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 (1927 - 2007)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첼리스트.
20세기 전반에 파블로 카잘스(1876-1973)가 있었다면, 20세기 후반은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의 시대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첼리스트이면서, 동시에 빼어난 지휘자이자 음악 스승이었다.

2007년 4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겸 지휘자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가 러시아 남부의 종양 전문센터에서 향년 80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지난해말부터 간종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최근에는 간 이식 수술을 받기도 했다.
3월 27일 80회 생일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 궁에서 마련한 성대한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이달 들어 건강이 악화돼 다시 입원했다.
80회 생일상을 받은지 꼭 한달만에 눈을 감은 것이다.

당시 생일 축하연에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 제자인 첼리스트 다비드 게링가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500여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로스트로포비치를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로 칭송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사망 소식을 접한 후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로스트로포비치가 입원했던 병원으로 급히 향했다.

President, Vladimir Putin and Mstislav Rostropovich

로스트로포비치가 안장될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에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스승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를 비롯해 니키타 흐루시초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여사,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에밀 길렐스 등 정든 친구들이 묻혀 있다.

1990년 2월 11일, 오랜 망명 생활을 접고 26년만에 고국 땅을 밟은 그가 모스크바 공항 도착 직후 곧장 달려간 곳도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역이었다. 3일전 타계해 이곳에 묻힌 보리스 옐친 러시아 전 대통령도 로스트로포비치와 둘도 없는 친구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옐친을 가리켜 '내가 100 퍼센트 믿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러시아의 수호자' 메달을 받았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애칭은 '슬라바'.
므스티슬라프를 짧게 줄인 말이지만, 러시아어로 '영광' 이라는 뜻도 된다.

아제르바이젠의 바쿠에서 태어난 그는 4세때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0세때부터 파블로 카잘스의 제자였던 아버지로 부터 첼로를 배웠다. 16세때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첼로, 피아노는 물론 작곡, 지휘까지 배웠다.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 20세기 러시아 음악의 거장들을 두루 사사했다. 1942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와 협연으로 챠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 대뷔하였다.

그는 1955년 당시 볼쇼이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였던 소프라노 갈리나 비쉬네프스카야와 만난 지 4일만에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탁월한 피아노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아내의 독창회 때 반주를 도맡기도 했다.

1956년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부임한 로스로포비치는, 구 소련 시절 인민예술가 칭호와 함께 예술 분야 최고 권위의 레닌상과 스탈린상을 받았다.

1966년에는 영국 출신의 여류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가 그에게 배우기 위해 모스크바로 유학을 왔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그의 음악활동은 순탄치 못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로 반체제 소설을 쓰다가 탄압받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옹호하는 공개 편지를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이 '수용소군도'를 집필할 때 자신의 아파트를 몰래 제공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그도 끝내 박해를 받아 1974년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소련 당국이 모스크바에서의 연주를 금지하고 출국을 거부했을 때 자살까지 생각했다" 며 "그때 나를 지탱해준 것은 아내와 두 딸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각각 첼로와 피아노를 전공한 올가와 엘레나 등 두 딸을 두었다. 그는 파리에 체류하던 1978년 부인 갈리나 비쉬네프스카야와 함께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지만,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 의해 복권됐다.


1980년 2월 27일, 파리 살 플레옐에서는 한달 전 고리키로 유배당한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는 뜻을 함께 하는 동료와 후배 첼리스트 24명이 무대에 섰다.

로스트로포비치는 1991년, 군부 쿠데타 시도를 막기 위해 크렘린 광장에 모인 시위대에 가담하기 위해 사전 예고도 입국 비자도 없이 모스크바에 들어오는 용감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로스로포비치는 서베를린 쪽 벽 아래 혼자 앉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다. 이 모습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1999년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 행사에서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를린에 주둔했던 나라에서 온 젊은 첼리스트 166명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동시대 작곡가들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했고, 첼리스트로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테크닉과 깊이를 보였을 뿐 아니라, 첼로의 레퍼토리를 넓히는 데 누구보다 힘써 수많은 곡의 작곡을 위촉하고 직접 초연했다.

20세기에 숱한 첼로 명곡들이 그에게 헌정(獻呈)되었다.
브리튼,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의 해석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첼로 협주곡 2곡은 모두 로스트로포비치가 초연했다.

그는 생전에 "나의 음악으로 공산주의에 희생된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의 죽음에 보답하고 싶다" 고 말했다. 브리튼도 '첼로 소나타', '3개의 첼로 모음곡', '첼로 교향곡' 등을 모두 쇼스타코비치에게 헌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고발한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은 1996년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로 러시아에서 연주되기 전까지는 60년간 소련 정부가 금지곡으로 낙인을 찍었던 곡이다. 그렇지만 정작 ‘첼로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64세가 된 뒤에야 녹음할 만큼 음악 앞에서 한없이 겸손했다.

오랜 망명 생활에서도 고향을 못내 그리워했던 그는 아제르바이젠 바쿠에 1999년 러시아 어린이를 돕기 위한 로스트로포비치 재단을 설립한 데 이어, 2002년 '로스트로포비치 가정 박물관'을 열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써오던 첼로는 1711년산 '뒤포르 스트라디바리우스'로 현존하는 첼로 중 가장 뛰어난 악기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1977년부터 94년까지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구 소련의 박해를 받아 망명해온 음악가가 자유 서방의 심장부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지휘자로 활동한 것이다.

1993년에는 내셔널 심포니를 이끌고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무료 야외음악회를 열어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연주했다.


