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와 교향곡 4번
오페라와 교향곡의 영역은 19세기에 와서 별도의 세계로 분할된다. 오페라와 교향곡 부분에서 동시에 명작을 탄생시킨 작곡가가 드물게 된 것이다. 슈만은 오페라에는 젬병이었고, 로시니는 교향곡에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는 모차르트 이래 교향곡과 오페라 양쪽 모두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심포니스트(symphonist)였던 것이다.
한편 러시아는 교향곡의 분야에서는 사실 변방이었다. 그러나 루빈스타인에 의해 개척되고 차이코프스키에 의해 완성된 작품들은 교향곡 레퍼토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다만 그를 ‘절충파’라든가 도는 ‘서유럽파’라고는 하지만 독일 낭만파인 멘델스존이나 슈만의 아류에 불과한 루빈스타인을 넘어 서유럽의 발전된 교향곡을 러시아만의 독특한 세계로 새롭게 전개했던 것이다.
이런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교향곡은 모두 6곡인데 흔히 1번에서 3번을 초기로 4번에서 6번까지를 후기로 나누고 있다. 하지만 4번은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말하자면 중기와도 같은 것이자 이질성이 매우 강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더불어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개인적인 인연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작곡 과정 이면에 두 여인의 삶이 해명할 수 없는 형태로 얽혀 스며 있기 때문이다.
1876년 말경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교수를 하던 36세의 차이코프스키는 45세의 폰 메크(Nadezhda Filanetovan von Mekk, 1831~1894)와 묘한 인연을 맺게 된다. 폰 메크는 철도 경영자인 남편(Karl von Mekk, 1821~1876)을 잃고 모스크바에서 가장 부유한 여인이 되었는데 음악에 의지하여 큰 위안을 얻었다. 이에 1877년부터 매년 차이코프스키에게 6천 루블(rouble, 약 30만 달러)이라는 큰돈을 제공하게 된다.
이런 그녀는 차이코프스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고 훗날 편지에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편지만 무려 1,204통을 주고받았을 뿐 한 번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기묘한 관계를 13년간이나 유지한다. 이런 관계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차이코프스키에게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77년 5월 차이코프스키는 폰 메크에게 편지를 보내
“저는 이 작품을 당신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그 안에 당신의 가장 친밀한 생각과 느낌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당신은 틀림없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밝혀 교향곡 4번의 작곡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이때 느닷없이 제2의 여성이 나타나는데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아내가 된 28세의 밀류코바(Antonina Milyukova, 1849~1917)란 여인이다. 차이코프스키와는 일면식도 없는 그녀는 협박에 가까운 편지로 청혼을 하게 된다. 이에 차이코프스키는 무슨 생각에서인지는 몰라도 같은 해 7월 덥석 결혼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결혼은 불과 2개월 만에 파경을 맞이하고 만다. 차이코프스키의 자살 기도와 함께.
이런 와중에도 그는 교향곡 4번의 작곡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이런 파경에 메크는 경제적 원조와 정신적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동생 아나톨리(Anatoly Tchaikovsky, 1850~1915)는 거의 인사불성인 차이코프스키를 데리고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 된다. 그리고 1878년 이탈리아 휴양지 산 레모(San Remo)에서 교향곡 4번을 완성시킨다. 곡은 이렇게 2년간에 걸친 파란 속에서 탄생하였던 것이다. 또 이런 시기에 나온 명작으로는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건(Eugene Onegin)>도 있었다.
초연은 1878년 2월 모스크바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y Rubinstein, 1835~1881)의 연주로 이루어져 성공을 거두었다. 곡에는 ‘나의 사랑하는 벗에게’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메크 부인을 가리킨다. 여기서 벗이라는 것은 러시아어의 남성형이어서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곡은 이런 배경 탓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변화가 심한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것이다. 또한 1879년 3월 1일자로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뚜렷한 주제 없이 기악곡을 쓸 때 갖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서정시인이 시행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듯이 모든 것을 엮어 넣은, 그러면서도 각각의 개성을 음에 쏟아 넣는, 음악적 고백입니다. 장차 쓸 작품의 실마리는 대개 느닷없이 뜻하지 않게 나타납니다.”
라고 했고, 또한 곡의 주제에 대해서는
“운명입니다. 행복의 추구를 끝내 가로막고 평안과 휴식에 다다르지 못하게 질투어린 눈으로 감시하며
다모클레스(Damokles)의 검처럼 사람의 머리를 맴돌며 영혼을 무참하게 짓밟은 자로 그 운명의 힘입니다. 이 힘은 엄청나서 거역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복종하며 헛된 울음을 터트리는 일뿐입니다.”라고 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제자 타네예프(Sergey Taneyev, 1856~1915)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교향곡에는 표제가 있지. 하지만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야. 교향곡의 목적이라는 것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나 영혼을 비집고 나와 표현을 갈구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겠나? 근본적으로 내 교향곡은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닮고 있어. 악상을 흉내 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이념을 흉내 냈다는 것이다.
자네 생각은 어떤지. 베토벤 5번에는 표제가 있던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표제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가에는 의심이 있을 수 없어. 내 교향곡에도 대체로 비슷한 이념이 깔려 있네. ····그러니까 내 교향곡에는 내가 느끼지 못한 흐름, 참되고 진실한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가락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덧붙이겠네.” 라고 하고 있어 차이코프스키 마음 깊은 곳의 숨겨진 비경을 반영하고 있는, 말하자면 불행한 시기의 고뇌의 산물이 배어 있는 음으로 쓴 자서전적인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곡은 완벽한
표제음악이 아닌 순음악적인 형식이지만 표제음악적인 성격도 가지게 된다.
곡의 각 악장에 대해 차이코프스키가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설명에 대하여는 위 작품의 구성에서 설명한 바가 있으므로 생략을 합니다.
곡 전편에는 고뇌하며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것을 냉혹하리 만큼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운명의 마수(魔手)가 전편을 지배하는데, 그래서 러시아적 선율의 리리시즘(lyricism -
그리스어 ‘lyric(서정시)’에서 유래하며, 예술적 표현의 서정성을 의미한다. 자칫하면 관념적인 영탄조로 기울어지기 쉽다. 낭만주의, 상징주의, 인상주의 등에서 주로 나타나는 시 양식의 하나인데, 오늘날에는 시나 산문, 음악을 비롯하여 예술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되고 있다)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듣는 이에게 말할 수 없는 처절한 비통감과 슬픔이 엄습한다.
결국 이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서와 같이 불행한 결혼이라는 운명을 이겨낸 것으로 그 승리 이면에는 폰 메크라는 여인과의 사랑의 힘이 드리워져 있다.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 독일)가 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음악으로 말하는 것이다’처럼.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