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피아노 협주곡 20번

18세기 피아노포르테(pianoforte, 피아노의 원래이름)의 탄생과 함께 나타난 피아노 협주곡은 모차르트 손에 의해 고전적인 완성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편곡을 포함 무려 30여 곡에 이르는 피아노 협주곡을 남기는데, 그 스스로의 연주회를 위한 이들 작품은 고전적인 양식의 하나로 간주된다.
음악학자인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 1880~1952, 독일 - 모차르트 연구가)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해
‘피아노 협주곡에 있어서 모차르트는 협주곡적 요소와 교향곡적 요소를 융합하였고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의 높은 경지의 통일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이런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대부분이 말고 깨끗한 그의 작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고전적인 3악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조성 역시 대부분 장조의 밝은 분위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유독 20번과 24번 협주곡만이 특이하게도 단조의 조성을 취하고 있고 특히 20번은 최초의 단조 협주곡이자 그의 창작적 의욕의 절정이 이 곡에서 나타난다.

번호가 있는 27곡이 협주곡 중 단조인 것이 단 두 곡뿐인 것은 당시 협주곡이 연주가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곡이었고, 그래서 밝고 화려한 성격의 장조 곡이 유행하던 때라 단조는 매우 드물었던 것이다.

모차르트는 17번 피아노 협주곡 이후부터는 이전의 사교적인 그리고 오락적인 영역을 벗어난 작품을 구사하게 된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20번이고, 이것은 사교적인 성격이 완전히 배제된, 격정적이며 낭만주의적인 베토벤을 떠올리는 느낌마저 전해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베토벤이나 브람스는 이 곡의 1, 3악장을 위한 카덴차(cadenza)를 남기고 있다. 현재 모차르트가 남긴 카덴차는 전하지 않는다.

곡은 1785년 즉 모차르트 나이 29세에 협주곡 21번 K.467, 22번 K.482와 같이 작곡하였다. 이 시기는 그가 1781년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궁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누리게 된 빈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던 때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이 완성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

저음의 꿈틀거리는 어둡고 비극적인 1악장 시작부터 이전의 협주곡과는 뭔가 다름을 바로 알 수 있는데, 극적 감명을 줌과 동시에 심오함을 전하고 있다. 특히 그 비장감은 남다른 데가 있어 절망감과 더불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한편 2악장 로만체(romance)는 g단조의 눈부신 강렬한 대조로 독백과도 같은 긴장감과 따스한 감정의 행복감이 교차된다. 그리고 3악장 론도(rondo)는 격한 상승의 피날레를 주제로 지금까지의 여러 작품을 지나 새로운 지평이 여기에서 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성도 단조인 만큼 음악적 분위기도 극적이며 어둡고, 그래서 모차르트의 숨겨진 비애(悲哀)가 절절히 흐르고 있다. 이렇듯 곡의 비장하고 특출함이 듣는 이에게 여러 감정들로 색다른 감동을 잔잔히 남겨 준다.

모차르트의 단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떨쳐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의 비상이 날개 짓을 하는 이 협주곡의 아름다운 곡상(曲想)은 천상이 슬픔이 무엇인가를 담담하게 가르쳐 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악장을 들으면 과연 순수의 심연을 통한 비극의 세계에 몰입이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편하고 쉬운 그리고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속에서 그 어떤 순간 갑작스레 밑에 깔린 격정적인 감정이 노출되게 될 때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 피아노 협주곡 20번이라 하겠다.

초연은 작곡과 같은 해인 1785년 2월에 빈의 시립 집회소인 멜그루베(Mehlgrube)의 예약 연주회에서 열렸는데, 이를 지켜본 아버지 레오폴드(Leopold Mozart, 1719~1787)는 난네를(Maria Anna Nannerl Mozart, 1751~1829)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음악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오케스트라도 뛰어났다. ···사보하는 사람이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일을 아직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론도의 전곡을 쳐 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너의 동생은 좋은 연주를 해냈다. ···네 동생이 무대를 떠날 때 황제께서는 모자를 들고 고개를 흔들며 ‘브라보 모차르트’를 외치셨다···.”
또한 하이든(Franz Josehp Haydn, 1732~1809)역시 초연 다음날 모차르트 집에서 레오폴드에게
“나는 성실한 인간으로서 맹세코 말하지만 당신의 아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혹은 이름만으로 아는 작곡가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모차르트에게 피아노 협주곡이란 피아노 음악의 최고봉이라 하겠는데 이런 협주곡은 피아노가 중심의 작품이 아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하나로 융합된 것이었다. 이런 협주곡이 양식적으로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것은 1785년으로 이해 2월 처음으로 나온 협주곡인 바로 20번 협주곡이었던 것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