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 )
아르헨티나 태생의 피아니스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에서 성장기를 보낸 유태계 음악가로 세계적인 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이다.

특히 깊고 기품이 넘치는 연주로 명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 세계적인 인기에 비해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가버린 거장의 시대‘에 지휘자로서 그리고 피아니스트로서 또한 반주자로서 그 만큼 천재적인 인물도 드물지만, 바렌보임의 애호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의 디스코그래피 또한 BMG를 제외한 전 메이저 음반사에 두루 분포하지만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나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사이먼 래틀(Simon Denis Rattle)에 비하면 그 인기는 다소 떨어진 감이 없지 않았다.

전업 피아니스트조차 쉽지 않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두 번에 걸쳐 녹음했으며, 그의 멘델스존 <무언가>는 베스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서 반주자로 제럴드 무어(Gerald Moore)나 외르크 데무스(Jorg Demus) 대신 바렌보임을 선택하였다.

이차크 펄만(Itzhak Perlman)과의 브람스 <소나타집>이나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들어보라.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Maxim Vengerov)와의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음반 역시 센세이셔널한 것이 아니었던가? 견고한 구성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이나, 90년대 최고의 <니벨룽의 반지>를 지휘한 것이 바로 바렌보임 이었다. 한국에서 바렌보임의 평가절하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이제는 바렌보임이 우리시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하나라는 사실에 동의할 때가 된 듯하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1942년 11월 15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러시아계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친 모두 피아니스트인 음악 일가의 환경 속에서 자랐던 관계로 어린 다니엘은 5세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이어 러시아 태생인 부친 엔리크(Enrique)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의 나이 7세 때인 1950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살라 베이어' 무대에서 베토벤 프로그램으로 공식적인 독주회를 열어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의 거장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ur Rubinstein)과 아돌프 부쉬(Adolf Busch)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2년, 유태인이었던 바렌보임 일가는 이스라엘에 이주하였다.
1954년, 그의 부모는 그를 잘츠부르크로 데리고 가 이고르 마르케비치(Igor Markevitch)의 지휘 클래스에 입학시켰다. 그는 여기서 지휘법을 이고르 마르케비치에게 배우는 한편, 피아노를 에드빈 피셔(Edwin Fischer)에게, 실내악을 첼리스트인 엔리코 마이나르디(Enrico Mainardi)에게 배웠다.

또 이 동안 지휘계의 거장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에게 인정을 받아 솔리스트로서 연주하기도 하였으며, 그로부터 그의 이상과 음악적 영감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푸르트벵글러는 어린 바렌보임을 "페노메논(Phenomenon)"이라고 부르며 많은 사랑을 주었고, 그를 초청하여 베를린 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푸르트벵글러의 지휘 리허설에 참석하여 그의 앞에서 지휘를 했다.

1954년, 그는 파리에 유학하여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로부터 화성과 작곡을 사사한 다음, 1955년 로마 성 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하여 카를로 체키(Carlo Zecchi)에게 피아노와 지휘법을 배웠다.

1956년 7월 수사의 칭호를 받고 졸업한 후, 1957년 1월 뉴욕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 지휘의 '심포니 오브 디 에어'와의 공연에서 피아니스트로서 미국 데뷔를 장식하였다. 이날의 연주는 공연장을 찾은 음악 관계자 및 많은 사람들에게 차세대를 이끌 천재 피아니스트의 출현을 알리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미 1952년 비엔나와 로마, 1955년 파리, 1956년 런던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 연주회를 가진 바 있다. 이후 바렌보임은 젊은 세대 중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그 위치를 쌓아 올려 나갔다.

그는 정기적으로 유럽투어를 하였고, 미국,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근동 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를 무대로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바렌보임은 1954년 처음으로 앨범을 녹음하였는데, 몇개의 전곡 사이클을 녹음하였다.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지휘자와 연주자로서 참여한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오토 클렘퍼러(Otto Klemperer) 지휘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하였고, 나중에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면서 연주자로서 다시 녹음하였다.

존 바르비롤리(John Barbirolli)와 주빈 메타(Zubin Mehta)의 지휘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피에르 블레즈의 지휘로 벨라 바르토크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하였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 시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지휘에도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바렌보임이 지휘대에 서기 시작한 것은 1962년경부터이며, 그 후 오랫동안 피아니스트로서 깊은 관계를 유지한 영국 실내관현악단(English Chamber Orchestra)을 처음 지휘한 것은 1965년 모차르트의<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데뷔하고부터 였다.

