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와 죽음과 소녀

클래식 음악의 많은 부제 중에서 <죽음과 소녀> 만큼 우리의 가슴에 와 닿은 제목이 또 있을까? 일말의 묘한 신비감과 무언지 모를 설렘을 전하는 정말로 잊지 못할 멋들어진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음악 내용에 있어서도 형언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아름다움과 처절한 슬픔이 가슴 한편에 가득히 차오른다.

슈베르트는 1810년 13세에 첫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한 이래 19세 때까지 11곡의 현악 4중주를 작곡하였고, 만년에 4곡을 더 작곡 모두 15곡의 현악 4중주를 남기고 있다. 이런 4중주곡은 베토벤과 같은 심오한 사상을 담은 것은 아니어서 전체적인 평가는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곡에 흐르는 유연한 노래는 아주 인상적이라 할 수 있고 특히 후기 작품인 제12~15번의 작품성이 나름대로 뛰어나며 그 중에서도 제14번 <죽음과 소녀>는 그 어떤 현악 4중주곡에도 손색이 없는 대표적인 걸작으로 자리한다.

이 곡은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rthias Claudius, 1740~1815)의 시(詩)에 의한 자신의 가곡 <죽음과 소녀> D 531에서 장례의 행진을 연상시키는 묵직한 4박자의 선율을 2악장에 사용하여 이 같은 부재로 불리고 있다. 당대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고 슈베르트 스스로도 출판을 꺼려 작품 번호가 없는 그의 유작(Op. post.)에 속한다.

작곡은 1824년 착수 그 해 완성되었고 개인적인 초연은 1826년 빈의 음악 애호가 바르트(Josef Barth)집에서 열었다.
그리고 다시 친구였던 작곡가 라흐너(Franz Lachner, 1803~1890)의 집에서 슈판치히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하였는데,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 1776~1830, 오스트리아)는 “현악 4중주도 아니며 연주도 가능하지 않다”는 혹평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 작품 등을 연주한 그들이 이 작품에 실망했다는 것은 지금으로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편 라흐너는 “친구여 이 작품은 과히 좋지 않군, 그러나 걱정 말게, 자네에게는 가곡이 있지 않은가?”라는 말로 위로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슈베르트는 악보를 책상서랍에 넣어 두었고 생전에는 연주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후 5년 뒤 1833년 베를린에서 카를 모저(Karl Moser, 1774~1851)의 현악 4중주단에 의해 처음으로 공개 연주되었다.

슈베르트는 그의 일기장에서 “나의 음악은 고뇌에서 나왔고 그 괴로움 속에서 쓴 작품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다”라고 회고하고 있는데 이런 그의 생각을 가장 극명하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이 <죽음과 소녀>인 것이다.

제1악장은 애수에 젖은 멜로디가 힘찬 리듬으로 생기 있게 제시되며 제1주제는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의 1악장 운명의 동기를 연상시킨다. 특히 비수와도 같은 낭만적 정취가 가득하다.

2악장은 유명한 <죽음과 소녀>의 주제인데 죽음의 신은 소녀를 자기의 제물로 삼으려 하는데 소녀는 아직 젊으니 해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지만 신은 ‘너를 내 품에서 쉬게 해 주겠노라’고 대답한다. 그 비극적인 비통함이 마치 아름다운 꿈결의 감미로운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3악장은 2악장과는 대조적으로 경쾌하고 흥분된 리듬을 가진 매혹적인 악장이다.

4악장은 소녀에게 남아 있는 생명의 마지막이듯이 죽음의 춤인 광란의 타란텔라(tarantella) 리듬이 격렬하게 펼쳐지면서 돌연 죽음의 조용한 그늘이 엄습해 온다. 특히 피날레 부분에서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 시(詩)에 의한 그의 가곡 <마왕(Erlkonig)> D328을 인용하고 있다. 이 악장의 주제는 마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Kreutzer)>의 피날레와 많이 닮아 있기도 해 이채를 띠고 있다. 특히 성악가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 1925~ , 독일)는 3, 4악장을 ‘죽음의 악장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결국 슈베르트는 죽음과 구원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음악적으로 의역한 것이다. 또한 작품의 내용은 죽음을 묘사한 것으로 가곡의 희유적인 결론으로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죽음의 본질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작곡가의 인간적인 진솔한 고백, 자신의 죽음을 예감, 구원의 이미지, 절망적인 분위기를 표출함으로써 슈베르트는 이렇게 자신의 종말에 스스로 동참하고 말았던 것이다.

<죽음과 소녀>! 부제가 주는 인상만큼이나 소녀와 죽음의 신이 대화하는 아름답고 처절한 감흥이 깊게 남는 현악 4중주의 절품이다. 가련한 소녀의 죽음의 그림자를 표현한 이 4중주는 슈베르트의 짧은 생의 아쉬움을 처절한 절규로서 항변하는 불멸의 명곡으로 우리의 뇌리에 깊게 각인될 것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