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쇼팽 콩쿠르의 입상자들은 이 곡을 녹음하여 모두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 1937~ , 1955년 2위)로부터 시작하여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 , 1960년 우승),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 1941~ , 1965년 우승), 찌머만(Krystian Zimerman, 1956~ , 1975년 우승), 부닌(Atanislav Bunin, 1967~ , 1985년 우승)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독특한 개성의 프랑수아 (Samson Francois, 1924~1970)나 리파티(Dinu Lipatti, 1917~1950)의 좋은 연주도 있다.

그러나 여기 단지 규범적 내지 모범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소 소외되기도 하는 거장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이 연주는 말 그대로 쇼팽 해석의 대가다운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표준적인 연주이다.

루빈스타인은 이 곡의 연주를 모노 시대인 1937년 존 바비롤리(John Barbirolli, 1899~1970, 영국)와의 녹음(EMI)을 비롯하여 1953년 왈렌스타인(Alfred Wallenstein, 1898~1983), 1947년 발터(Bruno Walter, 1876~1962)와 녹음도 남겼지만, 여기 소개된 스크로바체프스키(Stanislav Skrowacaewsky)와의 연주가 더 높은 완성도의 최고 연주로 손꼽힌다. 더욱이 나이 70세가 넘은 노경(老境)에 들어선 대가의 완숙한 경지가 한층 더 돋보이는 감명적인 연주를 보여 준다.

그의 연주에서는 거창한 어법이나 놀라운 기교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70세가 넘어서부터 내면적인 아름다움과 고담스런 색채의 자연스러움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쇼팽 전문가라 칭하여 화려한 것을 기대할지도 모르나 오히려 담담하다는 표현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담담한 기조 속에서도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그만의 정취는 화려함을 넘어서 더욱더 진한 음악적인 감흥을 전한다.

이 연주가 바로 이런 것을 대변하는 것으로, 그만의 독특한 음색인 스케일 크고 뭉떵한 터치에서 우러나오는 청명한 울림은 쇼팽 연주에서 더없이 빛나고 있다. 과부족 없는 서정(抒情)의 필치로 펼치는 감성적인 정감의 연주는 가히 일품이라 할 것이다. 또한 박력적인 면에서도 풍성함 역시 갖추고 있어 촉촉한 시정의 이상적인 재현이라 할 수 있는 연주를 보여준다.

2악장 로망스(romance)의 연주를 듣노라면 쇼팽 음악의 경박한 즐거움이 아닌 품위를 동반한 진정한 음악적 유희를 점하게 되며, 첫사랑 그라드코프스카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이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또한 과하지 않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쇼팽의 화려한 측면과 자연스럽게 감도는 폴란드의 지성과 같은 연주가 듣는 이를 아주 편하게 해 준다. 마치 평범함의 진리를 통해 전해지는 위대함이 스스럼없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지휘를 맡은 스크로바체프스키 역시 폴란드 출신답게 마음의 공감을 가지고 곡을 대하고 있고 루빈스타인과 절묘한 호흡을 이루며 존재감이 없는 듯 한 자연스런 반주로 명연 창출에 한껏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떤 심오한 깊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소박한 감흥이 전해 주는 소중함을 이 루빈스타인의 연주에서 부담 없이 체득할 수 잇을 것이다. 쇼팽이 말한 낭만적이며 조용하며 약간 우울한 마음 그리고 많은 추억과 아름다운 봄날의 달밤을 연상시키는 바로 그런 연주인 것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