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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테너 라일랜드 엔절의 동명타이틀 크로스오버 데뷔앨범 Ryland Angel

"그의 목소리는 하나의 신비이다. 너무나 완벽한 데다 역동성이 가득하다. 공명이 클 뿐만 아니라 폭 넓은 음역의 처리가 돋보인다. 더구나 그는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새로운 '장식'으로 노래에 창조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다. 매우 부드럽고 편안하게 숨을 들이 쉬어 지속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것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사라지는지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에게 '파리넬리'로 잘 알려진 카스트라토 카를로 브로스키(1705~1782)에 대해서 동시대 성악 교수 만시니가 남긴 기록이다.

카스트라토는 여자 가수만큼이나 달콤하고 부드럽게 노래 부를 줄 알았으나 그 목소리는 여자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활기있고 지속적이었다고 한다.

'마치 소년 성가대의 목소리처럼 깨끗하고 예리하나 음량에 있어서는 훨씬 크고 강렬하며 뭔가 건조하고 톡 쏘는 듯하면서도 찬란하고 밝고 강렬한 인상으로 가득 찬 뭔가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카스트라토(Castrato)란 소프라노나 콘트랄토 음역을 보존하기 위해 사춘기 이전에 거세당한 남자 성악가를 일컫는 용어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 '무지코(musico)'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카스트라토를 자칭했다. 보다 완곡한 표현인 '에비라토(evirato)' 역시 통용되었다.

당시 모든 성악가는 교회에 소속돼 고용되어 활동하던 시기였으며 교회 내에서 여성의 노래를 금지한 '법'으로 인해 등장할 수 있었던 카스트라토. 그들은 대부분 고아 출신이거나 부모가 훗날 돌아올 영광과 보수를 생각하고 거세를 동의한 가난한 집의 소년들 중에서 선발되었다.

18세기 유렵에서는 대략 4천 명이나 되는 소년들에게 거세가 자행되었다고 한다.

카스트라토에 대한 엄청난 수요는 18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모차르트는 '이도메네요'(1781)에서의 이디만테스 역과 '티토 왕의 자비'(1791)에서의 섹스투스 역을 카스트라토를 위해 썼다. 특히 청아한 아리아인 '알렐루야'가 들어있는 모테트 '엑슐타테 유빌라테' K165 역시 그의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카스트라토였던 라우치니를 위해 작곡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카스트라토의 생명력은 거의 소진되어 버린다. 19세기 초반 카스트라토는 로시니와 마이어베어의 몇 안되는 오페라, 그것도 단역에만 등장한다. 마이어베어의 '이집트의 십자군'(1824)이 카스트라토를 위하여 작곡된 마지막으로 주목을 받은 오페라였고, 아르만도 역을 부른 조반니 바티스타 벨루티(1780~1861)가 남성 소프라노 중 마지막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인물이었다.

교황청의 마지막 카스트라토는 알렉산드로 모레스키(1858~1922)였다.
모레스키는 1883~1913년까지 시스티나 성가대 일원이었다. 1902~1903년에 걸쳐 다행히도 그가 남길 수 있었던 레코딩 음반을 통해 형편없는 음질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이면서 묘하게 영적인 모레스키의 뛰어난 음성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1903년 카스트라토는 교황 파우스 10세에 의해 교황청 성가대에서 공식적으로 완전히 금지되었다.

카스트라토에서 카운터테너로

화려했던 카스트라토의 시대가 저물고 한참 뒤 재등장한 남성 알토를 우리는 현재 카운터테너라고 부른다.
그 이름은 르네상스 시대 폴리포니 음악 양식에서 테너 성부 바로 위에 놓였던 '콘트라 테너'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음반에 따라서는 카운터테너 대신 콘트라테너(Kontratenor)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독일에서는 실제로 이 단어를 쓰고 있다.

카운터테너는 가성을 사용함으로써 점차 여성의 음역에 가까워지고 현재 여성의 알토나 메조소프라노음역에 해당되는 소리를 내게 되었으므로 음악사에서는 그냥 '남성 알토(Male-Alto)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 높은 음역에 도달할 경우 남성 소프라노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알프레드 델러 같은 가수를 오트 콩트르(Haute-Contr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말은 가벼운 하이테너에게도 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기존의 모든 용어를 배제하고 소리 내는 방식을 중요시하여 '팔세티스트(Falsettist ; 가성을 사용한다는 뜻)라고 부른다.

최초의 카운터테너 알프레드 델러(1912~1979)는 28세때 캔터베리 사원의 합창단으로 들어갔는데 영국 작곡가 마이클 티펫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발탁했다.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은 델러의 목소리에 반해 자신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에 요정의 왕 오베론을 카운터테너를 위한 역으로 만들어 델리에게 초연케 하고 녹음도 했다.

