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와 교향곡 1번
고전파 시대에 하이든은 무려 108곡의 교향곡을 탄생시키며 ‘교향곡의 아버지’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교향곡의 틀을 완전히 정착시켜 놓았다. 결국 고전파 시대의 산물이라고까지 일컫게 되는 교향곡을 하이든이 완벽한 형태로 기초를 만든 것이며 특히 4악장 체제를 확립시켰다.
이후 모차르트가 41곡의 교향곡을 작곡함으로써 하이든이 다져놓은 교향곡의 가치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그리고 베토벤이 교향곡을 최고봉으로 이끈 위대한 성과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바로 9곡의 교향곡으로······.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가 오면서 바그너는 절대음악의 쇠퇴를 말하며 ‘교향곡은 베토벤으로 끝났다’라고 하면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만들게 된다.
바로 이때 다시 고전적 형태의 교향곡을 들고 나온 이가 바로 브람스였던 것이다. 그는 비록 4개의 교향곡만을 남기고 있지만 그 가치는 매우 놓은 것으로 이후에 나타난 교향곡 작곡가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브람스의 제1번 교향곡은 유명한 지휘자인 한스 본 뵐로(Hans von Bulow, 1830~1894, 독일)가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의 위치에 있을 만한 훌륭한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또한 당시 음악 학자이자 지휘자인 크레츠 슈마르(Hermann Kretzschmar, 1848~1924, 독일)도 “이 교향곡은 예술가의 가장 의미 깊은 작품이며,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이후에 쓰인 가장 뛰어난 교향적인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바로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직품은 ‘제10번 교향곡’으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라고 하고 있다. 이런 것은 작품의 위대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의 내용과 기법에 있어서 베토벤 교향곡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먼저 조성인 c단조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같다. 표현 면에서 보면 암흑에서 광명으로 가는 혹은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로 이끌어 가는 투쟁 정신이 마치 베토벤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가 있다. 특히 1악장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1악정과, 4악장은 베토벤 9번의 4악장과는 매우 비슷한 멜로디가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브람스는 ‘바보 같은 사람들 귀에는 같게 들린다.’는 말로 이런 유사성을 일축해 버렸다고 한다. 베토벤은 남부 독일의 개방적인 호방함을 표출하였고, 브람스는 북구 독일 함부르크 지방의 어둡고 흐린 분위기를 나타낸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인 것이다. 더불어 이 두 교향곡은 약 50년의 세월의 추이와 작곡 수법 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브람스 전기를 쓴 칼베크(Max Kalbeck, 1850~1921, 독일)는 브람스가 교향곡 1번을 작곡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855년 22세 때 고향 함부르크에서 슈만의 <만프레드(Manfred)> 서곡 Op.115를 듣고 나서부터였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 ‘교향곡이라는 것이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이 못된다’라고 말했고 또한 베토벤이 남긴 아홉 개의 교향곡을 늘 의식하며 ‘등 뒤에서 베토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라고 했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22세 때 품은 교향곡의 작곡은 그의 신중한 성격 탓에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았다. 첫 시작은 아마도 슈만이 라인 강에 투신하기 얼마 전인 1854년 하노버에서로, 두 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의 3개 악장을 스케치하였는데, 당시 슈만의 기ㅛ향곡 4번을 요하임(Joseph Joachim, 1831~1907, 헝가리)의 지휘로 듣고 더욱 자극을 받게 된다. 그래서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했고 교향곡의 제1악장으로 완성한다.
그러나 새롭게 다시 1악장을 쓰고 먼저 쓴 것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1악장으로 남겨둔다. 한편 1악장은 29세 때 1862년 일단 완성되지만 현재와 같은 완만한 서주는 없었다고 친구이자 음악가인 디트리히(Albert Hermann Dietrich, 1829~1908)가 전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12년 후인 41세인 1874년 본격적으로 작곡에 임해 2년 뒤 1876년 43세 때 드디어 교향곡 1번을 완성하게 된다. 작곡을 결심, 완성에까지 무려 21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1876년 행해진 초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뷜로에 의해 제10번 교향곡이라는 찬사를 이끌어 냈다. 앞서 지적했듯이 베토벤이 남긴 아홉 개의 교향곡에 버금가는 교향곡을 만들고자 하였고 그래서 오랜 기간 신중을 기해 여러 번 고친 매우 공을 들인 것으로 결국 베토벤의 것과 어깨를 나란히 할 명작으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1악장 팀파니의 서주가 인상적인데 중후한 느낌이 일품이며 특히 충실한 의지의 힘이 느껴지는데 마치 비극의 서막과도 같다. 2악장 역시 비극적인 그림자가 가득한 우울한 분위기로 최후에 바이올린 독주가 인상 깊다. 3악장은 베토벤의 전통에 의하면 스케르초(scherzo)가 되어야 하나 이를 피하고 독특한 수법을 쓰는 소박한 즐거움이 있는 간주곡풍이다. 한편 4악장은 박력에 찬 승리로의 행진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으로 브람스 특유의 색채로 빚어내는 준엄한 환호가 있다. 이 주제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 매우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기뻐하면서도 명상하는 듯한 그런 승리라 하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