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의 녹음 수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약 100종을 헤아리는 것 같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런 많은 녹음들의 연주 경향은 곡이 지니고 있는 산뜻하고 신선한 감미로운 면을 살려내는 것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런 면에서 좋은 연주들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러다 보니 다소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고 더불어 멘델스존 음악의 숨겨진 측면, 즉 ‘행복의 우수(憂愁)’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것을 오이스트라흐(David Fyodorovich Oistrakh, 1908~1974, 러시아)의 연주에서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는 평소 엄청난 양의 연주와 녹음을 보여주고 있어 가장 널리 연주되는 명(名)바이올린 협주곡인 베토벤이나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연주 모두 많은 수(거의 10회를 넘는)를 남기고 있다.
특히 브람스나 차이코프스키는 최고의 연주를 보여준 바 있고 베토벤만이 다소 아쉬운 것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정작 오이스트라흐 자신은 그의 질박한 바이올린 음색 특성이 낭만적인 멘델스존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멘델스존의 협주곡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여기 소개하는 1949년 콘드라신과의 연주와 1955년
오먼디와의 연주, 1962년 가우크(Alexander Gauk, 1893~1963)와의 연주 세 가지만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한 기록으로는 자신이 모스크바 필하모닉을 지휘하고 파르초멘코(Olga Parchomenko)가 바이올린을 연주한 1967년 실황이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1955년 오먼디(Eugene Omandy. 1899~1955, 헝가리)와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녹음은 연주 자체의 뛰어난 수준을 보여줌과 동시에 오이스트라흐만의 무겁고 장중한 아름다움이 잘 표현된 훌륭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콘드라신과의 1949년 녹음에서는 다른 연주에서 전해 느낄 수 없는 깊은 사념(思念)과 황량(荒凉)한 상념에 잠긴 인간 오이스트라흐의 고독한 숨결을 만나게 된다.
실상, 그의 연주는 감미로운 곡상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어서 첫 악장부터 다소 무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그만의 두터운 질감을 바탕으로 한 짙은 정감을 연주가 또 다른 세계의 멘델스존을 보여주어 묵직한 집중력의 연주를 만들고 있다. 특히 여타 연주의 부드러운 멜로디나 단순 기교의 과시가 전해 주는 값싼 감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1악장 알레그로 시작부터 독특한 감흥의 흐름은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듯하여 적막감마저 감돌고 있다. 마치 깊은 사색에 빠진 듯한 오이스트라흐만의 우울한 심중이 전해지는 듯하다.
2악장 안단테도 감미로움이 덜하기는 하지만 깊게 울리는 이성적인 낭만이 독특한 감흥을 자아낸다.
그리고 3악장 알레그로의 빠르고 정확한 기교의 운지는 놀랄 만한 수준을 유지하며 장쾌하고도 긴박감 넘치는 활력을 전해 준다. 특히 피날레의 쾌감이 대단하다. 한편 반주를 맡은 콘드라신의 무뚝뚝한 표정의 반주도 묘한 매력으로 다가선다. 전체적으로 곡의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방황하는 듯한 슬픈 우수와 쓸쓸함을 드러낸 강렬하고 충격적인 해석의 연주라 하겠다.
이렇게 자칫 지나친 센티멘털리즘으로 흐를 수 있는 소지를 엄격히 배제하고 있는 오이스트라흐의 각별한 예술적 감각이 이 곡의 또 다른 준엄한 연주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고적함을 달래고자 강렬히 울부짖는 비가(悲歌)와 같은···.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