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 1924 ~ 2013)
헝가리 태생의 미국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로 굴곡진 20세기를 살면서 자의로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했고, 서구 현대 문명의 특징인 냉철한 이성주의와 관념주의적 접근에 의한 절대미를 추구한 냉철하고 지적인 연주자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도 필요 이상의 몸짓이 없고 오직 음악을 위한 종사자이고자 했던 20세기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중 한 사람이며, 현역 독주자 중 최원로급에 속한다.

야노스 슈타커는 1924년 7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원래 러시아 태생으로 헝가리로 이주했는데, 당시 국적도 얻지 못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이 감지하고 7세부터 첼로를 가르쳤다.

그는 부다페스트에 있는 리스트 음악원(Franz Liszt Academy of Music)에 입학해 다비드 포퍼(David Popper)의 제자였던 아돌프 쉬퍼( Adolf Schiffer)문하에 들어가 15세에 졸업했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연주대에 오른 슈타커는 1939년 음악원을 졸업할 즈음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이미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리스트 음악원 학생 시절, 자신의 스승 캐러비에게 코다이(Zoltán Kodály)가 헌정한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초연하였다. 이를 계기로 슈타커와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세계 음악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졸업한 후,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로 취임하면서 연주가로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연주는 물론 거의 2년 동안 첼로를 만져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활동을 시작했는데, 1945년에는 부다페스트 오페라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을 겸임하게 되었고, 비로소 헝가리 국적을 획득했다. 또한 피아니스트인 조지 쉐박(Gyorgy Sebok)등과 트리오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헝가리에서의 활동을 멈추고 1948년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댈러스 교향악단의 수석주자가 되었다. 그 후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의 요청으로 1949년부터 1953년까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1951년, 피아노의 율리우스 카첸(Julius Katchen), 바이올린의 요제프 수크(Josef Suk)와 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하였으나, 1969년 카첸의 죽음으로 그만두었다.

다시 1953년부터 1958년까지 시카고 교향악단에서 수석주자를 맡은 다음 솔리스트가 되었다. 1958년부터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교육 활동도 하면서 뛰어난 첼리스트를 차례로 배출하였다.

슈타커는 1950년 무렵 레코딩한 코다이 무반주 첼로의 생생하고 생명감 넘치는 녹음으로 유명하며, 이후 금세기를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꼽히고 있다.

그는 초인적인 기교의 소유자이지만 쇼맨십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기교가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연주에서 차갑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하지만 그는 깊이 성찰하는 첼리스트이며, 작품이 지닌 묘미와 뉘앙스를 섬세하게 살려낸, 그리고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과는 달리 따스함을 훈훈하게 풍겨낸 첼리스트이다.

1972년 뉴욕 필과 하이든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을 때 쇤베르크는 이런 평을 했다.
..."슈타커는 귀족적인 엄격함을 갖고 연주했고, 고도의 논리로 음악적 소재를 구도화했다. 그의 완벽한 아티큘레이션은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으며, 첼로 소리는 크고 아름답게 울렸다. 그의 하이든 협주곡은 분명함과 균형감에 있어 극치였다."...

이처럼 슈타커는 어떤 음악을 연주할 때에도 감정에 휩쓸리는 법이 없다.
항상 냉정하게 작품의 양식을 정확히 파악해 고도의 테크닉과 함께 그것을 축으로 감정을 담아낸다. 따라서 그의 연주 매력은 불과 얼음이 환상적으로 매치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과장된 제스처나 쇼맨십에 반대하며, 또 하나는 헐리우드 영화 속에 멜랑콜릭한 장면에 단골 악기로 등장하는 첼로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지나친 비브라토나 불필요한 포르타멘토를 피한다.

슈타커의 또 하나의 업적으로는 첼로 교육에 있다고 하겠다.
그는 가르치는 것을 무척 즐기는데, 스스로가 성격상 연주가보다는 교육자에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는 특히 다음 세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스승의 역할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파리 고등 음악원의 마크 코페,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의 헨켈처럼 인디애너 대학에서 배출한 제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연주자·교육자로 활약하면서 슈타커 사단의 계보를 이루고 있다.

비브라토를 비롯해 많은 테크닉들을 바이올린 주법에서 착안해 냈다고 하는데, 그의 테크닉 교칙본과 또 그가 편집한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은 첼로를 배우는 학도들에게 중요한 지침서가 되고 있다. 또한 왼손의 독립성과 강화를 꾀하는 <첼로 메소드>의 저자로도 이름이 높다.

자료 출처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