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셀,George Szell (1897 - 1970)
헝가리 태생의 지휘자.
대형 개성형(個性形) 지휘자를 대표하는 푸르트뱅글러를 끝으로, 그런 류의 지휘자는 이제 더 나오지 않았음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다른 스타일의 명지휘자는 계속 있어 왔다.

제임즈 골웨이가 "대단한 기교파로 기술적인 완벽을 추구한다"고 평했던 완전주의자,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치밀하게 연마하여 "나는 실내악의 관점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의 집중력을 요구한다"던 앙상블리스트, 조지 셀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1970 년에 있었던 조지 셀과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내한공연은 당시 좀처럼 외국의 저명한 오케스트라의 직접 연주를 들을 수 없었던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과 함께 대단한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도 감명깊었던 것은 지휘자의 의도가 완전히 악단 구석구석까지 침투되어 있고, 또 그것이 연주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조금도 모호함을 남기지 않는 그 투명한 울림은 지휘자나 악단원들이 24년 동안 고생하면서 얻어낸 것이니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거기에는 처절하기조차 한 인간 조지 셀의 정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그의 부음을 접해야 했다.
셀은 한국에서 돌아간 2개월 후인 7월 30일에 심장마비로 별세하였다. 훈련중에는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는 엄격한 지휘자요, 스테이지 위에서는 금욕적인 기적인(奇蹟人)으로서 연마된 지휘봉을 놀리는 셀이었지만, 개인적인 입장으로 돌아가면 그 처럼 좋은 사람은 없었다.

조지 셀(George Szell, 헝가리인임으로 원래 발음은 '게오르크'가 맞지만 후에 미국으로 귀화하면서 '조지'로 바꿨다.)은 1897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헐가리인, 모친은 슬로바키아인이었다.
그러나 3세때 가족과 함께 비인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음악공부를 하였으므로 비인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리하르트 로베르트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푀르스터에게 사사하여 작곡을 배웠다. 소년시대부터 피아노에 발군의 재능을 보였고 11세 때는 자작인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론도>를 비인 교향악단과 협연하여 데뷔했다.

그러나 다시 만디체프스키와 막스 레거에게 사사하며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17세 때에는 베를린 필하모니와 협연으로 정식으로 데뷔했는데, 그때 자신의 자작 <교향곡>을 지휘했고 동시에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 5 번-황제>를 독주하였다. 말하자면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를 겸하였으며, 지금의 바렌보임 이상이었다.

그 당시 대작곡가이며 지휘자였던 라히르트 슈트라우스가 그를 주목했다.
그리고 1915-1917 년까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조수로써 베를린 국립가극장에서 일했고, 그 동안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1917년 20세가 된 조지 셀은 슈트라우스의 추천으로 오토 클렘페르의 뒤를 이어 스트라스부르 시립극장 수석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의 본격적인 경력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뒤 프라하 도이취 가극장(1919), 다름슈타트 주립 가극장(1921), 뒤셀도르프 시립가극장(1922), 베를린 국립가극장(1924) 등 오페라 지휘자를 역임하였고, 1927 년에는 베를린 고등음악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후진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1929 년에는 다시 프라하 도이취 가극장의 음악총감독으로 취임했는데, 이 지위는 1937 년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그리고 셀은 이 시기부터 HMV의 녹음 명단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라하로 연주 여행을 왔던 카잘스에게 우연히 제안해서 성사되었다는 1937년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녹음은 아직도 명연주로 이름 높으며,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는 런던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모이세이비치, 슈나벨 등과 협연했다. 이 음반들은 아직까지 CD catalogue에 모두 살아 있다.

조지 셀은 본격적인 콘서트 지휘자로서 1937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프라하를 떠나 네덜란드 헤이그 레지덴티 오케스트라(헤이그 필하모니 관현악단)와 글래스고의 스코틀랜드 오케스트라의 상임을 맡으면서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 셀은 우연히 1930년부터 객연했던 미국에 있었는데, 그대로 거기 남아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후에는 귀화하여 이름도 '조지(George)'로 고쳤다.

토스카니니의 초빙으로 NBC 심퍼니를 지휘하기도 했으며, 특히 1942년부터 루돌프 빙이 주도하던 메트로폴리탄에 객연하여 명성을 높였다. 특히 바그너 오페라에 정평이 있었다고 전한다. 아직까지 <보리스 고두노프>나 <탄호이저>, <발퀴레> 등의 실황 공연이 남아 있다.

