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 1899 - 1985)
헝가리 태생의 미국의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관계는 언제나 두드러지게 변해가고 있다.
오케스트라 자체의 기능적인 발전, 그 숫자의 증가에 따른 지휘자의 부족, 변화를 요구하는 청중들의 기호에 따른 객원지휘의 증가 등,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때문에 과거의 멩겔베르크와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관현악단, 앙세르메와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 푸르트뱅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니, 토스카니니와 NBC 교향악단, 조지 셀과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같은 긴밀한 관계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유진 오먼디와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40 년간에 이르렀던 관계는 음악외적인 것을 떠나서라도 대단한, 그리고 앞으로 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유진 오먼디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것이 1938년이었다. 그러니까 1982년까지 44년이란 긴 세월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시시한 오케스트라도 아닌 세계 정상급의 오케스트라에서 40년 이상 상임으로 지휘봉을 흔들었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로 앞으로 이 기록은 깨어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진 오먼디는 토스카니니나 혹은 카라얀처럼 오케스트라를 떠나서 개인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특별히 그의 지휘 스타일이 청중을 열광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먼디 = 필라델피아 사운드" 는 그처럼 오랫동안 인기를 지속했고, 후원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거액의 돈을 희사하였다.
그러나 오먼디의 레코드를 들어보면 꼭 집어서 어떤 특징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경쾌한 템포의 기막힌 조화가 따뜻함과 화사함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4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마치 솜이불 쓰다듬듯 끌고 가는 그의 마력에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그의 레퍼토리는 너무도 넓고 다양해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 오먼디의 디스크를 구할 수가 있다. 폭넓은 활동과 빈번한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그는 누구에게도 음악 외적인 일로 자신을 알리려 하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자신의 예술적 작업을 이루어갔다.
미국의 평론가 손버그의 말을 인용하면
"오먼디를 토스카니니와 같은 위대한 지휘자로 지칭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지휘자였다." 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리고 1999년 까지 빈 필을 이끌었던 아바도는 자신이 지휘해 본 유명한 오케스트라들 가운데서 필라델피아만큼 사랑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오케스트라를 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적으로 "오먼디 = 필라델피아" 의 내음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유진 오먼디는 1899년 11월 18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헝가리 태생의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많은데, 셀, 도라티, 라이너, 솔티 등과 더불어 오먼디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오먼디는 4세 때 4분의 1 사이즈 바이올린으로 공부를 시작하여 5세 때에는 부다페스트 왕립음악학교에 입학, 9세가 되자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예뇌 후바이(Jeno Hubay)에게 사사했다. 후바이는 요하임의 제자이며 시게티의 스승이다. 오먼디는 이 뛰어난 스승 밑에서 신진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곧 공개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스승이었던 후바이를 존경했는지는 , 후바이의 이름을 따서 나중에 "유진"으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오먼디의 원래 이름은 예뇌 불라우(Jeno Blau)였는데 그것을 후바이의 이름 "예뇌"의 영어식 표현인 "유진"으로 고친 것이다.
그후 오만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의 앞에서 여러 차례 연주를 했고, 1917 년에는 왕립아카데미의 교수 자격을 수여받았다. 그것은 오먼디가 17세 되던 해의 일이었으며, 바쁜 연주활동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것이다. 그리고 독일 브뤼트너 관현악단 콘서트마스터로 초빙되어 독주자로서도 활약하였다.
오먼디는 바올리니스트로서 장래가 촉망되었으며, 1921년 매니저를 따라 미국 연주여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하자 계획에 차질이 생겨 연주여행은 실현되지 못하게 되었다. 오먼디는 이국에서 돈도, 친구도 없이 방황하게 되었으나 곧 뉴욕 캐피틀 극장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마스터가 되었다. 그리고 2년 반 후인 1924년 9월 지휘자의 급병으로 대역을 맡아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것이 크게 성공하여 주목을 끌게 되었다.
오먼디는 이듬해인 1925년 동 극장의 준(準) 음악감독이 되었고, 1929 년에는 레비존 스타디엄에서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 연주회를 지휘하였다.
또 1931년 10월 30일 급병으로 출연을 못하게 된 토스카니니의 대역으로 지명되어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지휘대에 서게 되었다.
이것은 오먼디에게 있어서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의 매니저는 토스카니니의 이미지를 기대하고 있는 청중 앞에 서서, 게다가 스토코프스키와 비교되는 짓을 그만두라고 충고했으나, 오먼디는 그런 것을 잘 알면서 출연하여 문자 그대로 선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청중 가운데 미네아폴리스 교향악단(지금의 미네소타 관현악단)의 대표자가 자리에 있었다. 그는 병약한 지휘자였던 앙리 바브뤼헨의 후임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오먼디는 즉시 미네아폴리스 객원지휘자로 초청되었고, 곧 바로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에 의해 미네아폴리스 교향악단의 수준은 눈부시게 향상되었고, 그것이 RCA에 인정되어 레코드 녹음도 시작되었다.
말러의 <교향곡 제2번 - 부활>, 쉔베르크의 <정화(淨化)된 밤> 등 대담한 곡들이 주목을 끌었다.
Jean Sibelius met Eugene Ormandy at Ainola |
이렇게 미네아폴리스 교향악단 재임 5년 동안에 오먼디의 명성은 높아져 갔고, 1936 년에는 스토코프스키가 음악감독이었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부지휘자로 취임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38년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탑 오케스트라의 탑 맨"으로 불리면서 미국에서 가장 연주여행이 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하였다.
