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과 교향곡 제3번

18세기 이성주의에 반대되는 감성적인 성격의 낭만주의(浪漫主義)는 19세기 이전부터 시작된 문화, 예술, 철학적 사조(思潮)이다.

음악에서는 고전파에 반대되는 것으로 이런 낭만주의가 음악에 도입된 것은 19세기라고 하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도 이미 도입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고전파에서 낭만파로 이어지는 연속적 개념의 사조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낭만주의 음악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멘델스존이나 슈만 이후의 일이라 하겠다.

이런 멘델스존은 모두 5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교향곡의 번호와 작곡 순서와는 다르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번호상으론 3번이지만 실제 작곡은 그의 말년인 죽기 5년 전인 1842년에 작곡된 최후의 교향곡이다. 더구나 곡의 첫 착상은 13년 전인 182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해 5월 멘델스존은 그의 교향곡 1번을 연주를 위해 처음 영국을 방문하였고 3개월 동안 체류한 뒤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하게 된다. 스코틀랜드는 그가 평소 스코트(Sir Walter Scott, 1771~1832, 스코틀랜드)의 소설 『웨이벌리(Waverley)』나 시(詩)를 통해 동경하고 있던 그런 곳이기도 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의 옛 왕성인 홀리루드를 둘러 본 뒤 다음과 같은 편지를 가족에게 쓴다.
“우리 일행은 해 질 녘에 홀리루드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매리 스튜어트 여왕(Mary Stuart Queen of Scot., 1542~1587)이 살았고 사랑하던 곳이다.
이런 성에서 꼭 봐야할 곳은 나선형 계단 위의 작은 방인데, 살해자들은 이 계단을 올라가 여왕의 총신인 데이비드 리치오를 발견하곤 그를 끌어내 방 세 개를 지나 좁고 어두컴컴한 모퉁이에서 그를 죽인 것이다.

그 옆에 있는 예배당은 지금도 지붕이 없고 풀과 담장이가 무성해 있지만 그곳의 부서진 계단 앞에서 매리 여왕이 즉위했던 곳이기도 하다. 주변은 모두 부서져 버려 퇴락하였고 맑은 하늘이 보이는 구멍도 뚫려 있다. 나는 오늘 여기서 교향곡 〈스코틀랜드〉의 첫 부분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1년 뒤인 1830년 로마에서 작곡에 착수하게 된다. 하지만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Gewandhausorchester Leipzig)지휘자가 되는 등 바쁜 활동으로 33세인 1842년 1월 비로소 곡을 완성하게 된다. 초연은 1842년 3월 자신이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6월 영국을 방문 런던 필하모닉 협회에서 연주하였고 이때 당시 영국 여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정하였는데, 그녀는 단두대의 이술로 사라진 매리 여왕의 마지막 9대째 자손이었다.

곡은 교향곡 4번 〈이탈리아(Italian)〉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닌 그 정서를 음으로 표출한 것이다. 구성은 4악장의 구성으로 그의 e단조 바이올린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전 악장이 끊이지 않고 연주되는데,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이 싫었는지 아니면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이나 이 곡보다 3개월 먼저 초연 된 슈만의 4번 교향곡의 영향을 받았는지 확실치 않다. 아마도 낭만적인 흐름과 환상의 실마리를 끊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고 추측된다.

1악장은 회고적인 환상을 전하듯이 명상적인 서정미가 돋보인다. 2악장은 고전적인 느린 악장이 아닌 농민들의 즐거움을 표현하듯 스케르초(scherzo)를 배치하였고, 3악장은 스코틀랜드의 깊은 자연과 신비하고 우울한 그리고 황량한 고성(古城)을 느끼게 하는 아다지오(adagio)를 배치하였다. 이것은 고전적 교향곡의 전형을 깨는 것이었다. 그리고 4악장은 찬란하고 힘찬 화려함을 표현한다.

이런 〈스코틀랜드〉는 멘델스존의 특기인 선율의 아름다움, 고전적인 구성의 균형미 그리고 유연한 흐름의 시적(詩的) 환상미가 멋진 조화를 이룬 낭만주의 걸작이라 하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