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페지오네(Arpeggione)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유명한 바이올린과 기타 제조업자였던 요한 게오르크 슈타우퍼(1778~1853)가 살고 있었다. 그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그 당시 수타우퍼가 디자인했던 헤드스톡 부분은 20세기의 전기 기타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에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능히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823년 오늘날 '아르페지오네'라고 알려져 있는 새로운 악기를 개발하였고, 빈 일반 음악신문 4월 30일자에 이 악기를 소개했는데, 당시 기사를 보면 '이 악기는 기타 다로므, 혹은 기타-첼로라고 부를만한 것으로 모양은 일반의 기타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지만. 음역은 훨씬 넓으며, 여섯줄이 매여져 있는 것은 기타와 같으나, 현을 기러기발로 지탱하고 있는 점과 손가락이 아닌 활로 연주하는 것은 첼로와도 같다,
소리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음량도 풍부한데, 고음은 오보에에 저음은 바샛 호른의 영역까지 미치고 더블 스톱 연주까지 가능하여 특히 반음계 악구의 연주에 잘 어울린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일반 기타와 똑같이 E-A-D-G-B-E의 순으로 조율하도록 되어 있고. 바이올린 족의 밋밋한 지판 대신 24개의 금속 기러기발로 지판이 나뉘어져 있던 이 독특한 악기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악기라고 지칭한 것은 슈타우퍼의 손에 의해 태어난 이후 현역악기로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았던 기간이 고작 10여 년에 지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 악기가 개발된 직후인 1824년 슈베르트가 이 악기를 위해 소나타를 한 곡 작곡하였을 뿐, 다른 작곡가 어느 누구도 이 악기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1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또한 아르페지오네의 독특한 음향을 사랑하는 아주 소수의 연주자들에 의해서 그 명맥이 이어져왔을 뿐이다.
슈타우퍼는 낭만주의 꽃을 피웠던 19세기의 대기를 호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페지오네 15-6세기 비올족 악기들의 음향 이론을 그대로 접목시켰는데, 사실 여기에서 아르페지오네의 수명을 단축시킨 모든 문제가 출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 시대까지 맹위를 떨쳤던 비올족의 현악기들과 기타 류트 등은 음량의 한계 때문에 바이올린족 악기들에게 오케스트라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는데, 바로크 말기인 1760년대 후반,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각지의 음악에 대해 기록을 남겼던 찻스버니도 이미 지적했듯이 그것은 이미 예견되어 왔던 것이다.
그 후, 새로운 포르테피아노의 개발 및 개량이 한참 진행된 19세기였던 만큼 아르페지오네는 볼륨이라는 물리적인 측면에서 반주 악기인 포르테피아노와 동등한 혹은 우월한 위치에 절대 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량이나 기술적인 측면을 떠나 역간 목이 쉰 듯 어슴푸레하게 들리는 아르페지오네의 울림에서 우러나오는 향기만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매력적인 악기임에 분명하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필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