9회에 이르는 해외연주를 비롯하여 미국을 대표하여 공산주의 시절의 중국까지 다녀 왔다.
그리고 오먼디 개인으로서의 활동도 눈부셨다.
그는 이미 미국의 일류 오케스트라는 빠짐없이 객원지휘하였고, 해마다 여름이면 유럽에서 객연하였다.
그는 런던 교향악단과 빈 필하모니의 주요한 객원지휘자였으며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헤보우 관현악단, 쾰른 방송교향악단, 함부르크 필하모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 로열 필하모니, 프랑스 국립방송관현악단 등 유럽의 저명한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하였다.
오먼디의 레퍼토리의 폭도 경이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토록 장기간에 걸쳐 상임지휘자의 지위에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1960 년에 필라델피아 관현악협회는 <유진 오먼디 위원회>를 신설하였는데, 이것은 현대 미국 작곡가들로부터 새로운 작품을 입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with Pianist, Van Cliburn |
오먼디에 의해 초연된 작품들도 많은데, 예컨대 윌리엄 슈만의 <교향곡 제9번> 이후의 제 작품들은 그에 의해서 초연되었다.
펜데레츠키의 <그리스도의 매장(埋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4번 - 사자(死者)의 노래> 등은 그의 중요한 레퍼토리의 하나였다.
오먼디의 표현은 날카롭고 그 색채는 풍려하다.
마치 그림물감을 튜브에서 직접 캔버스에 칠한 것처럼 낱낱의 소리는 원색 같은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특히 현악기의 풍성한 울림과 날씬한 유동감은 빌로드 같은 광택과 부드러움을 지닌다. 이른바 "필라델피아 사운드" 의 매력은 바로 오먼디, 그 자신의 소리다.
다만 그는 같은 헝가리 출신이면서도 도라티나 셀, 라이너, 그리고 솔티처럼 오페라 지휘자로서 출발한 <유럽파>가 아니라 즉시 콘서트 지휘자가 된 <아메리카파>라는 점에서 그 스스로의 제약성이 있다.
오먼디는 1980년에 무티에게 정지휘자의 자리를 물려 줄 때까지 실로 42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왔다는 것은 그의 실력이 얼마나 탁월했나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먼디의 오케스트라 통솔의 능력은 대단한 것으로 그야말로 명인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유진 오먼디는 1985년 3월 12일, 필라델피아에서 향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먼디가 남긴 레코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명연반만 간추린다는 것도 난감한 일이다.
다만 그에게 있어서는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헝가리, 러시아, 북유럽계 작곡가들의 연주에 있어서 추천할 만한 레고드가 많다. 또 반주 지휘자로서의 그의 역량은 거의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다.
협주곡 지휘에 있어서 독주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차분히 음악을 빚어낸다.
레스피기의 교향시 <로마 3부작>,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2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협연한 챠이코프스키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결합반, 아이작 스턴과 협연한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제2번> 결합반 등이 좋은 연주이다.
■ 앨범
01. Original Jacket Collection - Eugene Ormandy
Philadelphia Orchestra
Eugene Ormandy, Conductor,
Anshel Brusilow (Violin)
Isaac Stern (Violin)
Mstislav Rostropovich (Cello)
02. Tchaikovsky, Mendelssohn - Violin Concertos / Stern, Et Al
Philadelphia Orchestra
Eugene Ormandy, Conductor,
Isaac Stern (Violin)
03. Mahler - Symphony No 10 / Ormandy, Philadelphia Orchestra
Philadelphia Orchestra,
Eugene Ormandy, Conductor,
04. Beethoven - Piano Concerto No 5, Triple Concerto / Stern
Philadelphia Orchestra,
Eugene Ormandy, Conductor,
Cleveland Orchestra,
George Szell, Conductor,
Leon Fleisher (Piano)
Isaac Stern (Violin)
Leonard Rose (Cello)
Eugene Istomin (Piano)
05.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 3, Etc / Horowitz, Ormandy
New York Philharmonic,
Eugene Ormandy, Conductor,
Vladimir Horowitz (Piano)
06. Rimsky-Korsakov - Sheherazade, Etc / Ormandy
Philadelphia Orchestra,
Eugene Ormandy, Conductor,
Anshel Brusilow (Violin)
07. Shostakovich - Symphony No 15, Etc / Ormandy, Gilels, Et Al
Philadelphia Orchestra,
Eugene Ormandy, Conductor,
Emil Gilels (Piano)
08. Shostakovich - Symphony No 1, Cello Concerto / Ormandy, Et Al
Philadelphia Orchestra,
Eugene Ormandy, Conductor,
Mstislav Rostropovich (Cello)
Mason Jones (French Horn)
09. Sibelius - Lemminkainen Suite, Etc / Ormandy, Berglund, Et Al
Helsinki Philharmonic Orchestra,
Philadelphia Orchestra,
Paavo Berglund, Eugene Ormandy - Conductor
10. Verdi - Requiem / Ormandy, Amara, Forrester, Tucker, Et Al
Philadelphia Orchestra,
Westminster Choir,
Eugene Ormandy - Conductor,
Lucine Amara (Soprano)
Maureen Forrester (Mezzo Soprano)
Richard Tucker (Tenor)
George London (Baritone)
쟈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