그는 이 악단과 피아니스트 독주자로서, 그리고 지휘자로서 영국에서 자주 연주회를 가졌으며, 전 유럽,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지를 순회연주하였다. 그는 약 10년 동안 이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하였는데, 고전파의 교향곡과 근대, 현대의 작품으로 서서히 레퍼토리를 쌓아 나갔다.

1967년 런던에서 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New Philharmonia Orchestra)와 함께 런던 무대에 지휘자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로부터도 자주 객원 지휘를 요청받기 시작하였고, 1967년과 1968년에는 이스라엘 필하모니와 런던 교향 악단의 미국 연주 여행에서 지휘자로서 대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1968년에는 처음으로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호평을 받았고, 1971년 1월에는 뉴욕 필하모닉에 첫 등장하여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성공으로 CBS에서 그 기념으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의 레코드가 발매될 정도였다 .
그 후 시카고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 런던 필하모니를 자주 객원 지휘하여,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과 병행하여 본격적인 지휘 활동에도 역점을두게 되었다.

1973년 에딘버러 페스티발에서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죠반니(Don Giovanni)>를 지휘하면서 오페라 작품도 지휘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81년 바이로이트 바그너 축제에 장-피에르 폰넬(Jean-Pierre Ponnelle) 연출의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를 지휘하면서 데뷔하였으며, 1987년 괴츠 프리드리히(Gotz Friedrich) 연출의 바그너 <파르지팔(Parsifal)>을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지휘하였다.

그는 1999년까지 이 축제에 참가하여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Die Meistersinger von N rnberg)> 등을 지휘하였다.

1975년 6월, 다니엘 바렌보임은 게오르그 솔티(Sir Georg Solti)의 후임으로 파리 오케스트라(Orchestre de Paris)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이로써 마침내 그는 자신만의 오케스트라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전의 샤를 뮌슈(Charles Munch),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게오르크 솔티(Georg Solti) 등 역량 있는 사람들의 뒤를 이어 신진을 기용한 파리 시 평의회는 그의 능력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는 취임하자 오케스트라의 활동을 여러 방면에서 넓히기 시작해, 단원을 중심으로 한 실내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전속 합창단을 창설하는 등, 새로운 바람을 파리 악단에 불어넣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렌보임은 푸르트벵글러를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그의 음악적인 자세는 기본적으로 로맨틱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그는 비톨드 루토슬라프스키(Witold Lutoslawski),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피에르 블레즈(Pierre Boulez), 앙리 뒤티외(Henri Dutilleux), 토루 다케미츠(Toru Takemitsu) 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위촉받아 지휘, 연주하여 현대 음악을 널리 알렸다.

그의 음악은 초기에는 의식만이 선행하고 표현의 테크닉이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중심적인 주장만이 강했으며, 이러한 면은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파리 관현악단에서는 그런 것들이 점점 개선되어 스케일이 크고 포용력이 풍부한 표현으로 바꿔지고 있다.

바렌보임은 1984년 파리 관현악단과 함께 내한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했으며, 1988년까지 파리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있었다.

1977년에는 빈 필하모닉과도 미국, 파리, 런던에서 연주했다.
1989년, 다니엘 바렌보임은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Bastille Opera)의 예술 감독으로 내정되었나 당국과의 의견 차이로 잡음 끝에, 후임 세미욘 비쉬코프(Semyon Bychkov)에게 음악감독직을 물려주고 결국 사임하였다.

1991년, 게오르그 솔티의 후임으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여 2006년 6월 1일까지 재임하였다. 바렌보임은 이 기간 동안 세계 도처의 음악홀에서 수 많은 연주회를 가져 성공을 거두었으며, 2006년 사임한 후에는 단원들에 의해 "명예지휘자"의 칭호를 받았다.

1992년 바렌보임은 베를린 도이치 국립오페라(Deutsche Staatsoper Berlin) 산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Berliner Staatskapelle)의 음악감독을 겸임하게 되었다. 베를린 슈타츠오퍼는 16세기 설립된 프로이센의 궁정오페라단을 기원으로 하고있으며, 현재 이들이 사용 중인 오페라하우스건물" 슈타츠오퍼 운터 덴 린덴(Staatsoper Unter Den Linden)은 1741년 프리드리히 2세의 명으로 세워졌다. 2차 대전 직후 동베를린에 편입되기까지 독일을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로 군림했으며, 통독이후 바렌보임 휘하에서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바렌보임은 놀랄만한 카리스마로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실력을 십분 이끌어 내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은 비제의 스코어에 담긴 폭발적인 총주의 박력을 마음껏 뿜어 내면서도 독일 오케스트라 특유의 충실한 목관 사운드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주었고, 바렌보임과 함께 한 10년의 시간속에서 다져진 완벽한 합주력을 유감 없이 과시했다.