나중에는 빙과 대립하여 "앞으로 절대 메트에 등장하지 않겠다"며 실제로 메트에서 한 번도 지휘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명성을 지금까지 퇴색시키지 않은 이유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육성한 공로다.
당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에리히 라인스도르프가 상임을 맡고 있었는데, 1945년 셀이 객원 지휘했을 때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1946년 라인스도르프가 떠날 때 후임 물망으로 셀이 올랐다. 그는 전권(全權)을 위임받는다는 조건을 이사회에 내걸고, 이 조건이 승락되자 수락했다. 성장할 조건은 있었으나 아직 유능한 오케스트라 조련사를 만나지 못했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이 역사적인 결단을 기점으로 현재 미국 top 3에 들어가는 거물로 성장했다.

셀은 이사회의 신임을 바탕으로 연주 일정, 프로그램, 단원 임면(任免)등을 모두 결정했다고 하는데, 원래 88명이던 단원을 104명으로 증원했고, 기존 단원의 2/3을 한 시즌 내에 갈아치워 가면서 지금과 같은 충실한 오케스트라로 일궈냈다.

그는 지휘자로서는 대단히 엄격하여 타협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협연자 선정에도 대단히 엄격했다. 피에르 푸르니에의 회상은 유명하다.
"처음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의 프로그램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한 곡과 R.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였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저를 시험대 위에 올려 놓았던 것이죠."
1950년대 초에 이미 세계 1급 첼리스트로 명성을 얻었던 푸르니에마저 그의 시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연주회에서 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바흐를 혼자 연주해야 했다.

클리블랜드의 치밀한 앙상블은 므라빈스키만큼이나 엄격한 훈련에서 기인하는데, 그의 오케스트라 조련은 '보통의 엄격한 수준'보다 훨씬 강력했다고 한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24년이나 이렇게 훈련받은 앙상블과 테크닉은 그의 사후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오케스트라의 핏속에 살아 있다.

한 예로, 90년대 중반에도 셀이 뽑아 놓은 단원들 중 그 동안 1/3만이 교체되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누가 객원 지휘를 오더라도, 단원들은 클리블랜드 시절의 전통 때문에 리허설 때 모두 꼿꼿이 앉아 지휘자만 쳐다본다고 한다.

클리블랜드를 육성하는 도중에도, 2차 대전 후 유럽이 안정되자 다시 객연을 활발히 가졌다.
잘츠부르크 음악제 출연(1948~69)외에 레코딩도 활발해서, EMI에서는 런던 심포니와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DG에서는 단발로 푸르니에가 협연한 드보르작 협주곡, Decca에서는 친하던 클리포드 커즌의 협주곡 반주를 맡아 빈 필, 런던 심포니 등을 지휘했으며 후자와는 교향곡 등도 녹음했다.

특히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와는 관계가 길었는데, 단원들이 셀의 리허설을 감옥 같다고 비꼬긴 했어도 Philips / Decca에 약 LP 5장 분량을 남겨 놓았다. 클리블랜드를 이끌고 참가한 1967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는 당시 객원 지휘를 거의 안하던 카라얀이 특별히 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카라얀은 평시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한다.

그의 마지막 연주 여행은 1970년 5월 말까지였다.
오사카 등을 거쳐 도쿄 우에노 문화 회관에서 22일 연주회를 가졌는데, 이 실황 녹음이 셀 최후의 녹음이다(현재 일본 Sony에서 CD/SACD로 나와 있다). 이 연주 여행 때 우리 나라에서도 연주회를 열었는데, 그 2개월 후인 7월 29일 그는 클리블랜드에서 별세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는 줄 알면서도 연주 여행에 응했다는데, 사인은 골수암이었다.

그의 음악 스타일을 요약하면 간결함, 토스카니니적인 기교적인 완벽함, 오케스트라의 치밀한 앙상블, 직선적이고 (적절하지만) 강한 힘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같은 헝가리 출신인 프리츠 라이너(Fritz Reiner)와 구분이 안 갈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는 앙상블 면에서는 라이너보다 훨씬 더 더 꼼꼼하다.

그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맡을 때 "음악 표현을 위한 이상적인 악기"로 이 오케스트라를 만들 결심을 했다고 말했는데, 만년의 녹음들을 들어 보면 완벽주의자이자 실내악 연주에도 명인이었다던 셀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난다.

셀의 모차르트 교향곡집을 들어 보면, 현과 관의 치밀한 솜씨는 물론이고 특히 <주피터>의 4악장 푸가 처리가 파트당 한 사람씩만이 연주한 느낌을 줄 정도로 탁월하다. 이 까다로운 악장을 제대로 가닥 잡아 처리하기 뿐 아니라 푸가의 구조를 들려 주기는 절대로 쉽지 않은데, 셀은 이 둘을 너무 쉽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주지주의(主知主義)라 할 표현 방식은 가끔 작품을 놀랄 만큼 신선하게 들리게 해 준다.

