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소개하는 녹음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창립 125주년을 기념하여 녹음한 것으로 빌헬름 박하우스와 칼 뵘(Karl Bohm)이라는 두 거장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소중한 연주이다.

박하우스는 이 곡을 이미 1939년 칼 뵘이 지휘하는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Staatskapelle Dresden)과 연주를 갖은 일이 있었고, 1952년에는 또 다른 거장 지휘자인 슈리히트(Carl Schuricht, 1880~1967)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남기고 있다.

또한 슈리히트와는 1958년 연주한 것이 하나 더 있고,
1964년에는 빈 페스티벌에서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의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연주도 있다.

칼 뵘의 충실한 반주가 돋보인 1967년 녹음이 더욱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리고 1968년 뵘과의 빈 필하모닉 실황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렇듯 이 곡에 관한 한 우리는 박하우스라는 거장 피아니스트의 오랜 세월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륜을 실감케 된다.

녹음 당시 박하우스는 이미 80세를 넘어선 최만년의 죽기 2년 전이었다. 뵘 역시 73세의 만년이라 연주 사상 유례없는 기념비적인 녹음이 되는 셈이다. 나이로 보면 할아버지들의 연주이지만 젊음의 활력과 기교를 초월하는 원숙함은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비범함이 있다. 여기에는 당시 빈 필하모닉의 악장이자 병 바이올리니스트인 빌리 보스코프스키(Willi Boskovsky, 1909~1991, 오스트리아)의 일조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첫 1악장 잔잔한 호른 독주와 피아노의 서주 이후 관현악의 웅장한 울림부터 뛰어난 기량에 압도되어 좋은 연주가 되지 않을 수 없음을 직감하게 된다. 뵘의 연주는 성급하지 않은 한가로운 템포와 완급 속에서도 품격의 호쾌함이 단연 돋보이고 있다.

피아노의 박하우스 역시 달관의 경지와도 같은 여유와 적적한 울림으로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다. 더욱이 3악장 안단테의 애잔한 첼로 솔로와 피아노의 고독에 넘쳐나는 대화가 참으로 절묘하기만 하다.

대가들의 긴 세월의 흐름을 통해 얻어지는 예술의 완숙한 경지는 인생의 풍요로움과 여유 그리고 유유자적하는 혜안을 엿볼 수 있다. 단순한 스케일과 힘의 표출이 아닌 내면의 깊이를 파헤치며 이것을 고고한 완벽의 경지로 이끄는 이들의 경륜에는 새삼 고개를 떨구게 된다. 더욱이 협연의 이상적 균형감은 협주곡의 규범이라 할 수 있어, 탁월한 융합의 일치감은 최고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과연 대가라는 칭송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브람스의 독일적이며 고담스런 음악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고, 따스하고 청순한 서정이 아련히 그려지고 있다. 위대한 두 비르투오조(virtuoso)가 이룩한 하나의 위업이라 할 연주로 그 웅혼한 기상에 매료되는 것이다.

협주곡 1번이 청춘의 시절을 나타낸 것이라면, 협주곡 2번은 나이 50을 바라보며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느낀 브람스 자신의 여유와 풍모가 담겨 있기에 만년에 접어든 두 대가들의 연주가 더욱 뜻이 깊은 것이다.

인생의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그 여정의 뿌듯함을 스스럼없이 느끼며 만연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노대가들의 연주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될 것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