또한 그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연주에 있어서 구 동독의 소리와 스타일을 유지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2002년 8월까지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2000년에 종신 지휘자로 선출되어 일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오페라와 콘서트의 양 무대로 바렌보임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전 교향곡 작품의 레퍼토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리하르트 바그너의 모든 오페라를 슈타츠 오퍼에서 연주하였고, 베토벤, 슈만의 전 교향곡을 세계 각지에서 연주함으로써 대단한 절찬을 받았다. 그 작품들은 베를린, 비엔나, 뉴욕, 도쿄 등지에서 연주되었고, CD로 출시되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고전, 낭만주의 레퍼토리외에도 현대 작품에 촛점을 맞추어 엘리엇 카터의 오페라 [What next]를 슈타츠오퍼에서 초연하였고,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연주회 레퍼토리에 피에르 블레즈(Pierre Boulez), 볼프강 림(Wolfgang Rihm), 이자벨 문드리(Isabel Mundry), 엘리엇 카터(Elliot Carter), 요크 헬러(York Holler)의 작품들을 포함시켰다.

바렌보임은 1993년 이후 텔덱(Teldec) 레이블을 통해 광범위하게 녹음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에 텔덱 레이블을 통하여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시카고 심포니,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앨범과 독주 앨범 등을 출시하였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연주가 로돌포 메데로스(Rodolfo Mederos)와 베이스 연주가 엑토르 콘솔레(Hector Console)와 공동으로 , <내 사랑 부에노스아이레스(Mi Buenos Aires Querido)> 등 아르헨티나 태생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antaleon Piazzolla) 추모 앨범을 1996년 발표하였는데, 대단한 절찬과 동시에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

1999년 가을, 듀크 엘링턴(Edward Kennedy Ellington)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시카고에 근거를 두고 있는 재즈 뮤지션, 그리고 재즈 가수 다이안 리브스(Dianne Reeves), 클라리넷과 색스폰 연주자 돈 바이론(Don Byron) 등과 헌정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는 니콜라이 즈나이더(바이올린), 엠마누엘 파후드(플룻), 알락스 클라인(오보에), 래리 콤스(클라리넷), 로버트 카싱어(베이스), 사이로 밥티스타(퍼커션), 민톤 나시멘토(보컬) 등과 함께<브라질 랩소디(Brazilian Rhapsody)>를 발표하였다.

바렌보임은 평화를 사랑하는 유태인, 화합형 유태인으로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 비판자로 유명하다.
히틀러가 옹호했던 리하르트 바그너 작품을 연주해 이스라엘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팔레스타인출신의 세계적인 문학평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와 오랜 교류를 해오면서 팔레스타인문제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보여온 음악인이다.

1999년부터는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청소년을 모아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st Eastern Divan Orchestra, 서동시집(西東詩集)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해마다 화합의 음악회를 열고 있다. 유엔 평화특사로도 활동 중인 그가 중동전쟁의 와중인 새해 첫날 빈 필하모닉의 지휘를 맡은 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실천한 이력과 무관치 않다.

2002년 3월 6일 저녁, 다니엘 바렌보임은 폭격과 총탄이 난무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현장인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서 평화 콘서트를 가졌다. 바렌보임은 4일 예루살렘에서 AFP통신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군사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라말라에서 연주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바렌보임은 6일의 공연에 앞서 5일 밤 예루살렘에서도 콘서트를 열었다.

이스라엘군 탱크로 포위된 라말라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이 3개월째 사실상 연금당하고 있는 곳인 동시에 5일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하고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전장이다.

바렌보임은 최근 독일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우리가 언젠가 팔레스타인국가가 세워지고 분쟁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문화예술인과 정치인들이 양측의 관계증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고 밝힌 바 있다.


바렌보임은 유태인으로서 이스라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여느 유태주의자들과 달리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는등 중동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는 지난 1999년 2월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비르 제이트 대학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2007년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의 페스트타게(FESTTAGE 2007)는 '말러 치클루스'로 치루어졌다. 말러의 <9개의 교향곡>과 <대지의 노래>, 가곡들이 10회의 콘서트를 통해 모두 연주되었는데, 지휘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피에르 불레즈가 각각 나누어 맡았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자신의 레퍼토리로 삼고 있는 말러의 교향곡중에서 <1, 5, 7, 9번>과 <대지의 노래>를, 피에르 불레즈는 그 외의 교향곡들을 지휘하였다.

