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연주 이야기

연주는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도전의 시금석이 될 위치에 있어 1920년대에 최초로 에네스코(George Enesco, 1881~1955, 루마니아)가 BWV 1003을, 1932년 시게티(Joseph Szigeti, 1892~1973, 헝가리)가 BWV 1001, 1003 두 곡을 녹음했고, 불세출의 천재 메뉴인(Yehudi Menuhin, 1916~1999)이 1934년에 18세의 나이로 최초로 전곡 녹음을 남겼다. 또한 에네스코도 전곡 녹음을 1948년경에 내놓았다.

이후 여러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앞 다투어 녹음을 내놓고 있어 종류가 매우 방대한데, 모든 주자들이 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나 그 중 하나의 명반을 고르라면 모노시절부터 많은 대가에 이르는 수많은 연주 중에서 주저 없이 셰링(Henryk Szeryng, 1918~1988, 폴란드)의 연주를 들 것이다.

물론 다른 더 좋은 연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 연주가 가지는 보편타당성의 해석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넘치는 깊이와 충분한 정열이 있기 때문이다.

셰링은 이미 모노 시절인 1955년 전곡 녹음(SONY)을 내놓았고 이후 10년이 더 흐른 뒤 재녹음을 내놓아 구녹음을 능가하는 것으로 자리한다. 물론 이 두 가지 녹음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다소 무의미하지만 음질과 좀 더 원숙함을 겸비한 신녹음을 추천한다.

연주는 먼저 기교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기량과 안정감으로 펼치는 품격의 웅장함이 압도한다. 깔끔한 소리의 마무리보다는 하나하나 여음들의 길이를 충분히 울리고 있어 다소 부담스러운 소지도 갖고 있으나, 오히려 이것이 여유와 깊이를 더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전통적이며 교과서적인 면도 있지만 내명에서 꿈틀대며 뜨겁게 일궈 내는 정념의 장엄함이 전곡을 휘감고 있어 곡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할 것이다. 조금은 낭만적 해석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 속에는 준엄하고도 정형화된 정통을 고수하는 비범함이 함께 한다. 특히 음색의 윤기와 넉넉한 울림은 격조 높은 세계를 접하게 한다.

널리 알려진 ‘샤콘느’의 연주는 향기 그윽한 비극적 울림으로 영원으로 비상하는 감동을 전한다. 누구나 다 연주하여 음반을 내는 피상적인 얄팍한 자세가 아닌 진지함이 본질에 육박하여 빚어내는 거대한 영혼의 깊이가 무반주의 무한한 상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