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브람스 클라리넷 5중주는 전편을 통해 드러나는 체념에 찬 우수가 일품으로 이 곡과 비견되는 곡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브람스의 우수(憂愁)를 극명하게 그려낸 연주는 매우 드물 뿐 아니라. 곡 자체의 분위기를 밝은 쪽으로 해석하는 연주가 범람하기도 한다.
바로 여기의 블라흐와 빈 콘체르트하우스 현악 4중주단(Wiener Konzerthaus Quartet)의 연주가 가장 극명한 브람스적 우수를 처절하고도 구슬프게 표현해 내고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연주로 자리하게 된다.
빈 출신의 명(名) 클라리넷 주자인 레오폴드 블라흐는 빈 음악원을 나와 1928년 이래로 1956년 죽을 때까지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로 활동하며 당대를 풍미했다.
알프레드 보스코프스키(Alfred Boskovsky, 1913~ )나 프린츠(Alfred Prinz, 1930~ , 오스트리아)와 같은 명인들 역시 그의 제자이다.
그의 연주에는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없는 빈 풍의 고아한 음색과 내면에 간직된 풍부한 뉘앙스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런 블라흐의 명연(名演)으로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과 5중주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브람스 클라리넷 5중주, 브람스 클라리넷 소나타 연주가 대표적인 연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블라흐의 악기는 현재 널이 쓰이고 있는 프랑스식이라고 하는 뵘식의 악기가 아니고 19세기 빈에서 애용되던 독일식이라고 하는 알버트식이어서 특유의 우수가 서린 음색이 더욱 돋보이고 있다. 또한 이 곡의 창작의 계기가 되었던 인물인 뮐펠트가 사용한 악기도 오텟슈타이너가 만들 바로 이 독일식이었던 것이다.
첫 악장인 알레그로부터 현악에 이끌려 등장하는 클라리넷 선율의 울림은 감명스럽기 그지없어 이런 비장미 넘치는 울림을 과연 어느 누가 이토록 구구절절이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이렇듯 풍부한 정서를 갖춘 유려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선율에는 청초한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는 특유의 잿빛을 머금은 듯 빛나는 매혹적인 클라리넷의 음색이 듣는 이의 가슴을 어루만지면 깊은 감동을 전한다.
또한 3악장의 촉촉한 감미로움과 4악장의 구성진 울림은 하염없는 상념을 드리운다. 한편 같이 연주를 하는 빈 콘체르트하우스 현악 4중주단의 고풍스럽고 직감적인 연주 역시 곡의 적적한 정서를 더욱 부각시켜 주고 있다.
브람스 내면의 어둡고도 쓸쓸한 외로움의 심경 토로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전설적인 연주로, 브람스가 말한 ‘회색빛을 띤 클라리넷 5중주’가 바로 블라흐의 연주가 아닐까 한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