녹음은 그동안 하스킬재단에서 간직해오던 것으로, 200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음반으로 제작되어 세상에 나왔다.


1960년 12월, 파리에서 그뤼미오와 함께 '소나타의 밤'을 가진 후 기차로 벨기에 브뤼셀역에 도착한 하스킬은 손을 건네는 그뤼미오 부인의 도움을 거절하고 열차에서 내려 걸어가다 홈에서 쓰러지고 만다. 의식불명 상태로 실려간 그녀는 병원에서 잠시 의식을 찾았을 때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공연은 힘들 것 같구나. 그뤼미오씨에게 죄송하다고 전해주렴."

이 말이 그녀가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한 마디가 되고 말았다.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는 다음날인 1960년 12월 7일 이른 아침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클라라 하스킬의 무덤은 프랑스 파리의 몽트파나세 묘지에 있다. 말년에 이르러 하스킬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행운아였습니다. 나는 항상 벼랑의 모서리에 서 있었어요.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 속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피할 수 있었다는 것, 그래요, 그것은 신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가족도 없이 고양이 한 마리와 쓸쓸히 살다 간 슬픈 운명의 거장 클라라 하스킬.
그녀의 연주들을 들어 보라. 고통 속에서 연주하는 협주곡이지만, 그 속에서 울려나오는 그녀의 피아노는 청초하다.
그래서 더 슬프다. 그녀의 피아노 안에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슬픔이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 앨범

01. Mozart - 4 Sonata For Piano And Violin (1984, Philips) / Arthur Grumiaux, Clara Haskil
         Arthur Grumiaux, Violin,
         Clara Haskil, Piano


02. Mozart - Piano Concerto No.13 & 20 / Clara Haskil
         Ferenc Fricsay,
         Rudolf Baumgartner,
         Clara Haskil, Piano

03. Beethoven - Violin Sonatas / Grumiaux, Haskil CD
         Arthur Grumiaux, Violin,
         Clara Haskil, Piano

04. Beethoven - Samtliche Sonaten fur Kavier und Violine / Arthur Grumiaux, Clara
         Arthur Grumiaux, Violin,
         Clara Haskil, Piano

쟈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