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와 클라리넷 5중주

브람스는 1890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57세 때에는 거의 창작 활동을 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이 무렵 그는 작곡가로서 상당한 지위에 올랐고,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또한 작곡을 위한 영감의 부족으로 인해 대곡을 쓰지 못했고,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의 개작이나 소품 등을 작곡하며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 50이 넘도록 독신이었고, 또한 주위의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접하자 자신도 이를 대비,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고 유언장을 준비하려 하였다. 말하자면 삶과 죽음 사이의 짧은 시간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영광스런 휴식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브람스에게 다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가끔씩 들르던 마이닝겐(Meiningen) 궁정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주자인 뮐펠트(Richard Muhlffeld, 1856~1907, 독일)와의 만남이다. 또한 당시 마이닝겐 오케스트라는 음악 감독인 뷜로에 의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었다.

뮐펠트는 유명한 클라리넷 주자였고, 특히 감성적인 연주로 명성이 높아 당대 바이올린의 거장이던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 헝가리)조차 자신보다 뮐펠트가 표현력에 있어서 낫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뮐펠트의 감미로운 연주를 들은 브람스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에 다시금 창작의 기치를 들게 되고 바로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클라리넷 5중주 Op.115이다. 이외에도 일련의 클라리넷 작품 즉, 클라리넷 3중주 Op.114, 클라리넷 소나타 Op.120-1,2 모두가 이 뮐펠트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곡들이다.

모차르트가 슈타틀러(Anton Stadler, 1753~1812, 오스트리아)를 위해 클라리넷 5중주 K.581고하 클라리넷 협주곡 K.622나 베버가 베르만을 위해 두 곡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클라리넷 5중주를 작곡한 예와 같은 것으로, 모차르트가 클라리넷 협주곡을 쓴 지 정확히 100년 후 1891년 브람스가 클라리넷 5중주를 쓰게 된 것이다.

만년의 걸작인 이 클라리넷 5중주는 일체의 허식을 버린 진지하고도 고독한 작품으로 원숙하고 절제된 필치 그리고 그 내성적인울림이 듣는 이의 가슴에 와 닿는다. 특히 인생의 황혼기에 느끼는 가라앉은 체관, 가슴을 찢는 듯한 비애가 담담하고도 차분히 펼쳐진다.

회고적인 동경, 고즈넉한 적적함, 애처로운 과거로의 추억, 이 모두가 인생을 관조하는 경지

프랑스의 음악 비평가 로스탕(Claude Rostand, 1912~1970)은 이 곡에 대해
“마치 회고록을 써 내려가듯, 브람스는 이 곡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다.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시간들과 더불어, 이런 회고적인 감정은 우울함의 결과가 아니라 다름 아닌 감정인데 그것은 독일인들이 ‘Welschmerz'로 불렸던 세계의 슬픔 내지는 감상적인 염세 감정으로 동시대의 많은 예술가들을 세기말적 염세주의(厭世主義)로 몰아넣은 것이기도 했다”
라고 하고 있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