바렌보임은 그가 말러의 교향곡들을 전혀 지휘하지 않았던 1970년대에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파리 오케스트라에 라파엘 쿠벨릭을 초청해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바렌보임의 입장은 자신의 취향과 잘 맞지 않거나, 연구가 부족한 작품들이라 할지라도 오케스트라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 판단이 서면 다른 이를 통해서라도 연주를 해봐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말러의 교향곡들을 여럿 지휘하게 된 바렌보임이 절친한 피에르 불레즈와 함께 직접 '말러 치클루스'를 개최하게 된 것은 한 아티스트의 음악적 발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009년 1월 1일 오전 11시 45분, 지구촌 전역에 세계 3대 오케스트라의 하나인 빈 필하모닉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빈 필하모닉의 전통에 따라 올해 첫 마에스트로를 누가 맡을지 세계인의 관심이 모아진 터였다. 지휘봉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화합을 외치는 유대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66)이 쥐었다.

화염에 휩싸인 ‘약속의 땅’ 가나안에 세계인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로 이해됐다.
1억여 가구가 지켜본 이 향연은 요한 슈트라우스 <베네치아에서 보낸 하룻밤> 서곡으로 시작해 <남국의 장미>, <집시 남작>시리즈를 거쳐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으로 이어졌다.

with Cellist, Jacqueline Du Pre (1st wife)
1967년 다니엘 바렌보임은 첼리스트인 자클린느 뒤 프레와 결혼하면서, 그녀와의 협주곡이나 실내악연주를 통해서 레퍼토리를 확대하게 되었다.

뒤 프레는 이차크 펄만(Itzhak Perlman), 주빈 메타(Zubin Mehta), 핀커스 주커만(Pinchas Zukerman)과 친분이 있었으며, 뒤 프레를 포함한 그들 다섯을 가르켜 "유태의 음악 마피아(The Jewish Musical Mafia)"라 지칭했다.

그들의 슈베르트 <송어 5중주>는 크리스토퍼 누펜(Christopher Nupen)의 그 유명한 다큐멘터리의 발단이 되기도 하였다.

쟈클린느 뒤 프레는 흔히 말하는 비운의 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어렸을때부터 천재성을 보여 5살때 런던 첼로스쿨에 입학한 후 16세에 데뷔하였고, 현을 끊는 강렬한 연주는 사람들을 '미치게' 하였다.

23세에 바렌보임과 결혼하지만 26세에 발견된 희귀병인 '다발성 경화증'의 증상이 악화되어 28세에 은퇴를 하게 되었으며, 결국 고통스러운 투병생활 끝에 42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Pianist, Elena Bashkirova (2nd wife)
그녀의 투병생활중 바렌보임은 그녀를 홀로 남겨두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나기전, 러시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키로바(Elena Bashkirova)와의 관계로 두 아들을 낳았고, 이 사실은 감춘채 뒤 프레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쟈클린느 뒤 프레가 세상을 떠나자 결국 그는 바쉬키로바와 결혼을 하였고, 그 후에도 그녀의 묘소를 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두번째 스트라디바리우스인 "the 1712 Davidoff Stradivarius"를 요요마(Yo-Yo Ma)에게 남겼다.

한편, 그녀의 첫번째 스트라디바리우스 "1673 Stradivarius"는 린 하렐(Lynn Harrell)이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는 뒤 프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du Pre' Stradivarius"라는 이름을 지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라는 두가지 역할을 극히 성공적으로 수행한 몇 안되는 인물이다.
그만큼 그는 다재다능한 음악인인 것이다. 지휘자로서 그는 기본적으로 푸르트벵글러를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고 있다. 바렌보임의 음악적 자세는 낭만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록 초기에는 지휘자로서 약간 산만한 듯한 인상을 주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해결되었다. 자신이 이끌던 파리 관현악단에서 그는 지휘자로서의 자질을 대폭 업그레이드시키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파리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특히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에 많은 신경을 썼다. 특히 그 중에서도 베를리오즈와 프랑크, 생상스 등은 여타 대 지휘자들의 그것과 비교할 때 결코 부끄럽지 않은 우수한 지휘솜씨를 보여 주었다.

지휘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그는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슈베르트, 슈만 등과 같은 고전과 낭만주의 작품서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인 바 있다.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5번>,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줄리엣>(모두 그라모폰) 등은 그러한 최근의 바렌보임의 가장 좋은 면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명연반이다.

