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1716년 쾨텐(Cothen)의 레오폴드(Frust von Anhalt-Kothen Leopokl, 1694 ~ 1728)제후는 그의 누이와 바이마르(Weimar) 영주가 결혼할 당시 영주에게 고용된 바흐를 만나게 된다. 레오폴드는 음악적 소양이 아주 풍부한 인물로 자신의 새 악단을 맡아줄 사람으로 바흐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 해 에로폴드의 23번째 생일날 바흐는 이런 쾨텐의 궁정악장직을 수락하게 된다.

당시 바흐는 바이마르 궁정 악단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마침 공석인 바이마르의 궁정악장이 되길 희망했다. 하지만 전임 지휘자의 아들이 그 직을 맡게 되고 이에 실망하였던 것이다. 이런 차에 쾨텐 궁정악장직 제의를 받은 그는 바이마르를 그만두고 쾨텐으로 옮길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당시 바이마르 영주인 에른스트(Wihelm Ernst, 1662~1728) 공작은 그의 사직을 만류했고 이를 뿌리치는 바흐는 1717년 11월 약 한 달간 불복종죄로 감옥에 구속되었다 풀려났던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은 바흐에게는 쾨텐 궁정악장 시절이 매우 행복한 시절이었는데 ‘무반주 첼로 조곡’이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집 그리고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탄생한 시기이다.

흔히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라고 불리는 이 곡은 <통주저음이 없는 바이올린을 위한 6개의 솔로, 제1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720년>이란 제목을 베를린 국립 도서관에 소장된 자필 악보에서 볼 수 있는데, 1720년은 작곡 연도가 아닌 정서 연도로 1720년 이전 작곡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1집이라고 했기에 또 다른 작품이 있을 거란 추측도 가능한데 현재 다른 작품은 발견된 바 없다. 그래서 2집이 ‘무반주 첼로 조곡’이라는 설도 있다.

바흐는 이 곡의 착상을 같은 독일권 작곡가인 피젠델, 비버, 텔레만, 발터, 베스트호프 등이 남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들에서 하게 된다. 특히 바이올린의 명수로 알려진 피젠델은 그가 죽었을 때 바흐가 애도의 시를 남길 만큼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비버의 <로자리오 소나타> 중 별도로 작곡된 16번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사칼리아(Passcaglia)>는 파르티타 3번 중 ‘샤콘느(Chaconne)'의 모델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은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작곡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히 곡의 연주가 무척 어려워 당시 누가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담만 드레스덴 궁정악장이나 쾨텐 궁정의 악장 슈피스(Joseph Spiess) 아니면 앞서 말한 피젠델을 위한 것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 곡은 바흐 스스로를 위한 곡이었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바흐는 흔히 뛰어난 오르간 주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에도 매우 능통했다. 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듯이 그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직장도 바이마르 궁정의 바이올린 주자였다. 이런 사실은 영국의 음악학자 펄버(Jeffrey Pulver, 1884~1970)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바흐’란 글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데 레오폴드공이 챔발로 연주를 할 때면 바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곤 했다.

한편 19세기에는 무반주란 것이 이상한 형태로 여겨졌다. 그래서 곡의 악보를 처음으로 출판한 라이프치히 제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opzig) 악장인 다비드는 멘델스존과 반주를 붙여 연주하였고 슈만도 이런 것을 악보로 출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 헝가리)은 이 곡이 무반주임을 강조 반드시 무반주로 연주해야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런 곡은 바흐 스스로가 ‘어려운 기교를 익힌 후에’라고 했고 또 그의 아들 C. P. E.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는 “어느 유명한 바이올린 주자가 내게 말하길 훌륭한 바이올린 주자가 되고자 또 배우고 있는 이들에게 이 작품들보다 더 완벽하고 더 좋은 작품은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교육적 목적의 곡이지만 강력한 대위법, 폭발적인 표현력과 유연함으로 풍부한 음악적 굴곡과 감정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깊이와 따스함 그리고 동시에 엄숙한 감정의 조화로운 표현을 필요로 하고 있기에 단순한 기교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고 연주가 자신의 전인격적인 수양과 비범한 상상력 그리고 높은 정신세계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4~1989)는 ‘악보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극단적 표현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바흐가 반주가 있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반주인 이 곡이 더욱 널리 알려져 애청되고 있다. 그것은 무반주임에도 중음부법을 이용한 풍부한 울림으로 마치 저음이 밑받침하고 있는 듯한 환상적이고 넉넉한 여음의 효과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반주로서도 완벽한 작품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단순한 연습을 위한 고난도의 곡이 아니라 바이올린이란 악기의 음악적 가능성의 극한을 추구하여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킨 바이올린의 성서라 하겠다.

파르티타 2번 d단조는 마치 침울한 의식 같은 것으로 특히 마지막 5악장 ‘샤콘느’는 딴 악기로 편곡될 만큼 높은 음악적 가치를 지닌 변주 형식의 걸작으로 곡을 더욱 유명하게 하고 있다. 더욱이 이 곡에 대해서 바흐 전기 작가 슈피타(Julius August Philipp Spitta, 1841~1894, 독일)는 그의 저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서 “샤콘느는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이다. 아무리 위대한 바흐라 할지라도 이보다 빛나는 것을 두 번 쓰지 못했다.”라고 격찬하고 있다.

또한 브람스도 “가장 경이롭고 신비스런 작품의 하나이다. 하나의 작은 악기를 위해 가장 심원한 사상과 가장 강력한 감정을 남김없이 표출하고 있다. 하나의 작은 악기를 위해 가장 심원한 사상과 가장 강력한 감정을 남김없이 표출하고 있다. 내가 혹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면 나는 흥분과 감동에 벅차 미쳐 버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브람스는 이런 샤콘느를 왼손만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바 있고 부조니의 피아노 독주 편곡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