로스트포비치는 무엇보다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를 발굴한 스승으로 유명하다. 1994년 파리에서 열린 로스로포비치 국제 콩쿠르에서 장한나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겨줬다.

1995년 프랑스 칸 미뎀(MIDEM) 음반박람회 때 장한나가 쇼케이스 연주를 할 때도 직접 참석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런던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로코코 변주곡'등을 실은 장한나의 데뷔 앨범(EMI)에서는 직접 지휘봉을 잡았다.

첼리스트 출신의 명지휘자인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로 한번 협연해 보는 게 전세계 첼리스트의 꿈이었다. 미샤 마이스키도 1990년부터 스승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지휘를 부탁해왔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지금까지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로 협주곡 음반을 녹음하는 영예를 안은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 막심 벤게로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 첼리스트 장한나 뿐이다.

러시아인들은 그를 ‘영광’이라는 의미의 ‘슬라바(Slava)’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사랑을 보냈다. 일반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팔순 생일 잔치였던 지난달 27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를 위해 직접 축하연을 열었고 러시아 국영방송이 중계방송할 정도로 그는 러시아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자리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마치 유언을 하듯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투병 중이던 로스트로포비치는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참석했지만, 기쁨은 한 달을 넘지 못했다.


Jacques Chirac's wife, Bernadette, Queen Sofia of Spain and the widow of former Russian president Boris Yeltsin, Naina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장대함, 바로 그것이다. 지성과 정열이 무비(無比)의 기교와 결합됨으로써 희대의 웅변과 시정으로 충만되어 있다. 게다가 넘쳐나는 인간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명을 받게 한다. 그의 스타일은 전혀 새로운 연주양식이었으며, 어쩌면 <로스트로포비치 스타일>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의 수많은 레코드는 우열을 가리기 난감할 정도로 하나같이 수연(秀演)이다.
그중에서 우리의 귀에 익은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들어 보면 그의 연주의 특색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곡만 하더라도 탈리히 지휘의 체코 필하모니 반, 보울트 지휘의 로열 필하모니 반, 하이킨 지휘의 모스크바 방송관현악단 반,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니 반 등이 있는데, 이것을 순서대로 들어 보면 그의 명기의 성장을 더듬을 수 있다.

이 밖에 협주곡으로는 브리튼 지휘, 영국 실내관현악단 연주에 의한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과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된 브리튼 <첼로 협주곡> 결합반,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리히테르(피아노), 카라얀 지휘, 베르린 필하모니 연주에 의한 베토벤의 <트리플 협주곡>, 졸리베 지휘, 프랑스 국립방송 관현악단 연주에 의한 졸리베의 <첼로 협주곡 2번> 등이 발군의 명연반이다.

소나타로는 리히테르(피아노)와 공연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집>이 기념비적 명연이고, 브리튼 반주에 의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도 간과할 수 없는 명연이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 2 번>, <제 5 번> 결합반은 교과서와도 같은 연주다.

그의 지휘반으로는 파리 관현악단을 지휘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그의 부인 비쉬네프스카야 등이 출연한 볼쇼이 극장 관현악단 지휘의 <에프게니 오네긴> 전곡반이 있고, 비쉬네프스카야의 반주를 맡아 녹음한 <러시아 가곡 리사이틀>, 챠이콥스키와 브리튼의 <가곡집> 등이 있다.


Galina Vishnevskaya (C), the widow and daughters Yelena (L) and Olga (R)


Queen Sofia of Spain pays her last respect to the master cellist, Russian musician Mstislav Rostropovich

■ 앨범

01. Dvorak - Cello Concerto; Tchaikowsky / Rostropovich, Karajan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Mstislav Rostropovich, Cello


02. Beethoven - Complete Music For Cello & Piano / Rostropovich
        Mstislav Rostropovich (Cello)
        Sviatoslav Richter (Piano)


03. Legendary Treasures - Beethoven, Brahms, Grieg, Prokofiev / Richter, Rostropovich
        Mstislav Rostropovich (Cello)
        Sviatoslav Richter (Piano)


04. Schubert, Debussy, Schumann - Rostropovich, Britten
        Mstislav Rostropovich (Cello)
        Benjamin Britten (Piano)


05. Haydn, Saint-Saens, Edgar / Rostropovich
         London Symphony Orchestra,
         Mstislav Rostropovich, Gennady Rozhdestvensky - Conductor,
         Mstislav Rostropovich, Conductor


06. Grand Prix - Vivaldi, Tartini, Boccherini: Cello Concertos / Rostropovich
         Zurich Collegium Musicum,
         Paul Sacher, Conductor,
         Mstislav Rostropovich, Cello


07. Haydn - Cello Concertos No 1 & 2 / Rostropovich, Asmf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Mstislav Rostropovich, Conductor,
         Mstislav Rostropovich, Cello


08. Mstislav Rostropovich - Schumann, Cello Concerto, etc / Chopin, Saint-Saens, et.al
         All-Union Radio Orchestra,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Moscow Youth Orchestra,
         Kiril Kondrashin, Samuel Samosud, Grigori Stolyarov - Conductor
         Mstislav Rostropovich, Cello,
         Alexander Dedyukhin, Vladimir Yampolsky, Naum Walter - Piano


09. Rostropovich - Mastercellist / Legendary Recordings 1956-78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Boston Symphony Orchestra,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Mstislav Rostropovich, Gennady Rozhdestvensky,
         Herbert von Karajan, Seiji Ozawa - Conductor,
         Mstislav Rostropovich (Cello)
         Alexander Dedyukhin (Piano)



쟈료 출처 :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