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헝가리 출신의 명지휘자인 조지 셀(George Szell, 1897~1970)은 미국 안단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서 전제 군주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 황금시대를 구가하였지만 만년에 그는 자주 유럽의 악단과 여러 녹음을 남기곤 하였다. 이것은 고국을 떠난 지 오래인 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행보였다.

이런 예를 살펴보면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베토벤의 <에그몬트>(1969년)를 비롯하여,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 푸르니에(Pierre Fournier, 1906~1986)와 협연한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1962년), 암스테르담 콘서트해보우를 지휘한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1964), 슈바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1915~2006)와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 1925~)를 독창자로 하여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1968년), 그리고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슈바르츠코프와의 유명한 연주 R.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1965년)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 중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의 연주이다.

셀이 남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녹음은 단 세 가지에 지나지 않는데, 5번 교향곡을 1959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1966년 쾰른 방송 교향악단과 실황을 남기고 있고 4번 교향곡은 1962년 테카사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남겼다. 이 중 4번 연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라 할 만큼 격정의 폭풍과도 같은 연주로 숨겨진 명연에 속하는 것이다.

한편 셀과 데카사와의 레코딩 인연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피아니스트 클리포드 커즌(Clifford Curzon, 1907~1982, 영국)과 베토벤 <황제(Emperor)> 협주곡을 녹음한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 해 다시 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1951년에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해보우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교향곡 3번과 드보르작 교향곡 8번을, 1961년 런던 심포니와 헨델 조곡 <수상 음악>, <왕궁의 불꽃놀이>를, 그리고 다시 1962년에는 런던 심포니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커즌(Clifford Curzon)과 다시 녹음하면서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도 같이 녹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기 소개된 것이다. 한편 마지막으로는 앞서도 말한 1969년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 극음악 <에그몬트>를 남기게 된다.

셀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는 여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의녹음과 거의 같은 기조를 유지하면서 그가 유럽 악단에서 추구하려 했던 자연스런 흐름과 전통적인 색채의 울림을 함께 갖추고 있다.

그는 차이코프스키 곡이 지닌 일체의 진부한 감상을 훨훨 벗어 던지며 작품에 내재된 슬라브적 야성을 가식 없는 꼿꼿한 힘으로 표현하여 담백하고도 집중력 넘치는 생명력의 음악을 만들고 있다.

1악장 서두부터 콸콸 쏟아 붓는 듯한 관악의 울림이 단연 압도적으로 러시아의 광활한 감흥을 한껏 펼치고 있다. 특히 악장 끝 부분 코다(coda)에서 클라이맥스 후에 내려 깔리는 현의 무서운 울림은 전율을 느낄 만큼 충격적이라 어안이 벙벙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또한 3악장의 절도 있는 피치카토(pizzijcato)연주 후에 4악장 팡파르(fanfare)와 같은 관악의 급작스런 시작은 넋을 잃고 있다가는 깜짝 놀라게 되는 것으로 집중력 높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위력적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것이 차이코프스키가 겪었던 절망과 단념의 괴로움 그리고 비애를 지나 해방의 기쁨을 전해 주고 있다.

정평 있는 므라빈스키(Evgeny Mravinsky, 1903~1988)의 연주에서 감지되는 짙은 슬라브적 채취는 다소 덜하지만 ‘셀’만의 쾌적한 순수함과 격정 넘치는 고양은 또 다른 음악적 희열을 주는 것으로 이 곡 최고의 연주로 결코 손색이 없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