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그의 극음악 페르 귄트

페르 귄트는 본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부친이 재산을 모두 낭비한 끝에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오제와 가난하게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페르 귄트는 자신이 크면 분명히 성공할거라는 망상 속에서 일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엉뚱한 짓만 하고 다니는데, 외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 오제는 아무리 나쁜 일을 하고 다녀도 나무라지를 않는다.

페르 귄트는 가면 갈수록 점점 이상한 일만하고 다니고 이제는 동네 사람들도 상대를 해주지 않는데, 어느날 마을에서는 토크시타트와 잉그리트의 결혼식이 열리게 된다.

말할 나위도 없이 페르 귄트는 이 결혼식에도 나타나는데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솔베이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지만 화려한 결혼식에 예쁜 드레스를 입은 신부 잉그리트를 보자 또 엉뚱한 생각이 발동, 잉그리트를 납치하여 산속으로 간다.

여기서 1막이 끝나면 슬픈 전주곡에 이어 2막이 시작되는데 2막의 전주곡이 '잉그리트의 탄식'이라 불리는 곡으로 제2조곡 1번에 들어가 있다.

산으로 도망간 두 사람은 토굴 속에 숨어 들어가 얼마를 지나게 되지만 신부의 화사한 옷도 더러워지고, 또 금방 싫증이 난 페르 귄트는 잉그리트를 버리고는 산속을 헤메다가 산을 지배하는 마왕의 딸을 만나게 된다. 마왕의 딸은 그를 만나자 그를 데리고 마왕의 궁전으로 가서 함께 춤을 추며 결혼해 줄것을 부탁하는데 이장면에서 연주되는 곡이 '산왕의 궁전에서'라는 제1조곡의 네번째 곡으로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점점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마지막부분은 숨막힐 것 같은 흥분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페르 귄트가 마왕의 딸의 청혼을 거절하자 화가 난 마왕의 무리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때마침 마을의 종소리가 들리며 날이 밝아오자 굴은 허물어지고 마왕의 무리들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페르 귄트는 위기를 모면케 된다.

한번 혼이 난 페르 귄트는 그동안 잊고 있던 애인 솔베이그를 찾아가 그 곁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마왕의 딸이 와서 그곳에 나타나 못살게 굴자 페르귄트는 그곳을 떠나 늙은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가고,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 오제는 아들의 허풍 섞인 말을 들어주며 고요히 눈을 감는다.

어머니 오제가 죽는 장면의 음악이 '오제의 죽음'으로 불리는 제1조곡의 두번째 곡인데 그처럼 간결하고 단순한 형식으로 어떻게 그러한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지 이 곡을 들어보면 감탄치 않을 수 가 없다. 이곡은 고금을 통해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슬픈 일을 당하면 각 방송국은 으례 이곡을 방송한다.

어머니를 잃은 페르 귄트는 새로운 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모로코의 해안지방으로 나가는데 이부분이 4막에 해당되며, 4막이 시작되면서 연주되는 것이 '아침의 기분' 혹은 '아침정경'으로 불리는 제1조곡의 첫번째 곡이다. 목가풍으로 아침기분을 나타내는 이곡은 산뜻하며 유쾌해서 언제 들어도 듣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며,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방송국의 시그널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모로코에서 페르 귄트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으나 사기꾼에게 잘못 걸려 가진 돈을 다 빼앗기고 이번에는 아라비아 사막지대로 향한다. 사막지대에서 페르 귄트는 예언자로 변신, 그의 말을 믿고 모여드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재물을 받아 다시 부자가 되며 더군다나 추장의 딸 아니트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부분 - 그러니까 아라비아에서 '예언자'로 행세할 때 아라비아의 미녀들이 그의 앞에서 춤을 추게 되는데 이때 연주되는 곡이 '아라비아의 춤'으로 제2조곡의 두번째 곡이며 추장의 딸 아니트라가 요염한 자태로 페르 귄트를 매혹시키는 장면의 음악이 '아니트라의 춤'으로 제1조곡 3번에 들어가 있다. 동양풍의 선율과 마주르카리듬이 교묘히 얽혀 음악만 들어도 흥이나는 '아니트라의 춤'은 일반 무용음악으로 쓰여지고 있으며 그리그가 어떻게 이러한 류의 정경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었는지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아니트라의 요염한 자태에 이끌려 예언자로서의 위엄도 모두 잊어버리고 세속적 쾌락 속에 빠져들던 페르 귄트는 피곤에 못 이겨 깊은 잠 속에 빠져들게 되는데 꿈속에서 그동안 잊고있던 영원한 연인 솔베이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솔베이그는 지금도 물레를 돌리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솔베이그가 부르는 노래가 유명한 '솔베이그의 노래(Solvejgs Lied)'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도 일찌기 수입되어 클레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다알고 있는 곡인데 옛날에는 '솔베이지'라고 했으나 원어의 발음이 '솔베이그'가 맞아 지금은 그렇게 부른다. '페르 귄트'중에서 이곡은 처음 서곡에 들어가있고 모두 세 군데에서 쓰여지고 있는데 제2조곡 마지막인 네 번째에 포함되어 있다.

'겨울이 지나고 또 봄은 가고 여름날이 가면 또 세월이 간다.'로 시작되는 이곡은 잊었던 고향을 느끼게도 하고 전편을 흐르는 깨끗한 순정은 아무리 악한 사람들의 마음일지라도 눈녹 듯 녹여주는 침투력을 가지고 있다.

꿈에서 깨어난 페르 귄트는 빨리 돈을 벌어 솔베이그의 곁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새로운 세계인 미국으로 향한다.
미국에서 페르 귄트는 캘리포니아 지방의 금광으로 들어가 많은 돈을 벌게되는데 재물을 싣고 고국으로 돌아가던 배가 예기치 못한 폭풍우에 휘말려 전복되고 모든 재물을 바닷속에 수장시킨 페르 귄트는 겨우 생명만 건지게 된다. 배가 폭풍우에 휘말리는 장면에서 연주되는 곡은 제2조곡의 세 번째로 들어있는 '페르 귄트의 귀향'으로 무서운 폭풍과 조난장면을 묘사하는 격렬한 리듬으로 시작, 드디어 바다는 다시 고요해진다는 데서 조용히 끝난다.

빈털털이가 된 페르 귄트 - 이제 그는 나이도 먹어 백발이 된 초췌한 노인의 모습으로 고향 땅을 밟는데 지난날을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페르 귄트는 산골 오두막집으로 솔베이그를 찾는데 그곳에는 아직도 솔베이그가 물레를 돌리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솔베이그의 머리도 이제는 백발이 성성하고 몸은 늙었지만 페르 귄트를 바라다보는 그녀의 눈은 예나 다름이 없이 빛나고 있었다.

오랜 방황의 생활에서 마음과 몸이 쇠잔해진 채로 돌아온 페르 귄트는 솔베이그를 바라다 보는 순간 '당신의 정신이 나를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주었구려'하며 쓰러진다. 솔베이그는 아무 말없이 페르 귄트의 머리를 자기의 무릎에 기대게 한채로 마지막노래 '자장가'를 부르게 되는데 '솔베이그의 자장가'로 불리는 이곡은 조곡에는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마디마디 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페르 귄트는 자장가를 들으며 영원한 잠 속에 빠져들고 두 뺨을 타고 흐르는 솔베이그의 눈물이 페르 귄트를 적시는 가운데 전5막의 시극 '페르 귄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글: 한 상우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