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pin Nocturne

쇼팽은 녹턴이라는 피아노곡을 모두 21곡 작곡했는데, 보통 녹턴집에 수록된 것은 19곡뿐입니다.
그는 이 음악 형식의 창시자로서 반생을 러시아에서 지낸 영국의 존 필드(John Field 1782 - 1837 )의 작품 형식을 답습하여 꿈을 꾸듯이 조용한 선율로 작곡하였습니다.

반주는 페달의 효과를 살려 쇼팽의 독특한 섬세함과 서정성을 특성으로 하여 이를 극도로 예술화시켰습니다.
녹턴이란 본래 옛날 교회에서 밤의 기도서를 낭송하기 전에 행하는 기도의 노래였습니다. 녹턴은 고요한 밤의 정취를 노래한 서정시 곡이지만, 때로는 이 곡의 특징이 여성적인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과는 달리 용장하고 극적인 웅대한 작품도 있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은 감상적이고 무한한 우수가 잠재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주부가 중간부를 사이에 두고 재현되어 진행하는 세도막 형식으로 작곡된 작품이 많습니다.

야상곡(Nocturne)이 쇼팽의 작품 중에서 차지하는 의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선율이나 화성의 아름다움, 여기 깃든 풍성한 시정과 섬세한 감성 등은 아주 특출한 것이어서 쇼팽 음악의 한 측면을 가장 잘 나타낸 음악 형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상곡이라는 것 자체가 로맨틱하고 센티멘탈의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쇼팽의 야상곡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더군요. 쇼팽보다 한 살이 적은 같은 시대의 음악가 리스트가 그를 방문했을 때, 리스트가 쇼팽의 야상곡을 자기식으로 변형시켜 연주한 적이 있었답니다.
잠자코 리스트의 연주를 듣기만 하던 쇼팽이 그에게 다가가서는 "내 작품을 내가 칠 수 있게 해주겠어요? 쇼팽만이 쇼팽의 작품에 변화를 줄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합니다.

리스트가 비켜 난 피아노에 쇼팽이 앉는 순간, 마침 나방이 램프 속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불이 꺼졌는데 리스트가 불을 켜려 하자 쇼팽은 "켜지 마시오. 대신 다른 모든 촛불도 꺼 주십시오. 내겐 달빛만으로도 충분하니까"라며 희미한 달빛 아래서 피아노에 영혼을 불어 넣으며 한시간 내내 연주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몰아의 경지에서 경청하다 눈물이 가득 찬 리스트는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피아노의 시인이며, 나는 하찮은 어릿광대였소"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라도 쇼팽의 피아노 음악이 그만큼 듣는 이에게 주는 감동이 크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서양 음악사를 통털어 봐도 쇼팽만큼 피아노를 사랑했고 피아노를 위해 죽어간 작곡가는 없다고 하지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파리에서 죽기까지 그가 살다 간 39년의 짧은 생애는 피아노와 함께 피고 진 '슬프도록 아름다운' 생애였습니다.
마리아 후안 피레스(Maria Joao Pires , 1944. 07. 23. ~ )

모차르트 음악의 탁월한 해석가로 정평난 포르투갈 출신 피아니스트 Maria-Joao Pires(마리아-후안 피레스).

그녀는 이름난 대가들의 전통적 연주를 따라하기 보다는, 음악의 정신적인 깊이를 강조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데, 피레스의 이름을 널리 알려준 모차르트 연주에서 이런 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다.

또한 피레스는 넓은 시각으로 음악을 조망하며 뒤얽힌 복잡한 구조 속에서 뚜렷한 골격을 간파해내며 작곡가의 생각을 오롯이 전달해주는 훌륭한 통로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쇼팽이나 슈만같은 낭만주의 작품 연주에서 느껴지는 피레스 자신의 열정과 음악 자체에 대한 논리적인 해석의 조화는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겠다.

많은 비평가들의 지적처럼, 폭넓은 감정 표현력, 변화무쌍한 음색, 작품 내 다양한 움직임을 포착해 듣는이에게 전달하는 뛰어난 능력은 피레스만이 가진 특출난 재능이다.

3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피레스는 5살 때 대중 앞에서 연주를 펼칠 정도로 신동이었다.
7살 때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했으며 9살 때는 포르투갈 내 권위 있는 경연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이후 리스본 음악원에 입학해 Campos Coelho(캄포스 코엘료)와 Francine Benoit(프란신 베노아) 문하에서 음악을 배운다.

16살에 음악원을 졸업한 피레스는 독일에서 유학하며 뮌헨에서는 Rosl Schmidt(뢰슬 슈미트)의 가르침을, 하노버에서는 Karl Engel(카를 엥겔)의 가르침을 받는다. 1970년, 베토벤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피레스는 점차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등 유럽과 미국의 주요 교향악단과 함께 공연을 펼친다.

피레스는 그녀에게 수많은 갈채가 쏟아졌던 모차르트 연주는 물론, 바흐, 쇼팽, 슈베르트 등 다른 대가들의 작품 해석에도 뛰어나다.
피레스의 연주 음반 또한 굉장한 성공을 거뒀는데, 1989년 이후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과 전속 계약을 맺고 바흐, 쇼팽의 야상곡, 슈베르트의 즉흥곡, Claudio Abbado(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 한 두 장의 모차르트 협주곡 앨범 등 평단의 찬사를 받은 작품들을 발표 해왔다.

특히, 모차르트 소나타 앨범은 1990년 그랑프리 디스크(Grand Prix du Disque)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피레스는 실내악에 큰 관심을 갖고 바이올리니스트 Augustin Dumay(오귀스탱 뒤메이)와 함께 유럽 및 아시아 순회 공연을 나서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 [Artist Portrait : Maria-Joao Pires]를 비롯한 몇 장의 연주 음반이 발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