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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명연주 이야기

스위스 출신의 지휘자인 페터 마크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해도 좋을 만큼 우리에게 아주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 1877~1962, 프랑스)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지휘는 같은 스위스 출신의 거장 지휘자 앙세르메(Ernest Ansermet, 1883~1969)의 가르침을 받았다.

젊은 시절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 지휘자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 1886~1954, 독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Emperor)〉를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푸르트벵글러가 지휘를 권유하여 본격적인 지휘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며 주로 오페라 연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흔히 그를 푸르트벵글러의 마지막 제자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왕성한 활동 중 잠적하여 수도원에서 칩거를 한 적도 있었다.

이런 경력이 그에 대한 전부라 할 정도이지만, 그가 남긴 멘델스존 교향곡 〈스코틀랜드〉 연주는 이 곡 최고의 연주로 자리 잡으며 페터 마크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아주 유명한 것이다. 또한 그의 주목할 만한 연주로는 1950년대 초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모차르트 교향곡 제28, 29, 34번과 세레나데 〈포스트호른(Posthorn)〉,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모차르트 교향곡 제32, 38번, 〈세레나타 노투르나(Serenata notturna)〉, 〈노투르노(Notturno)〉, 클라리넷 협주곡, 호른 협주곡(DECCA), 그리고 만년(晩年)에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과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집(ARTS)이 있다.

마크는 흔히 모차르트 전문가로도 칭송되나 그의 본령은 역시 멘델스존이라 할 것이다. 그의 멘델스존에 대한 열의는 작고한 해에 멘델스존 교향곡 전집을 출반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의 연주는 익히 알려진 최고의 것이며, 특히 〈스코틀랜드〉연주는 여타 지휘자들의 좋은 연주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것이 바로 마크의 연주인 것이다. 그의 〈스코틀랜드〉연주는 모두 3종이 소개되고 있다. 스테레오 초기에 런던 심포니와의 1960년 녹음, 1986년 베른 심포니와의 녹음(CARLTON, 마드리드 심포니와의 전집 녹음 중 1997년 연주(ARTAS)이다.

이 중 베른 심포니와의 연주도 훌륭한 것이나 데가(DECCA) 클래식 사운드의 음질이 돋보인 1960년 연주를 제일로 추천한다.

마크의 연주는 전체적으로 약간 느긋하게 템포를 잡고 있으며, 선율의 부각과 울림이 매우 그윽하여 무릇 깊이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좀 더 웅장한 스케일감이 있었으면 하지만, 균형이라는 측면과 차분한 정서의 표출면에서는 오히려 큰 설득력을 발휘한다. 또한 연주 자체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어 그의 뛰어난 지휘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깊이 있는 선율의 부각, 곡의 환상미, 애수(哀愁)에 젖은 듯한 자연스런 감흥은 듣는 이로 하여금 독특한 도취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향기 그윽한 연주를 들려준다. 이런 남다른 감흥의 표출은 단순한 스코틀랜드 풍물의 ㅣ묘사가 아닌 지난날 스코틀랜드 여왕 매리의 비극적 생애와 황혼의 폐허를 연상케 하는 적적한 슬픔의 흔적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마크의 연주는 멘델스존이 스코트의 시와 소설에서 접한 동경의 땅인 스코틀랜드의 본질적 모습을 깊은 음악적 정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결국 이런 배경을 음악에 담아낸 마크의 뛰어난 해석이 있기에 깊은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며, 여타 풍물을 뛰어나게 묘사하는 연주가 쉽게 범할 수 없는 고고한 경지인 것이다.

음반은 LP시절부터 놀라운 음질의 데가 사운드를 대표하는 것이며 같이 수록된 〈한여름 밤의 꿈〉의 연주 역시 잊지 못할 깊은 감동을 전한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