2002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왕자상, 독일 투칭 대학 톨레랑스 상, 독일 대통령 대(大)연방공로십자훈장 등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03년 2월, 그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슈타츠오퍼 합창단과 함께 한 바그너의 <탄호이저(Tannhauser)> 녹음으로 그래미 상을 수상하였다.


■ 참고

●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 조강지처 버린 ‘주홍글씨’, 폄훼당한 ‘전인적 음악성’

사람들은 그를 미워했다.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조강지처를 버린, 인정머리 없는 이기주의자라고 여겼다. 이 ‘비호감’의 강도는 한국에서 특히 셌다. 그의 연주와 지휘는 실제보다 격하되기 일쑤였고 음반도 도통 팔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적어도 한 10년 전까지는 그랬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얘기다.

자클린 뒤 프레
Cellist, Jacqueline Du Pre
바렌보임과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결혼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음악 커플의 탄생이었다. 바렌보임이 26세, 뒤 프레가 22세였던 1968년의 일이었다.

옥스퍼드대학 교수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프레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키 작은 유대인’ 바렌보임과 결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 프레가 결혼을 위해 종교까지 유대교로 바꿨던 것은 유명한 얘기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뒤 프레에게 닥쳐온 불행의 그림자.
그녀는 첼로를 켜다 자주 템포를 놓쳤으며, 나중에는 눈이 침침해지면서 악보마저 보이지 않았다. ‘다발성 근육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 그렇게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점점 굳어가던 그녀는 결국 73년 무대에서 내려왔고 87년 눈을 감았다. 42년의 짧은 생애였다.

빼어난 연주력에 아름다운 외모, 게다가 사랑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알았던 순정한 여인. 이런 ‘훌륭한' 아내를 돌보지 않은 ‘싸가지 없는’ 남자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뒤 프레가 세상을 떠난 후, 바렌보임을 언제나 따라다녔던 이 주홍글씨는 그의 연주에 대한 폄훼로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음악가로 승승장구하던 그를 미워했으며, 그의 음악을 들으며 정서적으로 불편해했다.

게다가 바렌보임은 “나는 하루 2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는다. 그 이상은 내게 필요치 않다”고 공공연히 발언함으로써, ‘잘난 척하는 인간’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그렇게 ‘감정적 공분’을 샀던 바렌보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였다. 그 결정적 계기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만남이었고, 두 사람이 5년간 나눈 대화의 주요 부분을 간추린 <평행과 역설>이야말로 바렌보임의 이미지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꾼 전환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바렌보임이 <평행과 역설>에서 보여줬던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은 아름다워요”라는 단순 어휘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지휘자, “저는 바이올린이 전공이기 때문에 피아노 음악은 몰라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연주자….

그렇게 자기 분야에만 충실한 ‘전문가’들이 즐비한 땅에서 정치와 사회, 음악과 문화를 종횡무진 오가는 바렌보임의 ‘식견’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 아닐까.

2년 전, 성공회대학의 신영복 선생께서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피아니스트 조은아를 소개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나 한번 나눠보라”는 뜻이었을 게다. 그렇게 알게 된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바렌보임 얘기가 나왔다.

그녀가 말했다.
“조강지처를 버린 재주 많은 음악가 정도로만 생각했었죠. 그러다가 파리 샤틀레극장에서 바렌보임이 바흐의 ‘평균율’ 전곡을 연주하는 걸 들었어요. 그때 완전히 설득당하고 말았죠. 무엇보다 음악을 대하는 ‘시선’이 피아노만 아는 피아니스트들과 달랐어요. 억지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한 음 한 음에서 정신의 걸음걸이가 느껴졌어요.”
바렌보임은 어떤 음악가인가?
파리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와 시카고심포니의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2000년에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지휘자 자리에 오른 세계적 지휘자.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쇼팽 등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진 천재형 피아니스트. 게다가 그는 피아졸라의 탱고를 맛깔스레 연주해내는 크로스오버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뿐일까?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평행과 역설>, <음악 속의 삶> 등을 통해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통찰해온 평론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면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분쟁지역을 찾아가 베토벤을 연주하는 지식인이다.

그래서 그에게 ‘전인적’(全人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본다.
전인적 음악가 바렌보임. ‘전문화’라는 구호 아래 정치와 경제는 갈수록 막강해지고 개인의 능력과 시야는 점점 협소해지는 세상. 그렇게 인간의 삶이 갈수록 왜소해지는 21세기에, 이 얼마나 특별하면서도 빛나는 존재인가.