Sony의 음질 좋은 Masterworks Heritage series에는 셀의 녹음이 꽤 많이 들어 있는데, 특히 바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셀 콤비의 정교한 표현력이 잘 드러난 재미있는 연주다.

그리고 그의 걸작 녹음에서 드보르작을 빠뜨릴 수는 없다.
헤리티지 시리즈에는 교향곡 7~9번(1958~60년의 스테레오)이 올라가 있는데, 매우 훌륭하다고 평판이 자자하다.

결코 우리가 바라는 만큼 보헤미아 냄새가 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의 녹음 치고는 이례적일 만큼 서정이 표면으로 나와 있으며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훌륭하다.

교향곡 8번은 최후의 스튜디오 레코딩(70년 4월 30일 마무리)인 EMI 음반으로도 구할 수 있는데, 커플링인 슬라브 춤곡 2곡과 함께 정밀한 앙상블, 부드러운 정서가 완전하게 조화를 이룬 정말로 훌륭한 연주이다. 염가로 구할 수 있는 <슬라브 춤곡>의 전곡 녹음(Sony)은 세련되고 감칠맛이 감도는, 이 곡의 연주에서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연이다.

그의 다른 독일-오스트리아 음악도 경청할 만한데, R.슈트라우스가 특히 좋다.
작곡자에게 직접 배워서인지, <틸 오일렌시피겔>, <돈 환>, <죽음과 정화>(Sony)는 명연으로 알려져 있다. R.슈트라우스의 음향은 다소 무겁게 만들기 쉬운데, 셀의 연주는 항상 텍스처가 선명하고 결코 필요 이상 육중하게 들리지 않는다. 푸르트뱅글러처럼 그도 '차라투스트라'를 녹음하지 않았음이 안타깝다.

브루크너 연주는 클리블랜드와 정규 스튜디오로 교향곡 3, 8번(Sony), 빈 필하모닉과 잘츠부르크 실황 7번(Sony)이 있다. 장대하면서도 그다운 깔끔한 연주이다. 말러는 4번(Sony; 협연자 라스킨)과 6번(Sony, 실황)이 있으며, 베토벤은 서곡집과 교향곡 전집이 있는데(Sony), 녹음에 대해 엔지니어와 상의하다가 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마이크로폰을 자비로 사서 녹음에 썼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브람스 교향곡/서곡 녹음도 있는데(Sony) 하이든 주제 변주곡은 텍스처의 선명함에서 매우 칭찬할 만하다.
슈만 교향곡 전집(Sony)은 셀 자신이 "슈만의 마음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는데, "셸의 마음을 보여 준 연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 외의 작곡가의 음반 중에서는 코다이 <하리 야노시>모음곡, 프로코피에프 <키제 중위>,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이 들어간 음반이 있다. 지금까지 누차 언급한 셀의 장기인 정밀함이 고스란히 살아 있고, '음악적인 익살'도 아주 품위 있게 취급해 놓았다. 저속함과 대충대충만큼 셀의 연주와 거리가 먼 단어도 없다.

존 컬쇼가 이끈 런던 Decca 세션들은 유명한데, 런던 심포니를 지휘하여 커즌과 브람스 협주곡 1번, 헨델의 관현악곡,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을 녹음했다.

경이적인 사실은 이 객원 지휘에서도 앙상블이 클리블랜드를 지휘했을 때 못지 않다는 점이다. 런던 심포니의 적응력도 좋지만 셀이 제한된 시간 내에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의도대로 장악하는 능력이 대단했음을 잘 보여 준다.

셀의 레코드 레파토리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협주곡이다. 순수 교향곡/관현악곡 레파토리만 해도 엄청나지만, 셀은 특히 협연자 운이 좋았다. 위에서 언급한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은 특히 그렇다.

1937년에는 카잘스(HMV), 1962년에는 푸르니에(DG), 1969년에는 로스트로포비치(해적판)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세 첼리스트와 모두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이 중에서 푸르니에 협연은 이 곡의 기준으로서 가장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브람스의 협주곡 4곡이 특히 좋다.

1938년 슈나벨과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번(HMV)부터 시작하여 독주자들이 호화스럽기 짝이 없다. 특히 많이 추천되는 녹음은 커즌과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번(Decca; 런던 심포니), 제르킨과 협연한 1, 2번(Sony), 오이스트라흐/로스트로포비치와 협연한 바이올린 협주곡 및 2중 협주곡(EMI)이다. 이 중에서 2중 협주곡은 거의 절대적인 지위에 올라 있는데, 두 독주자의 열연을 매우 효과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으며 오케스트라의 일사불란한 연주가 아주 인상적이다.