델러를 잇는 2세대 카운터테너로는 제임스 보우만과 르네 야콥스를 들 수 있다.
보우만(1941년생)은브리튼의 '베니스에서 죽다'의 아폴로의 목소리 역을 맡았으며 데이비드 먼로가 시작한 정격연주의 초기 작업에도 참가했다. 르네 야콥스는 벨기에 태생(1946)이며 알프레드 델러를 직접 사사했다. 야콥스는 르네상스 시대 류트 음악보다는 카스트라토 시대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요즘은 원전 연주 지휘자로 더욱 활발한 모습이다.

시기적으로 이들보다 약간 뒤졌지만 마이클 챈스는 뛰어난 기량으로 수많은 음반들을 양산했으며, 챈스 이후 3세대 카운터 테너들로는 아리스 크리스토펠리스, 데릭 리 레이긴, 브라이언 아사와, 안드레아스 숄, 요헌 코발스키, 티모시 윌슨, 데이비드 다니엘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원전연주의 일반화로 수없이 많은 걸출한 가운터테너들이 저마다 실력을 뽑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도 카운터네너 정세훈이 등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며 카운터테너라는 생소했던 용어를 대중화 시켰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라일랜드(Ryland Angel) 역시 여러 클래식 음반에서 두각을 나타낸 카운터테너이다.

카운터 테너 라이랜드 엔젤

라일랜드 엔젤은 영국의 브리스톨 출신이다. 그는 브리스톨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라일랜드의 부친은 신학자이자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이었고, 모친은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았다. 클래식 음악에 뿌리를 두었지만 라일랜드는 팝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코르크(Korg) M1 키보드 (스쿨 록밴드들이 많이 쓰는 연주용 키보드)를 사기 위해 돈을 모을 정도였다.

라일랜드는 나중에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률을 공부했다. 학비를 대기 위해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때 나는 고작 일곱 곡 정도 밖에는 몰랐죠" 라일랜드는 말한다. "즉흥연주를 하면서 아주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인기가 오르고 신청곡이 쇄도하면서 그만 두어야 했죠."

그 때 라일랜드는 법 공부는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깨달았다. 라일랜드는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태어났음을 분명히 확신했다.

라일랜드는 파리로 건너가 심도 있게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라일랜드는 컨테키 출신으로 나중에 오스틴에서 함께 작업을 하게 되는 브라이스 존스를 만난다. 드디어 라일랜드는 필하모니아 바로크 오케스트라, 뉴욕 고음악 앙상블, 레자르 프롤리상 등 수 많은 일류 앙상블들과 협연 하게 된다. 또한 뉴욕 시티 오페라, 영국 국립 오페라(ENO), 카네기 홀, 파리 국립 오페라, 외에도 수많은 명소에서 중요한 카운터네너 레퍼토리로 공연했다.

그리고 라일랜드는 거점을 뉴욕으로 옮겼다. 현재 그는 시간을 쪼개 파리와 맨하튼을 오가면서 생활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 장르에서 경력은 나무랄 데 없이 무르익은 그는 팝 분야에서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원했다. 작곡가 에드 베넷을 만난 라일랜드는 베넷이 자신의 비전을 제대로 이해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들 둘의 공동작업은 막강했다.

라일랜드는 텍사스로 날아가 작사가인 존슨을 만났다. 존슨과 오스틴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라일랜드는 음악적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간간이 적어 두기도 했다. 라일랜드는 몇 곡의 데모 테이프를 미리 만들어 두었기에, 자신과 사인 하도록 맨해튼 레코드를 설득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라일랜드의 녹음 팀에는 프로듀서이자 편곡자인 크레이그 레온도 있었다.
그는 런던의 예비 로드 스튜디오에 들러 음반의 대부분을 녹음했다. 라일랜드는 단지 폴 메카트니가 사용하던 마이크로폰을 찾기 위해 스튜디오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레온과 존슨은 그 모습을 보며 활짝 웃었다고 전해진다.

라일랜드 엔젤은 여전히 클래식 장르의 콘서트에서도 바쁜 스케줄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래미상의 클래식 부분의 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라일랜드는 좀더 많은 시간을 팝 음악에, 크로스오버에 쏟으려고 계획 중이다. 투어나 TV광고등 홍보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열심이다.

물론, 클래식 음악이란 장르가 주는 안정감을 박차고 나와 뭔가 새롭고 다른 것을 찾아 헤매는 것에는뭔가 위험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라일랜드 엔젤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고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희망의 메세지를 담은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멜로디가 여러분들에게 뭔가 의미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싱어송라이트로서 라일랜드 엔젤은 제임스 테일러(You've Got a Friend를 부른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에서 제임스 블러트(자동차 CF에 나오는 'You're Beautiful'의 주인공)까지의 연속체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라일랜드가 르네상스음악과 바로크 음악에 가진 애정은 그의 위상을 독특하게 세워 놓는다.

