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아르헤리치, Martha Argerich (1941 - )
아르헨티나 태생의 피아니스트.
현재 활동중인 중견 피아니스트중에서도 그 활동의 폭과 연주의 완성도 면에서 최고를 보여주는 피아니스트가 마르타 아르헤리치이다. 그녀는 여류 피아니스트로서는 드물게도 다이내믹과 기교를 완벽히 갖춘 연주자로 평가되고 있다.

아르헤리치는 1941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카라무짜라는 이탈리아계의 유명한 피아노 교사한테 엄격한 지도를 받고, 1949년 겨우 8세때 모짜르트와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데뷔하였다. 그때 이미 기술적으로는 더이상 배울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럽으로 건너가 빈, 브뤼셀, 제네바 등에서 굴다, 마드레느, 미켈란젤리, 마갈로프 등에게 사사했다.

특히 굴다는 그녀의 연주를 일일이 녹음을 해서 그녀에게 들려주어 그녀가 자신의 연주를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독특한 학습법으로 그녀를 지도하였다.

그 후, 1956년 연주활동을 시작하여 이듬해 겨우 3주사이에 부조니 국제 콩쿠르,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 출전 모두 1위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국제적 명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것이 1965년 24세 때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이었다. 이 때 1위 입상은 폴리니 이후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입상하였고, 마주르카상도 수상하여 주요한 상을 독점하다시피했다.

그런 뒤 미국, 이스라엘, 동유럽과 소련으로 연주여행의 범위를 확대하고 레코드도 점차 늘게 되었다.
건반위의 여왕이라는 아르헤리치는 80년이 되자 일체의 솔로 콘서트를 하지 않았는데, 뱃푸에서 15년만에 솔로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그해 암에 걸려 2년동안 투명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애연가로 유명하였는데 최근에 건강상의 이유로 금연을 했다.그래서 무척이나 슬프다고 말한다.)

그녀는 프로코티에프 협주곡의 대가로 알려져있는데, EMI에서 전 남편인 지휘자 샤를르 뒤트(Charles Dutoit)와와 프로코티에프 협주곡 1, 3번을 녹음하였다. 그녀와 뒤트와는 비록 이혼은 하였지만 , 평생을 가장 충실한 음악 반려자로서의 역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매년 개최되는 페스티벌과 중요한 콩쿨에서 심사위원직을 맡음으로써 젊고 유능한 피아니트들을 선발하는데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실례로 1980년 International Frederick Chopin Piano Competition에서 이보 포고렐리치는 두 차례 예선을 치루면서 특별상과 비평가상을 거머졌지만, 워낙 그의 연주 개성이 뚜렷하여 찬반논란 끝에 3라운드(본선)에서 탈락하는 이변을 심사위원이었던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포고렐리치는 "천재"라며 그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에 대한 이의을 제기하며 급기야 퇴장한 사건도있었다.

최근에는 마이스키, 기돈 크레머와 Trio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시대의 백만불 트리오로 불려지고 있다.
그녀는 Trio활동을 통해서도 치밀하고도 정제된 음악들 들려주어 음악팬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오늘날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연주가 중 '전설적인'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만한 아티스트는 거의 드물다. 그러나 이러한 수식어를 누구나 거리낌없이 붙일 수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

열정적 카리스마와 즉흥성이 번득이는 연주로 청중을 감동으로 휘몰아가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피아니즘은 분명히 전설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즉흥적인 열정과 정교한 기교를 능란하게 통합해내는 그녀의 연주는 청중에게 다채로운 비전과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비전과 환상은 다분히 예술의 정기(aura)와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면에서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전설적이다' 라는 설명을 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녀의 '전설적인' 연주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주로 낭만적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연주한다면 그녀의 개성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EMI에서 발매된 콘서트 음반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5번 K.503'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담고 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시몬 골드버그, 네덜란드 쳄버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고 있다.

1978년도 녹음이며, 이 레코딩은 아르헤리치가 최초로 녹음한 모차르트 작품이라는 게 특히 주목된다.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는 피상적으로 단순하고 명쾌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희노애락을 잘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몽환적이고 마술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그녀이고 보면, 이 점이 더욱 큰 부담이었겠지만, 빈틈없는 거장적 기교의 소유자로서의 그녀를 확인케 할만큼 여유있는 능란함으로 모차르트를 제시하고 있다.

그녀의 스타일이 모차르트와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우리의 선입관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지성이 번뜩이는 그녀의 분석적 면모가 모차르트의 작품에 정확한 분절과 악상을 다듬는데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여기에 일관된 자기 주장이 투영된 탄탄하고 초점 잡힌 구성력 또한 모차르트의 해석에 큰 원동력이다. 그러나 훌륭한 연주란 연주자마다 가진 고유한 빛깔과 개성이 음악 작품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도 아르헤리치는 좋은 결과를 얻고 있는데, 첫 음을 울리자마자 그녀의 피아니즘이 가진 독특한 향취를 뿜어낸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하인츠 발베르크 지휘이며 1992년 녹음이다.
베토벤에서 아르헤리치는 당당한 품격과 위용을 드러낸다. 쇼팽, 슈만, 리스트,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에서 그녀가 불꽃과도 같이 피어오르는 영감을 연소시켜 강한 흡인력으로 청중을 휘몰아 갔다면, 베토벤과 모차르트라는 위대한 빈 고전파를 섭렵하는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한층 더 매력적이다.

