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현악 4중주 14번 d minor D.810 (죽음과 소녀)
작품해설
슈베르트는 모두 15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는데 24세 때에 쓴 제12번 c단조 이후의 4곡이 내용도 충실하고 그의 성숙된 음악성을 잘 보여준다. 그 중에서 이 현악 4중주 제14번 "죽음과 소녀"가 절정기에 쓰여진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다른 대부분의 실내악곡이나 기악곡에서 볼 수 있듯이 현악 4중주곡에 있어서도 슈베르트는 베토벤과는 달리 심각한 사상이나 인생관보다는 다분히 낭만적인 요소가 강해서 개인적인 감상을 노래하듯 들려준다.
현악 4중주 제14번에 "죽음과 소녀"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는 제 2악장이 슈베르트 자신이 쓴 "죽음과 소녀"라는 가곡의 반주부분을 도입해 그 음울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한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가곡 "죽음과 소녀"는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M. Claudius)라는 시인의 시에 곡이 붙여진 것인데, 죽음에 다다른 소녀와 그녀의 생명을 거두어 가려는 죽음의 사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녀의 간절한 소망, "나는 아직 어려요. 그냥 지나가 주세요."
사자의 달콤한 대답, "나는 친구란다. 괴롭히려 온 것이 아니야. 내 팔 안에서 꿈결같이 편히 잠들 수 있단다."
슈베르트가 죽기 2년 전인 29세 때 (1826년)에 완성된 이 현악 4중주 제14번은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인 다른 대부분의 소규모 곡들과는 달리 깊이 있는 사색과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형식적인 구조와 전개과정에 있어서도 두드러진 성숙도를 보여 준다. 모든 악장이 단조로 쓰여 있어 그 어둡고도 슬픈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그중 일반적으로 2악장이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강렬한 1악장이 시고니 위버가 주연한 "진실"이라는 영화에 삽입되면서 (DG 아마데우스 쿼텟 연주)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곡의 구성 및 특징
제1악장 Allegro
애수를 띤 멜로디가 힘찬 리듬으로 생기 있게 제시된다. 제1테마가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인데, 전반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감도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이지만 곳곳에서 슈베르트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죽음과의 투쟁을 나타내는 1악장은 마치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 "운명"을 연상시키는 강한 동기로 시작되며, 이 동기는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어 1악장의 성격을 지배하고 구성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무렵 슈베르트는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고 자신의 작품연주가 취소되는 등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의 생애와 연결시켜 혹자는 이 동기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번민하는 그의 "운명의 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시부는 제1주제부, 제2주제부, 종결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 1주제부를 이끌어 가는 연속된 셋잇단 음표와 강렬한 포르잔도 (forzando; fz, 세차게)는 긴박감과 초조함 그리고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어 슈베르트의 삶의 투쟁을 의미하고 있다고도 한다.
제 2주제부는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워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낭만주의 음악가 슈베르트의 인생관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첼로는 일말의 불안감을 보여 준다. 잦은 셋잇단 음표의 움직임에서 빠르고 힘찬 16분 음표로 바뀌면서 종결부로 들어간다.
제시부의 반복 후에 이어지는 전개부는 길이는 짧지만 삶과 죽음 사이의 격렬한 투쟁을 묘사하고 있고, 재현부는 앞에서 제시된 주제들을 변형시켜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마지막 코다는 마치 죽음 직전에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하다가 조용히 마무리된다.
제 2악장 Andante con moto
악장은 위에서 언급한 가곡 "죽음과 소녀"의 반주를 바탕으로 한 주제와 5개의 변주 그리고 코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애잔한 2악장은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의 작품에서 그 중심을 담당하고 있으며, 죽음과 죽음에 대한 슬픔 그리고 그것을 체념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자아낸다.
처음 주제는 마치 장송곡처럼 느릿하며 장중하게 그 어두움이 낮게 깔리며 제시된다.
뒤이은 제 1변주에서는 잔잔한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 등장하는 여리고 울먹이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심금을 울린다.
제 2변주에서는 제 1변주와는 대조적으로 바이올린이 뒤에서 16분 음표의 배경을 담당하고, 첼로가 나서서 애잔한 선율을 노래한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사이 좋게 한번씩 나서는 제1, 2변주 후 제 3변주에서는 분위기가 갑자기 힘차게 변한다. 바로 이어서 약해진 배경 위로 길고 가늘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바이올린. 그리고 다시 힘찬 선율과 반복.... 격렬함과 애절함이 함께 존재하는 이 변주는 양면성이 아닌 하나의 슬픔으로 연결되어 들린다.
연결된 셋잇단 음표를 조용히 엮어 가는 바이올린과 그것을 보조해 주는 나머지 세 악기들의 제 4변주 그리고 제 5변주는 앞 제 2변주의 첼로 선율의 변형이 첼로와 16분음표를 노래하는 바이올린으로 옮겨지며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격정적인 총주로 몰아 간다. 그 뒤 16분음표의 바이올린 위로 살포시 첼로가 얹혀진다. 코다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탄식이 느리고 길게 드리워지며 이 2악장은 끝을 맺는다.
제3악장 Scherzo (Allegro molto) & Trio
경쾌한 멜로디와 흥분된 리듬으로 제2악장과는 대조적이다. 중간에 트리오를 가진 3단으로 된 스케르쪼이다. 모든 구조는 명쾌하고 리듬은 매혹적이다.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으로 주부와 트리오 다시 주부의 재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죽음의 춤곡을 표현한다. 스타카토와 액센트 위주의 힘찬 리듬으로 전개되는 주부는 이어서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의 트리오에 자리를 양보한다. 다시 한번 처음의 주부가 고개를 내밀고는 3악장은 짧은 막을 내린다.
제 4악장 Presto
발랄하고 생기에 차 있어 로맨틱한 정취가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다. 화려함을 강조한 것은 물론 교묘한 조바꿈으로 환희의 정점에 이른다. 죽음이라든가 그에 관한 연상 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3악장의 죽음의 춤곡이 이제는 광란의 경지로 발전된다.
4악장은 주부, 중간부, 주부의 재현 , 중간부의 재현, 다시 한번 주부의 재현, 그리고 코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악장 전체가 빠르고 힘차게 진행된다. 이 4악장은 스타카토와 액센트로 숨가쁘게 노래해 나가는 주부의 주제, 그리고 포르잔도의 강한 액센트와 더불어 약간의 여유를 주는 중간부의 주제, 이 두 주제가 몇 차례 주고 받음으로써 전개된다.
중간부의 후반부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음표를 타는 바이올린은 마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유사한 선율과 활 놀림을 들려준다. 마지막 주부의 재현 후 코다 역시 빠르고 힘차게 그 끝을 향해 돌진함으로써 이 현악 4중주 제 14번은 종결을 고한다.
글 출처 : 클래식 명곡 대사전(이성삼. 세광음악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