라일랜드와 에드 베넷이 함께 작곡한 곡을 담은 이번 CD는 오랜 기간동안 창조적인 과정의 최정점이라 할 만하다. "상이한 아이디어들이 합료하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의 사운드는 2년 전부터 내 머리 속에서 구체화되었던 그것입니다."

그 '사운드'란 다성음악적인 하모니, 어쿠스틱, 그리고 전자음악의 화려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일랜드의 비범한 보컬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라일랜드는 테너 음과 카운터테너(고도로 훈련된 팔세토)음으로 모두 노래한다. 특히 고대 음악의 전통에서 바로 튀어나오는 듯한 순수한 목소리가 돋보인다. 라일랜드는 이번 앨범에서 이러한 음악적 전통을 십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노래들은 그가 칭찬하는 콜드플레이에서 비틀스에 이르기까지 팝적인 스타일로 채워졌다.

팝을 향기 끼, 클래식의 내공으로 견인하다.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면 별이 뜬 밤 달을 바라보며 멀리 있는 연인을 생각하고 잃어버린 사랑을 아쉬워하는 내용의 'By The Light'가 흘러 나온다. 'By The Light'는 라일랜드의 동생 앤드류가 가사를 썼다. 이슬이 내릴듯 차갑고 투명한 달밤이 느껴지는 이 곡은 존 다울랜드의 류트 가곡을 연상시키고 어쩐지 중동 풍의 분위기도 가미돼 있다.

칼라 보토프나 이지의 노래로 많이 들었던 아일랜드 민요 'The Water is Wide'는 아마도 이 음반에서 가장 익숙한 곡일 것이다. 영국인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한 아일랜드인들의 봉기를 그린 곡이지만 라일랜드는 여기서 감정을 싣기보다는 원전 연주에서의 성악가들처럼 담담하게 시대를 고증하듯 노래한다. 귓가에 와닿는 그의 목소리가 따스하다.

중첩되는 아일랜드의 음성은 마치 전아하게 울리는 고악기 트럼펫과 목관악기 소리 같다.
앨범에서 가장 놀라운 곡 중 하나인 'Fina a Way to Tou'는 스케일 큰 극적인 분위기와 발산되는 반짝이는 매력이 합류하고 있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계에서의 활동을 지켜보아 온 라일랜드의 '외도'에 대해 부정적이고 냉정하며 회의적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트랙이 있다면 바로 이 곡이 될 것이다. "사랑을 찾는 곡입니다. 행복을 통해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그런 내용이죠."

이어지는 'Broken Heart'는 여러 목소리의 층이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장면을 경험할 수 있다. 라일랜드의 남동생 앤드류 엔젤이 작곡에 함께 참여했다.
'Your Kiss'는 구약 성서중의 하나인 아가(芽歌) (Song of Songs)에서 영감을 받은 곡인데,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찬양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라일랜드는 'My Dream'에서 또 한번 코랄 하모니를 우아한 멜로디 위에 펼치고 있다.

부드럽고 상냥한 '압솔롬'은 유명한 성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에요. 아버지는 작별인사를 고할 기회를 갖지 못하죠. 가사는 슬프지만 음악은 한껏 우리를 고양시킵니다." 신학자의 아들로 자란 라일랜드는 고대의 전례 기도문을 친근하게 느겼는데, '이뉴스 데이'나 '아베 마리아'는 라틴어로 부르면서 엄숙하고도 헌신적인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Jesu, Redemptor'에서 라일랜드는 졸리 그린리프, 도미니크 수어 같은 가수들과 노래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텍스터와 마감을 보태고 있다. 거의 성가처럼 다정하게 부른 'The Water is Wide'에서도 이와 같은 성격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러나 귓전에 메아리치는 라틴어 전례문에도 불구하고, 라일랜드는 이번 앨범이 전적으로 팝 앨범이라고 말한다. "저는 이번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역할, 그리고 욕망에 대해서 곡을 썼습니다." 라일랜드는 지적한다. "영향을 받은 부분은 정말 많습니다. 중세음악, 그레고리안 성가, 바로크와 현대음악까지, 저의 컨셉트는 이러한 오래된 사운드와 싱어송라이터의 스타일이 믹스된 새로운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데 있었습니다."

요즘 20대는 말할 것도 없고 3~40대 남성 중에서도 종래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은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엠니스 족(Man의 'M'에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 'ness'를 붙인 신조어로 전통적으로 남성의 특징으로 여겨지던 힘, 명예 등 특성에 여성적인 요소라고 간주되던 양육, 소통, 협력 등을 조화시킨 남성상)이 뜨고 있다. 여성의 전유물로 느껴졌던 부드러움이 남성의 미덕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이미 검증 받은 라일랜드 엔젤의 이번 크로스오버 앨범은 거부감 없는 남성의 부드러움을 음악으로써 잘 드러내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글. 류태형 (월간 '객석' 편집장)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바다위의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