- 출처 : 경향 뉴스 <문학수 선임기자>의 글 -


■ 앨범

01. Schubert - Grand Duo D 812, Variations D 813, Etc / Radu Lupu, Daniel Barenboim
         Daniel Barenboim, Piano,
         Radu Lupu, Piano


02. Live At La Scala - Liszt: Petrarch Sonnets, Etc / Daniel Barenboim
         Daniel Barenboim, Piano


03. Beethoven - Complete Piano Sonatas / Daniel Barenboim
         Daniel Barenboim, Piano


04. Mendelssohn - Songs Without Words / Daniel Barenboim
         Daniel Barenboim, Piano


05. Beethoven - Triple Concerto, Etc / Perlman, Ma, Barenboim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Berlin State Opera Chorus,
         Daniel Barenboim, Conductor, Piano,
         Itzhak Perlman, Violin, Yo-Yo Ma, Cello


06. Mozart - Complete Piano Sonatas / Daniel Barenboim
         Daniel Barenboim, Piano


07. Brahms - Violin Sonatas, Viola Sonatas / Zukerman, Barenboim
         Daniel Barenboim, Piano,
         Pinchas Zukerman, Violin


08. Messiaen - Quartet For The End Of Time / Barenboim, Et Al
         Daniel Barenboim, Piano, Luben Yordanoff, Violin,
         Albert Tetard, Cello, Claude Desurmont, Clarinet


09. Chopin - The Complete Nocturnes / Daniel Barenboim
         Daniel Barenboim, Piano


10. Gemini - Beethoven: Cello Sonatas, Etc / Barenboim, Du Pre
         Daniel Barenboim, Piano,
         Jacqueline du Pre Cello


11. Gemini - Brahms: Piano Concertos, Etc / Barenboim
         New Philharmonia Orchestra,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Sir John Barbirolli, Conductor,
         Daniel Barenboim, Piano


12. Mahler - Symphony No 7 / Barenboim, Staatskapelle Berlin
         Berlin Staatskapelle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uctor


13. Schumann - The Symphonies / Barenboim, Staatskapelle Berlin
         Berlin Staatskapelle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uctor


14. Wagner - Tannhauser / Barenboim, Eaglen, Meier, Pape, Et Al
         Berlin Staatskapelle Orchestra, Berlin State Opera Chorus,
         Daniel Barenboim, Conductor,
         Jane Eaglen (Soprano - Elisabeth)
         Waltraud Meier (Mezzo Soprano - Venus)
         Peter Seiffert (Tenor - Tannh?ser)
         Rene Pape (Bass - Hermann)
         Thomas Hampson (Baritone - Wolfram von Eschenbach)
         Gunnar Gudbjornsson (Tenor - Walther von der Vogelweide)
         Hanno Muller-Brachmann (Bass - Biterolf)
         Stephan Rugamer (Tenor - Heinrich)
         Alfred Reiter (Bass - Reinmar von Zweter)
         Dorothea Roschmann (Soprano - Young Shepherd)


15. Beethoven - Fidelio / Barenboim, Domingo, Meier, Et Al
         Berlin Deutsche Oper Chorus, Berlin Staatskapelle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uctor,
         Placido Domingo (Tenor - Florestan), Waltraud Meier (Soprano - Leonore)
         Kwangchul Youn (Bass - Don Fernando), Falk Struckmann (Bass Baritone - Don Pizarro)
         Rene Pape (Bass - Rocco), Soile Isokoski (Soprano - Marzelline)
         Werner Gura (Tenor - Jaquino), Klaus Hager (Baritone - Second Prisoner)


16. Elgar - Cello Concerto, Etc / Daniel Barenboim, Jacqueline du Pre
         Philadelphia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uctor,
         Jacqueline du Pre, Cellor


17. Tchaikovsky - Symphony No 5; Et Al / Barenboim, Et Al
         West-Eastern Divan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uctor


18. Wilhelm Furtwangler - Symphony No 2 / Barenboim, Chicago So
         Chicago Symphony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uctor


19. Brahms - Symphonies 1-4 / Barenboim, Chicago So
         Chicago Symphony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uctor


20. Perlman Edition - Brahms: Violin Concerto, Etc / Barenboim, Perlman, et.al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uctor,
         Itzhak Perlman, Violin,
         Vladimir Ashkenazy, Piano,
         HansJorg Schellenberger, Oboe


쟈료 출처 : 음악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