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키와 수크 3중주단
이런 <둠키>의 연주를 생각할 때 오랜 연륜의 보자르 3중주단(Beaux Arts Trio)의 구녹음(PHILIPS, 1969년)을 통상적으로 거론하게 된다. 이것은 곡의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살린 높은 음악적 완성도의 최적의 연주임에는 틀림없으나 민족성의 표출이란 면에서는 역시 수크 3중주단의 연주를 좀 더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
드보르작의 외증손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셉 수크(Josef Suk, 1929~ , 체코)가 주축을 수크 3중주단(Suk Trio)은 실내악 연주의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였다. 이들의 명연은 베토벤 피아노 3중주 <대공(Archduke)> Op.907 연주가 널리 알려진 것이나, 그들 연주의 본령은 역시 드보르작의 3중주 연주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들이 연주한 드보르작의 피아노 3중주 제4번 <둠키>의 연주는 이 곡 최고의 연주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의 증손자가 참여하였고 나머지 이들도 동향인 것이라 그 지방의 느낌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뛰어난 연주를 들려줌은 물론이다. 또한 이런 배경이 아닐지라도 이들의 연주는 높은 음악성을 갖춘 독보적인 연주로 자리한다.
수크 트리오의 <둠키> 녹음 기록은 모두 3회에 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1960년대 초 DG사의 녹음, 1974년의 수프라폰 녹음, 그리고 1977년에서 78년에 녹음된 피아노 3중주 전 4곡의 녹음 중에서 있는 1978년 데논사의 녹음(현재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다. 어느 연주나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탁월한 연주이지만, 3중주 전곡 녹음의 완성도를 겸비한 1978년 연주를 최고의 연주로 손꼽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이들의 앙상블은 동향(同鄕) 출신이라는 끈끈한 유대가 남다른 것이며 특히, 여타 다른 3중주단이 흉내조차 못 낼 그 지방만의 토속적인 보헤미아의 정서 표출은 단연 절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크 3중주단이 연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자, 이 곡의 여러 연주 중에서도 단연 빛을 발하는 최고의 연주인 것이다. 또한 이들의 이름을 길이 빛낸 걸작이라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화사하면서도 방랑적인 둠카의 무곡적인 면도 훌륭히 표현하고 있으며, 몸에 밴 듯 한 향토적인 내음이 화사하게 풍기는 분위기는 과연 수크 트리오답다 할 것이다.
첫 악장부터 애수의 가락과 어두운 정열이 눈부시게 교차하며, 긴장감을 갖춘 민속적인 어두운 애가(哀歌)가 전편을 주도한다. 낭랑한 피아노의 싱그러움과 현악의 멋진 화음도 좋고, 정감 어린 첼로 역시 나무랄 데가 없다.
2악장 아다지오(adagio)에는 서글픈 비탄과 친숙한 분위기가 서려있고, 3악장 안단테(andante)의 구슬픈 향수가 가슴 깊이 파고들어 깊은 감동을 전해 준다. 또한 동경과 애수에 가득 찬 4악장과 활기의 5악장 알레그로, 그리고 마지막 6악장은 비가풍(悲歌風)의 둠카와 행복감의 절정이 진하게 녹아든다.
이런 수크 트리오의 그윽한 연주는 드보르작 피아노 3중주의 이상향을 그린 이곡 최고의 경지라 하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