우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빈 고전파와 그녀의 만남이 매우 성공적이라는 점을 넘어서서, 아르헤리치의 일관된 연주철학과 자기 주장이 이 작품들에 반영된 매우 개성적이고 확고한 해석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테면 아르헤리치는 연주자라면 당연히 한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서의 소위 '맛뵈기' 식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 자신도 피력했듯이, 그녀는 작품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 혼신을 쏟아부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섣불리 연주하지 않는다.

이 베토벤과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에도 그녀의 이러한 ‘혼신의 불사름' 을 읽을 수 있고 그래서 의외다 싶은 이 빈 고전파와 그녀의 만남은 더욱 센세이셔널하다.

그렇다면 아르헤리치와 바흐와의 만남은?
1978, 1979년의 진귀한 솔로 리사이틀 음반을 들어보자.

리사이틀 당시 네덜란드 언론은 이 리사이틀을 두고 “기적의 리사이틀” 이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녀는 바흐에서 명쾌하고도 단호한 주법을 선보인다. 또 바흐의 내면에 서서히 침잠해 들어가 사상과 감정의 명암을 처리하는 데 있어 리듬과 템포의 탄력적 변용을 이끌어내고 있다.

역시 그녀가 프리드리히 굴다에게서 배운 음악의 자발성과 즉흥성이 작용한 탓이리라. 그러나 페달 사용은 조심스럽게 절제되어 있어 그녀의 지적인 섬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프리드리히 굴다가 그녀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깊은 것이다.
우선 그녀가 굴다를 자신이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로 여겼다는 것이 그렇고, 그를 통해 매우 환상적인 음악의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 그렇다. 그녀는 굴다에게서 매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교육방법은 매우 독특했는데, 그의 렛슨을 레코딩하여 그녀와 함께 들었던 것이다. 굴다는 그녀 자신이 연습한 내용을 스스로 듣고 자평을 하도록 했다. 그는 제자인 아르헤리치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그녀 자신이 말하고자 하고 생각하는 바를 끄집어내서 이를 표현하도록 권고했던 것이다.

아르헤리치는 보통의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있을 법하지 않는 이러한 교육 방식이 매우 민주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흥미롭고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연주자에게 연습이란 중요한 요소다. 연습에 대한 아르헤리치의 견해는 어떨까?

.“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
하지만 소위 '피아니스트' 라는 전문 직업인이 되는 것이 싫어요. 물론 연습이라는 것은 중요한 문제지요.
그러나 전문 직업인이 되어 순회 연주를 다니는 등 따위의 삶의 방식,
이런 모든 것들은 연주와 음악 그 자체와는 정말 절대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예요.
내가 콘서트 무대에 잘 서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아르헤리치는 청중 앞에서가 아니라 홀로 피아노 연주하기를 즐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글렌 굴드와 마찬가지로 피아노 연주 자체가 즐거움인 아르헤리치는 연습 조차도 하나의 연주로 여길 만큼 피아노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티스트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아르헤리치의 피앙세는 바로 피아노’ 라는 농담이 세간에 오갔을까.

하지만 이런 농담 끝에는 의미심장하게 시사해주는 무언가가 전해져 온다.
그녀가 꼭 ‘피아니스트가 되겠다’ 라는 큰 목적을 가진 동기에서 출발하지 않았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그녀의 콘서트를 고대하는 수많은 애호가들이 뒤따르는 피아니스트가 된 지금에도, 굳이 ‘피아니스트’ 라는 직함을 회피하려는 그녀의 태도에서 진정한 예술가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많은 예술 지망생들이 세계 무대에 우뚝 서려는 포부를 한번쯤은 가지게 되고 이런 포부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분명 아르헤리치라는 피아니스트는 충분한 귀감이 된다.

예술이 예술 외적인 어떤 목적에 지배되지 않고 본연의 자율성을 유지할 때 자기 목적적이고 독자적인 가치를 얻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칸트 미학의‘예술의 무목적성'을 굳이 떠올리게 할 만큼 강한 인상을 풍겨오는 그녀의 이러한 음악 마인드에서 풀어져 나오는 그녀의 연주가 지극히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영감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 같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그녀의 인터뷰 코멘트가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며 우리의 가슴에 다가온다.

"나는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연주해요.
만약 음악이 자연스럽고 자발적이지 않다면 내게 더 이상 음악은 말을 걸어오지 않지요.
사실 오늘날의 음악 해석가들에게 이런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을 보게 되요.
나는 피아니스트라는 위치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건 항상 작곡가와 작품이죠… 때론 피아노가 나 자신을 압도해 나가기도 해요.
물론 이런 현상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어요"

자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