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과 왈츠
“쇼팽의 작품을 연주하다가 보면 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인해 울게 됩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한 슬픔, 그러한 기분이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19세기 영국 탐미주의 문학의 기수인 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1854!1900)가 남긴 말인데, 이렇게 쇼팽 음악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상적인 기분이 들게 하는 불가해한 매력이 숨 쉬고 있다. 특히 <녹턴(nocturne)>, <발라드(ballade)>, <마주르카
등의 작품에는 섬세한 감수성과 독특한 피아니즘으로 물들어 있고 동시에 애수 어린 미감(美感)은 그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다.
원래 왈츠는 ‘돌다’란 뜻의 walzen이 어원으로 18세기 중엽 독일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에서 추던 3박자의 무곡으로 독일무곡이나 렌틀러(landler)와 유사한 것이다. 남여 한 쌍이 회전하면서 추는데 너무 관능적이라 바이에른에서는 한때 금지된 적도 있었다. 그 기원은 1780년경까지 올라가며 16세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런 왈츠의 중심은 빈이었고 란너(Joesph Lanner, 1801~1843, 오스트리아)나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1804~1849, 오스트리아)에 의해 19세기 크게 유행하였다. 이런 <왈츠>는 빈의 무곡으로 실용적인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쇼팽은 이 춤곡이 양식을 빌어 피아노곡을 씀으로써 천성적인 서정주의자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런 쇼팽의 <왈츠>에는 여타 무곡에서 느낄 수 없는 멜랑꼴리한 선율과 쾌활한 리듬의 즐거움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 더불어 왈츠 자체의 빙글빙글 도는 양식을 지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쇼팽은 전 생애에 걸쳐 20곡 이상의 왈츠를 작곡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출판된 것은 불과 8곡(Op.18, Op.34, Op.42, Op.64)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유작으로 발표된 것들로 11공이 있어 통상 19곡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의 왈츠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화려한 대 왈츠(Grand valse brillante)>Op.18이나 <3개의 화려한 왈츠(Trios valse brillante)>Op.34와 같이 실제 왈츠 무곡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겨 놓은 것과, <이별의 왈츠>Op.34와 같이 단순히 왈츠라는 리듬 형식을 빌려 순수한 서정시적인 작품이 그것이다.
이런 두 가지 모두 ‘왈츠의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로 대변되는 빈의 왈츠와는 차원이 다른 작품임을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청년 시절 빈을 방문한 쇼팽은 슈트라우스의 신작 발표가 마치 유행처럼 일고 있었는데 이런 것이 쇼팽에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런 곡들은 실제 무도회에서 사용되기는 힘들어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만약 춤을 춘다면 그 상대 절반은 백작부인이어야 한다. ···쇼팽의 왈츠는 살롱의 왈츠이자 몸과 마음이 춤추는 왈츠다”
라고 하고 있다.
곡의 특징은 순수한 왈츠의 리듬보다는 마주르카의 리듬이 종종 발견되고 있고, 이것은 슬라브 민족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도 동반하고 있다. 또한 쇼팽이 추구했던 피아노의 벨칸토(bel canto)적인 주법(奏法)도 왈츠에 중요한 특색이다.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 1887~1982)은 쇼팽의 왈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어느 날 나는 친구인 화가 피카소(Pablo Picasso)의 아틀리에를 찾아 갔다.
그런데 나는 약 15개의 같은 주제의 그림을 보았다. 그래서 피카소에게 “자네 무슨 일이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자네가 이렇게 매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겠는가?”
그는 격노하며 나에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린가? 나는 매분 다른 사람이 되네. 매시간 이곳에는 새로운 빛이 비치고, 매일 나는 다른 개성을 가진 꽃병을 보네. 이건 바로 또 다른 병, 다른 탁자, 또 다른 세계 속의 다른 인생, 이렇게 모든 것이 다르네!”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파블로 자네 말이 정말 옳네. 나는 다음날 아침 모든 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자 자신을 발견했네. 나는 깨달았어.” 음악도 마찬가지지. 왜냐하면 음악은 또 다른 언어로 나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 쇼팽 왈츠의경우로 통속적으로 보이는 무곡 약 14곡 정도가 얼핏 보면 비슷비슷한 것이지만 실상은 매번 다르게 보이는 그런 다양함의 세계인 것이다. 또한 슬프도록 아름다운 쇼팽의 생(生)이 창백하고 꿈꾸는 듯한 왈츠에 담겨져 있다 하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