베토벤 협주곡도 있는데, 피아노 협주곡 전집은 그가 아끼던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와 60년대 초까지(Sony), 1968년에 길렐스와 EMI에서 두 번 완성했다. 후자는 독주의 솜씨만 해도 초일류급이라 할 만 하며, 특히 '황제'가 돋보인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1934년 후베르만/VPO 협연이 있는데(HMV), 오래 전부터 CD로 나와 있던 역사적인 연주다. 모차르트 협주곡도 꽤 많다. 제르킨과 로베르 카자드쉬라는 두 Columbia 전속 피아니스트와 협연한 레코드들은 'long sell' 축에 끼는 고전인데, 특히 카자드쉬 협연이 유명하다. 그리고 아이작 스턴의 전성기에 녹음된 1, 3, 5번 협주곡(Sony)이 있다. 마지막으로, 매우 높은 신뢰를 받는 R.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Sony; 푸르니에가 첼로 독주)를 빼놓을 수 없으며, 같이 들어간 호른 협주곡 1번(협연자는 블룸)도 좋은 앨범이다.


그는 젊었을 때 오페라 극장에서 오래 지냈고, 장년기에도 메트로폴리탄을 지휘했기 때문에 오페라 녹음이 많을 법한데도 불구하고 정식 스튜디오 녹음은 단 하나도 없다. 그 외에 극음악이나 성악곡 반주라면 1969년 빈에서 빈 필하모닉과 녹음한 베토벤 <에그몬트>극 부수음악(Decca), 슈바르츠코프를 반주한 R.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와 가곡들(EMI; 런던 심포니와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슈바르츠코프와 피셔-디스카우가 독창이라는 화려한 멤버의 말러 <아이의 이상한 뿔피리>(EMI; 런던 심포니)가 있다.

그는 지휘봉을 들면 엄격과 고지식의 화신 같았고 도수 높은 안경 때문에 멀리서 보면 눈이 합쳐져 보여서 '외눈박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렇게 사람 좋은 영감이 없었다고 전한다. 1954년 제 3 호른 주자로 출발하여 다음 해에 제 1호른 주자가 된(1977년까지 재직) 마이런 '마이크' 블룸(Myron 'Mike' Bloom)은 이렇게 말했다.
"첫 해에 저는 너무 긴장하여 거의 좀비처럼 무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습니다. 처음 중요한 솔로 파트를 다뤄야 하는 R.슈트라우스의 <틸 오일렌시피겔> 연습에서 셀은 저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였고, 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죠. 저는 '더 이상 이렇게는 못 하겠습니다'고 말하고, 연습 끝난 후 지휘자실로 갔습니다. 그는 들어오라고 했고, 저는 울음부터 터뜨렸습니다. 그는 포옹해 주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죠."
- 출처:이영록의 음악페이지 -

■ 앨범

01. Mozart - Piano Concerto No 25, Symphonies No 29, 40 / Szell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Leon Fleisher, Piano


02. Tchaikovsky - Symphony No 5, Etc / Szell, Cleveland So
         Cleveland Symphony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03. R. Strauss - Four Last Songs, Etc / Szell, Schwarzkopf, Et Al
         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
         London Symphony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Elisabeth Schwarzkopf (Soprano)
         Edith Peinemann (Violin)


04. Dvorak - Slavonic Dances / Szell, Cleveland Orchestra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05. Mahler - Des Knaben Wunderhorn / Szell, Schwarzkopf, Et Al
         London Symphony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Elisabeth Schwarzkopf (Soprano)
         Dietrich Fischer-Dieskau (Baritone)


06. Beethoven - Piano Concertos 3 & 4 / Fleisher, Szell, Et Al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Leon Fleisher (Piano)


07. Beethoven - Symphonies No 3 & 8 / Szell, Cleveland Orchestra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08. Beethoven - Symphony No 3, Overtures / George Szell, Et Al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09. M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 Kodaly - Hary Janos Suite,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10. Schubert - Symphony No. 9 & Incidental Music to Rosamunde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11. Brahms - Symphony No. 1; Haydn Variations; Hungarian Dances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Philadelphia Orchestra,
         Eugene Ormandy, Conductor


12. Mahler - Symphony No.4;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London Philharmonic,
         Andrew Davis, Conductor,
         Frederica Von Stade (Mezzo Soprano),
         Judith Raskin (Soprano)


13. Live in Tokyo 1970 / George Szell, Cleveland Orchestra (Last Album)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쟈료 출처 : 음악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