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모차르트의 단조 협주곡 두 곡을 담은 하스킬(Clara Haskil)의 음반은 익히 알려진 그녀의 대표적인 연주로 자리하고 있다. 두 곡의 연주 모두 훌륭한 연주이나 비극적인 분위기가 좀 더 충만한 20번의 연주가 더욱 감명적이라 하겠다.

하스킬은 이 20번의 협주곡 녹음을 열러 번 남기었다.
먼저 모노 시대인 1950년 헨리 스보보다(Henry Swoboda, 1897~1990, 체코) 지휘의 빈터투르(Winterthur) 교향악단과의 협연(WESTMINSTER), 그리고 54년에 남긴 두 가지 녹음 즉 파울가르트너(Brnhard Paumgartner, 1887~1971, 오스트리아)의 빈 심포니 협연(PHILPS), 프리차이(Ferenc Fricsay, 1914~1963, 헝가리)의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의 협연(DG)이 있다.

또한 마르케비치와의 녹음이 있기 1년 전인 1959년 거장 지휘자 클렘페러(Otto Klemperer, 1885~1973, 독일)와의 루체른 축제 관현악단과 협연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 중 스보보다나 파움가르트너의 음영이 짙은 연주도 좋지만, 스테레오 녹음인 1960년 마르케비치와의 연주를 일반적으로 추천할 수 있다. 다만 마르케비치의 반주가 다소 과장된 극적 표현을 하고 있고 귀에 거슬리는 면이 없지 않다. 그의 지휘는 일정 간격을 두어 강하게 밀어붙이기 식의 반주인데, 이것이 피아노와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하나 오히려 묘한 긴박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이런 반주는 음악적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소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나, 하스킬의 비장미 넘치는 분위기가 전곡을 압도하고 있어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이 연주는 하스킬이 죽기 1개월 전의 녹음으로 그녀의 마지막 생을 투영이나 하는 듯 긴장감과 비장미 서린 어두운 그림자의 분위기가 충만해 있다. 1악장 서두(序頭)부터 세차게 몰아붙이는 관현악 반주 후의 하스킬의 전아한 음색이 단연 돋보이며 어둡게 흘러가는 슬픈 선율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특히 2악장 로만체의 담담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일말의 불안감과 함께 펼쳐지고 있어 만년에 찾아든 황혼의 무상감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하스킬의 모차르트 20번 협주곡 연주는 곡의 비극적인 면을 단아한 음색으로 격조 높게 표출한 것으로, 석양에 지는 낙조(落照)의 슬픔을 보듯이 사라져 간 노대가(老大家)의 아름다운 천상의 노래가 숨 쉬고 있다. 더불어 비애의 미학을 오묘하고도 절묘하게 표현한 한 인간의 삶의 고백이 구구절절이 담겨져 있다 할 것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