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찌고이네르바이젠이라는 곡은 단순한 바이올린 소품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곡상이 마치 신파조의 저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이런 분위기가 주는 음악적 감흥은 만인의 심금을 깊게 울리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런 감흥 또한 음악적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런 곡인만큼 연주는 아주 진부하고 단출한 것일 수 있으나, 곡에 내재된 슬픔과 정열을 진정한 음악적 감흥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곡의 단순한 내용처럼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이페츠가 남긴 연주를 맨 처음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곡의 명연으로는 레빈(Michael Rabin, 1936~1972), 프란체스카티(Zino Francescatti, 1902~1991), 펄만(Itzhak Perman, 1945~ ), 리치(Ruggiero Ricci, 1918~ ), 장영주(1980~ ), 무터(Anne-Sophie Mutter, 1963~ )가 있으나 결코 하이페츠가 보여준 강렬한 감흥을 따라오지 못한다. 다만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 바샤 프리쉬호다(Vasa Prihoda, 1900~1960, 체코)의 매혹적인 연주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작곡자인 사라사테 자신의 연주(1905년)는 박력과 정열이 넘치기보다는 매혹적인 조형, 순수한 양식, 찬란한 음색 그리고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페트의 연주는 그의 날카롭고 귀신같은 뛰어난 기교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곡에 매우 잘 부합되고 있고 이 곡의 최고 연주로서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작곡가 자신의 연주에서는 찾기 힘든 높은 정열과 극적 화려함으로 곡에 새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해도 좋을 만큼 출중한 것이다.
첫 부분부터 강렬하게 다가서는 연주는 매우 깊은 인산을 심어주게 된다. 폐부를 가르는 듯한 바이올린 선율은 비극적인 감정을 마음껏 느끼게 해 주고, 신출귀몰하는 기교는 너무도 황홀하여 눈이 부실 지경이다. 또한 애절함과 긴박감을 동시에 전해 주는 뛰어난 음악적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애틋한 애상에 젖어 드는 분위기 역시 감동의 폭을 더해 준다.
한마디로 가슴이 찢어질 듯한 울부짖는 극단적 바이올린 울림이 카타르시스로 이어져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한다. 그리고 스타인버그(William Steinberg, 1899~1978, 독일)의 지휘도 이런 하이페트의 연주를 충실히 받쳐주고 있다.
하이페츠 자신은 말하기를 ‘이 연주에서 목소리에 가까운 진한 울림과 흐느낌을 강정의 고조가 아닌 기교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말하자면 진정한 기교를 통한 음악적 감흥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테크닉으로 승부하고 있다고 할지 모르나 하이페츠 자신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이페트에게 있어 진정한 기교란 음악적 감수성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한편 하이페츠는 바비롤리)John Barbirolli, 1899~1970, 영국)와의 연주(EMI, 1937년)도 남기고 있는데 이것 역시 훌륭한 연주로 기록된다.
1937년의 연주 들어보기스타인버그와의 신 녹음에 비해 다소 격정이 덜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이페트의 날카로운 기운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특히 바이올린이 두터운 질감에 빛나고 있어 또 다른 호연으로도 결코 손색없는 것이기도 하다.
음반은 LP 시절 여러 종류가 있으나 우표 그림 음반이 가장 유명하며 <바이올린 소품집(VIOLIN SHOWPIECS)>이란 제목으로 재킷 한구석의 하이페크 캐리커처가 아주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