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우리는 중후함을 극명하게 나타내어 가장 독일적이라 할 브람스 교향곡 1번의 연주를 거론할 때 이례적으로 프랑스 출신의 뮌쉬(Charles Munch, 1891~1968)가 프랑스 악단인 파이 오케스트라(Orchestre de Paris)를 지휘한 음반을 최고 지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것은 브람스라는 독일적 음악에 프랑스적 색채감이라는 획기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독일적인 것을 훨씬 뛰어넘는 정열과 웅장함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명연주가 창출되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더 독일적인 연주라고도 한다. 그것은 관현악의 어택(attack)이나 리듬이 작위적이지 않고 인간미가 서려있어 오히려 더 독일풍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독일적이라고 하기보다는, 화려한 색채감이 강렬함 속에 융화되어 생동감 넘치는 당당한 위풍과 뜨거운 열기가 브람스가 그리는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하는 음악적 높은 완성도와 타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뮌쉬는 프랑스 알사스(Alsace)의 스트라스부르그(Strasbrrg)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당시 독일령이었고 그의 집안은 독일계로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와는 친척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으로 볼 때 그가 프랑스 음악뿐 아니라 독일 음악 연주에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혈통으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녹음은 뮌쉬가 1967년 새로 창단된 파리 오케스트라를 맡아 처음으로 녹음한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의 명녹음을 탄생시킨 바로 1년 후 1968년 두 번째 녹음으로 발매 당시 LP 재킷의 오케스트라 전경 사진도 유사하여 마치 쌍둥이 격의 뮌쉬의 대표 음반으로 자리한다.

또한 <환상 교향곡>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구녹음(RCA)을 남겼듯이 브람스 교향곡 1번 역시 보스턴 심포니와 구녹음을 남겼다. 이 1956년 구녹음은 파이 오케스트라와의 극적 표현과는 완전히 다른 연주를 선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볼레로>, <스페인 광시곡>을 녹음했는데, 같은 해 그의 마지막 생을 장식하는 소중한 연주들로 기록된다.

그의 지휘는 만년에 들어서 굵은 필치로 음악적 움직임이 격렬하고 힘에 넘쳤으며, 그러면서도 신선한 감흥을 잘 전해주었다. 특히 프랑스풍의 세련됨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그의 예풍(藝風)이 극명하게 발휘된 것이 바로 여기의 브람스 1번인 것이다.

뮌쉬는 독일적인 중후함보다는 남성적인 낭만이 충만한 환성적인 연주를 펼친다. 동적인 지휘로 자유로운 완급의 조절을 통해 울려 퍼지는 팀파니의 회강타 그리고 짙은 그늘의 표정을 보여준다. 1악장 알레그로 서두부터 극적 표출력의 당당한 울림에 압도되는 정열이 있고, 템포 역시 빠름과 느림을 유효적절하게 구사하며, 촘촘한 구성력도 매우 정교하다.

또한 곡의 흐름도 유창하고 거침이 없는 시원스런 진행으로 치닫는다. 이런 진행 속에서 타오르는 정열의 활기와 긴밀한 앙상블 그리고 잔잔한 노래에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것이 없다. 오케스트라의 기능 역시 창단 직후의 악단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최상의 수준을 유지한다. 특히 뮌쉬의 뜨거운 애정과 열렬한 공감은 4악장 알레그로 말미에서 절정의 극치를 이루며 격렬한 환호의 폭풍우 같이 압도하는 박력은 전무후무하여, 이런 환희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뮌쉬 연주는 프랑스적 색채감이 중후한 브람스 작품 성격에 스며들어 놀랄 만한 격정으로 상승적인 효과를 이루어 낸 이 곡 최고의 환상적인 연주로서, 그 확고한 명성은 세월이 아무리 흐르더라도 정상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것이다. 뮌쉬가 이 녹음 후 얼마 안 있어 타계한 것이라 노대가(老大家)의 마지막 생을 불사르는 예술적 투혼에 그만 숙연해질 따름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