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쇼팽의 녹턴은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를 하였고 명반이랄 수 있는 앨범도 많이 출품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 소개되는 탁월한 쇼팽 전문가로 알려진 루빈스타인의 연주는 그 탁월한 기량에 새삼 놀라게 되는 보편적이며 가장 최고로 손꼽는 음반이다. -이곳에서는 단조곡 9곡만 소개를 한다 ―

그는 전 21곡 중 작품 번호가 밭지 않은 유작인 두 곡을 뺀 통상의 19만을 담고 있다.
녹음은 모노(mono) 시대부터 모두 세 번에 걸쳐 남기고 있다. 1936~37년(EMI), 1949~50년 그리고 여기 소개되는 것은 1965년 스테레오 녹음이다.

그의 세 가지 녹음은 모두 독특한 따스함과 간절한 음악의 표현이 여전하지만 템포는 조금씩 다르다. 1949년 녹음은 1936년보다 몇 곡은 빠르지만 대부분 더 느린 템포를 취한다.

그리고 마지막 1965년 녹음은 1949년의 느림을 여전히 유지하며 빠르게 연주된 곡도 느려져서, 전체적으로 3회 녹음 중 가장 템포가 느려진다.

첫 번째 녹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또한 가장 간결한 표현을 보여주며, 두 번째 녹음은 다소 건조하고 성급한 경향을 나타낸다. 반면 세 번째 녹음은 형식에 대한 통찰력과 낭만주의적 모호함을 루바토(rubato)를 통해 해결하는데, 미묘한 단위 템포 변화를 통해 긴장감에 의한 선율적인 표정을 표출한다. 결국 가장 완성도 높은 최상의 연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또한 녹턴 음악이 갖는 본질인 황혼의 음악 그리고 혼자만의 음악임을 생각할 때, 루빈스타인이 50대, 60대 그리고 70대 후반의 나이인 78세 때 세 번째 녹음에서 창조자의 시정과 고통을 그러내면서 녹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가 말한 낙엽 소리의 고요한 천둥과도 같은······.

연주는 어느 곡이나 할 것 없이 풍부한 정서와 정감이 언제나 충만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녹턴이란 곡상 때문에 자칫 감정과 정서적으로 흐르기 쉬우나 루빈스타인은 살롱 음악적 취향을 지양한 억제된 조용한 표정 속에서 다스하고 조화로운 음감의 풍부한 맛을 풍기고 있어 야상곡이 가지는 근본적인 내면적인 깊이를 뛰어나게 표출하고 있다.

흔히 진부한 감상주의로 흐르는 여타 연주의 통속적인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 깔끔하면서도 윤기 흐르는 투명감과, 광채는 내뿜는 선이 굵은 무게감의 터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런 관록 있는 농후함의 표현은 녹턴 음악의 미감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쇼팽이 추구한 음악적 본질에 맞닿아 있게 된다. 이렇듯 루빈스타인의 낭만적이고 풍부한 시정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한껏 드러내면서도 고고한 품격을 결코 잃지 않은 연주는 그만의 독보적인 경지인 것이다.

곡의 시작인 제1번 Op.9-1 라르게토(larghetto)의 아련한 감흥이 압도적으로 전편을 수놓고 있으며, 유명한 제2번 Op.9-2 안단테(andante)에서의 차분한 아름다움 역시 빼어난 미감의 연주를 들려준다. - 이 곳에서는 생략이 되었다 -

단조곡인 7번 Op.27-1 라르게토(larghetto)는 야상곡답지 않은 슬픔의 어두움을 담고 있고, 11번 Op.37-1 안단테 소스테누토(andante-sostenuto)는 절제된 정확한 루바토가 돋보인다.

특히 전곡을 통해 가장 감동적인 연주인 13번 Op.48-1 렌토(lento)는 진지한 지성미의 흐름이 단연 돋보여 거장다운 풍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또한 슬픔을 고귀한 심정에 담아 웅대하고 장려한 정서를 표현하여 보여주는 고독한 시정(詩情)의 잔잔한 전율을 맛보게 된다. 마치 쇼팽의 삶의 모습을 대하기라도 하듯이…….

루빈스타인의 <녹턴>은 단순한 유희적인 측면으로의 연주가 아니라 마음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영혼의 숨결을 접하게 되는 준엄한 감동의 역작(力作)인 것이다. 이러한 위대함은 단순한 기교적 화려함이나 얄팍한 치장으로는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탁월한 예술혼의 궁극인 것이다. 살포시 묻어나는 사랑과 탄식 그리고 고독한 여운의 연주에는 분명 녹턴 그 이상의 숭고한 격조의 예술적 감흥이 내재되어 있다.

루빈스타인이라는 한 인간의 참다운 음악의 진실성이 이렇게 절절히 우리네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