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키와 드보르작
보헤미아 최고의 작곡가 드보르작은 19세기 민족주의 음악의 기틀을 다진 국민음악파의 거목으로 끝내 변색되지 않은 강한 음악적 개성을 지켰던 인물이다. 외향적인 화려함은 초월하며 음악의 진수를 간직한 실내악 분야에 이런 대작곡가가 괄목할 만한 작품을 남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14곡의 현악 4중주를 비롯하여, 피아노 5중주, 피아노 4중주, 현악 5중주 그리고 피아노 3중주가 그 주축이라 할 수 있다.
피아노 3중주는 모두 4곡을 남겼고 악보를 분실한 두 곡까지 하면 모두 6곡이나 된다. 특히 이 중에서 <둠키>라는 제목이 붙은 4번 e단조는 현악 4중주 <아메리카>와 더불어 드보르작 실내악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명작이다.
전작인 피아노 32중주 3번 f단조는 작곡된 때가 1883년인데 한 해 전 어머니를 여의었고 또 오스트리아의 압정에 대한 체코의 저항이 거세게 일던 때라 이런 암울한 상황이 반영되어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7년 후인 1891년 작곡된 4번 <둠키>는 그의 나이 50세에 들어선 때로 이전과 달리 프라하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는 등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한 행복한 시기였다. 그런 만큼 곡은 힘차고 아름답고 그리고 슬라브 특유의 정서가 한껏 피어오르고 있다.
제목인 <둠키>는 본래 우크라이나 반두라 지방 등지에서 민속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애가풍의 민요인 <둠카(dumka)>의 복수형으로 슬픈 선율과 정열적인 선율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마치 헝가리의 차르다슈(czardas)와 비슷하다. 둠카의 말뜻은 ‘슬픔’이나 ‘한탄’이란 뜻이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드보르작은 민요형식인 둠카를 쓴 것이 아니라 ‘관조하다’, ‘명상하다’란 뜻의 체코어 두마티(dumati)란 말이 둠카와 유사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고, 둠카에 이런 명상적인 요소를 주입시키게 된다.
쇼레크(Ostakar Sourek. 1883~1956)의 의견도 이와 같고 크랩함(John Clapham 1908~1992)도 ‘드보르작은 본래 민요 형식의 둠카의 특징을 모르는 채 둠카를 음악 형식으로 만들어 쓴 것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드보르작의 둠카는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이지만 즐거움도 대조적으로 덧붙여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둠카’는 피아노 3중주 <둠키>뿐 아니라, 피아노 5중주인 A장조 Op.81, 현악 4중주 10번 Op.51, 현악 6중주 Op.48 2악장에 각각 둠카를 넣고 있음을 상기할 때 드보르작의 둠카에 대한 강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피아노 3중주인 <둠키>는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작품을 모방한 독일의 정통파 실내악과 교향곡의 구성법을 따르지 않고 슬라브적인 체질에 보다 걸맞은 독자적인 절대음악의 구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소나타 악장의 구성이 아닌 흡사 ‘둠카 모음곡’이라 할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것은 1887년 만든 피아노 5중주 Op.81이나 1889년 만든 피아노 4중주 Op.87에 이미 그 전조를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이 두 곡은 소나타 형식에 기초한 전통적인 4악장의 소나타 형식을 답습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1889년 완성된 교향곡 8번에서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의 타파를 거쳐 피아노 3중주에서 그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기는 그가 미국으로 가기 1년 전인 전성기로 그만의 독특한 작품이 정당한 대접을 받으면 작곡가로서 위상을 한껏 드높이게 된다.
곡은 모두 6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1,2악장을 한 악장으로 보아 5악장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형식은 소나타 형식이 아닌 2부 형식 내지 3부 형식 그리고 론도(rondo)형식을 기초로 한 자유로운 모음곡 형식이다.
말하자면 그 어떤 형식이나 주제가 아닌 심리적인 세심한 배려가 있는 독창적인 것이다.
처음 3개의 악장은 쉬지 않고 아타가(attacca)로 계속 연주된다. 또한 전곡을 통해 첼로의 활약이 매우 돋보인다.
곡은 전체가 슬라브 민족의 애가인 둠카의 집합체라고 할 아름답고 힘찬 것인데 내면에는 드보르작의 행복한 감흥과 민족적인 애수가 교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이 곡의 초연은 1891년 4월 그의 탄신 50주년을 기념해 프라하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수여받고 축하하는 공연 중의 일부로 라크너(Ferdinand Lachner, 1856~1910)의 바이올린, 위한(Hanus Wiahn, 1855~1920)의 첼로 그리고 자신의 피아노로 이루어졌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