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과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하면 멘델스존의 것을 들 수 있다.

이 협주곡은 우아한 아름다움이 피상적이라 타 협주곡에 비해 깊이가 없다고들 하는데, 곡이 지니고 있는 감미로움이 독특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어 널리 사랑받고 있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협주곡은 여성적이라고 부르기도 하여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 좋은 연주가 많은 편이다. 하여튼 이 협주곡은 로맨티시즘의 정수를 보여준 바이올린 협주곡의 여왕 격인 곡으로, 슈만(Robert Schumann, 1810 ~ 1856)이 말한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 찬사가 곡상을 대변한다.

멘델스존은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과 당시의 낭만주의를 결합시키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음들을 대비시키는데 있어 관현악과 독주자를 서로 대립시키는 고전적 형식의 협주곡은 그의 기질에도 맞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e단조 협주곡은 낭만적 친밀함과 극적인 구조를 결합시켜 이런 것을 훌륭히 극복하고 있다.

이 곡의 발단은 1837년 그의 현악 4중주 4번 e단조 Op.44-2의 1악장에서 시작되는데 여기서 바이올린 협주곡 첫 주제를 보게 된다. 이 4중주곡은 다비드(Ferdinand David, 1810~1873, 독일)가 이끄는 악단이 초연을 하였다. 다비드는 당시 멘델스존이 상임지휘자로 있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의 악장(樂長)이었고,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 헝가리)이나 빌헬미(August Wihelmj, 1845~1908, 독일) 등을 배출한 19세기 명교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멘델스존은 다비드에게 헌정할 요량으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착상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29세인 1838년이었다.

하지만 작곡은 쉽게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멘델스존은 다비드에게 편지를 써서
“다음 겨울까지 당신을 위한 협주곡을 쓰려고 합니다. 그것은 e단조의 협주곡으로 구상 중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 부분이 날 편안히 놔두질 않고 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습니다.”
라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1844년 다비드에게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해 조언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곡에 착수하여 완성하게 된다.
훗날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요아힘에게 조언을 구해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곡이 6년씩이나 걸린 것은 속필가인 멘델스존으로서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작곡에 착수하기 1년 전인 1837년에 장르노(Cecile Jeanenaud, 1817~1853)와 결혼을 하여 신혼 생활이었고, 라이프치히 음악원 창설을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버밍험 음악제와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지휘자로서 활동하는 등 매우 바쁜 날들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시기에 그가 느꼈던 복잡한 관료주의와 무지함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를 이루었고 그래서 그는 ‘베를린을 떠나는 것이 행복을 향한 첫걸음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1844년 결국 베를린을 떠났고 영국에 가서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하여 그가 사랑하던 가족들의 곁에서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바이올린 협주곡을 9월에 완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곡은 1845년 3월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독주자는 다비드였고, 지휘는 당신 멘델스존이 건강이 좋지 않아 악단의 부지휘자인 덴마크 출신의 가데(Niels Gade, 1817~1890)가 맡았다.

곡은 첫 악장부터 독특한 형태를 취하는데 독주 등장을 위한 긴 서주가 아닌 1마디 반만에 독주를 바로 등장시킨다.
이런 것은 훗날 요아힘에 의해 부루흐(Max Bruch, 1838~1920)의 협주곡 1번에도 적용되고 또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0)의 협주곡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카덴짜(cadenza)는 멘델스존이 직접 써넣고 있다. 2악장은 청중의 개입을 막기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그대로 진행되는데 안단테(andante)의 노래하는 듯 한 우아함이 백미를 이룬다. 또한 이런 안단테에는 우수(憂愁)어린 청정함마저 머금고 있다. 마지막 3악장은 열정적인 피날레인데 마치 그가 17세 때 작곡한 <한여름 밤의 꿈> Op.18의 서주나 현악 8중주 Op.20의 스케르초(scherzo)악장을 연상시킨다.

이런 곡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영국)의 지적처럼 베토벤 협주곡의 계승자라 할 만한 것으로 멘델스존 특유의 선율미가 돋보인 노래의 결정판이라 하겠다. 그래서 영국의 평론가 베네트(Willam Stemdale Bennett, 1816~1875)는 베토벤이 협주곡과 비교하여 ‘아담과 이브(Adam & Eve)'라고 하였는데, 말하자면 웅장하고 남성적인 베토벤의 것에 비해 매우 여성적인 곡이라 하겠다.

참고로 1951년에 메뉴인(Yehudi Menuhin, 1916~1999, 미국)이 멘델스존의 d단조 협주곡을 발견하여 현재 멘델스존이 남긴 바이올린 협주곡은 두 곡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d단조 협주곡은 13세 때의 작품으로서는 놀라운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나 기법적으로 e단조 협주곡과는 현격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