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반주 첼로 모음곡 (BWV1007~1012)

Ⅰ.곡에 관하여
  이 곡은 그의 창작열이 가장 고조되던 쾨텐시기(1717~1723)의 작품이다.

이 시기는 바흐에게 있어서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한 때였다. 이때 많은 기악곡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그 시기의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 영향이 크다고 한다.

비슷한 형태의 곡인 무반주 바이올린곡이나 무반주 플룻 파르티타 곡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보다 30여년 전에 작곡된 최초의 무반주 형태인 첼로곡인 가브리엘리(D. Gabrielli)의 리체르카레(Ricercare/ 1689)가 있는 것을 보면, 무반주 첼로 형태의 이러한 기악곡도 다른 무반주 작품(예컨대, 무반주 바이올린곡)처럼 바흐 스스로가 창조한 영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무반주 모음곡은 바로크 모음곡의 성과를 종합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 6곡의 모음곡들을 분석해 보면, 그 모음곡들 중 5개만(제1번~5번)이 첼로를 위한 것이었다.
6번째 모음곡 D장조는 바흐 자신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비올라 폼포사(viola pomposa)라는 악기를 위한 곡이라고 전해져 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즉 바흐는 5현의 비올라 폼포사라는 이런 악기를 발명하지도 않았으며, 바흐의 작품이 이 악기로 연주되었을 가능성 또한 낮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여러 사용 예를 들어 비올론 첼로 피콜로라는 5현 악기의 사용을 주장한다. 현재 원전연주를 보면 이 6번 모음곡을 비올론 첼로 피콜로로 연주하는 것(안너 빌스마나 비스펠베이등의 원전연주자들이 이를 지지)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6번도 현대 첼로로 어렵사리 연주할 수 있지만, 비올론 첼로 피콜로로 연주하면 좀더 풍성한 맛을 주는 장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바로크시대에는 춤곡 형식을 사용하여 곡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였었다. 바흐의 경우도 이러한 무곡을 사용한 것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데, 그에 이르면 단순한 무곡이 아니라 더욱 음악적으로 승화되어 다가올 고전파 음악의 터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형식적으로도 순음악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그 내용도 점차 인간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었다.

바로크시기의 무곡은 알레망드, 쿠랑트, 사라방드와 지그로 연결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바흐는 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미뉴에트.부레.가보트등의 전통적인 다른 무곡을 사라방드와 지그 사이에 제각기 제5곡으로 배치하여 형식에 변화를 꾀하였으며, 전주곡을 서두에 부가하여 곡의 도입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선율악기에 반주가 필요한 기본적 이유는 음악적 진행에 있어서 화성의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기능 때문이라고 한다. 바이올린과 마찬가지로 첼로라는 악기는 기본적으로 선율 악기로서 반주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이른바 비자족적인 악기이다. 즉 홀로서기가 힘든 악기이다.

이런 사실을 바흐도 모를 리 만무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반주곡에서 발휘된 그의 음악적 역량은 최고의 모험이자 실험정신의 산물이다.

선율라인을 유지하면서 화성적인 맛을 부여하고 대위법적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인접한 사용가능한 현을 총동원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3줄 더 나아가 4줄 까지도 동시에 연주하도록 작곡하고 있는데, 이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무반주 바이올린곡도 마찬가지이지만)의 작곡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곡 연주시에는 연주자의 높은 음악성이 요구된다.

선율미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화성적인 조화와 대위법적인 느낌을 표현해야 하고 나아가 음악의 내용도 채워야 하므로 2중 3중의 어려움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주의 테크닉에 있어서도 활을 현에 최대한 밀착시키고 건반 악기적인 시각에서 연주할 것을 기본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악보를 놓고 보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무반주 바이올린곡에 비하면 보다 단순하고 대위법적인 면에서도 그 정교성이 덜함을 알 수 있다. 무반주 바이올린곡의 샤콘느 악장이나 푸가 악장을 보면 그것은 확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바흐는 첼로 선율자체의 심오하고 두툼한 음색의 아름다움으로 극복하고 있다.

그 음악적 결과는 성공적이며, 또한 카리스마 같은 대중적 사랑을 향유하고 있다. 다만 무반주 바이올린곡이 그 분야에서 비교적 확고한 해석의 틀이 닦여 있다고 상정한다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첼리스트들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매진해야 할 숙제라 할 것이다. 특히 원전연주 분야에서는 더욱더 많은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Ⅱ.파블로 카잘스와 무반주 첼로 모음곡
1876년 스페인의 카탈로니아에서 태어난 카잘스는 11세무렵 첼로의 인간미 넘치는 선율에 매료된 이래 한평생을 첼로와 같이 한 음악가이다.

그는 현대 첼로의 연주에 있어서 솔로 악기로서의 진정한 모습과 가능성을 부각시킨 첼리스트로 인정 받고있다. 또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발굴과 연주및 최초의 레코딩등도 그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드는 신화적 일들일 것이다.

그는 질곡같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시절을 거치면서 고뇌의 삶을 살기도 하였다. 음악 여정 중에 카잘스는 일류의 멤버들과 실내악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만년에는 지휘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80세의 나이에 20세의 제자 ‘마르티타 몬테스‘와 결혼 하여 크게 회자된 일도 있었다. 그는 1973년 96세의 나이로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토리코에서 타계했다.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악기점에서 카잘스에 의해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바흐의 음악을 살찌운 위대한 발견이었다. 바흐가 죽은 1750년을 기산점으로 하더라도 근 140여년 가까이 사장되어 있었음을 알수 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진정한 주인을 제대로 만난 셈이었다.
마태수난곡이 멘델스존에 의해서 그 의미가 재부여 되거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글렌굴드에 의해 대중에 각인되어 그 의미가 재발견 되었듯이, 이곡도 카잘스에 의해 발견되고 생명력이 부여되어, 지금까지도 카잘스의 분신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가 이곡에 부여한 연주의 규범은 많은 첼리스트들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첼로의 경우는 연주자세도 바이올린보다 훨씬 불리하며, 활의 인장력도 높아 힘의 안배도 문제가 되며 또한 연주시 잡음(명반으로 대접받는 야노스 슈타커의 무반주 첼로를 들어보라!)이 많이 나는 악기자체의 문제 때문에 바이올린에 비해 그때까지도 열등한 대접을 받았다.(협주곡의 수와 위상을 보라!)

그런데 이런 문제점들이 카잘스에 의해 많은 부분 해결 되었다. 그의 덕택으로 첼로라는 악기가 가장 인간적인 악기로 새로 태어나게 한 것이다. 첼로가 노래하는 부드럽고 남성적인 울림이 그냥은 얻어 진 것이 아니라 카잘스라는 음악가의 각고의 노력의 산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의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역사적인 무반주 첼로 레코딩은 그를 첼로의 성자로 까지 규정하게 한다.

카잘스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한 이래 거의 매일 연구와 연주에 몰두하여 12년 정도 지난후 비로소 공개연주회를 가졌다 한다. 그 후 다시 35년 정도 지나서 그의 역사적인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녹음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음반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논함에 있어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될 시금석이 되고 있다.

현재 많은 첼리스트들이 이곡에 도전하고 있지만 그와 필적할만한 음반은 그다지 많다고 보지 않는다.
그의 연주를 들어 보면 낭만적인 면, 엄정한 면, 순수한 면이 자연스럽게 배합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카잘스 이후의 연주를 들어보면, 어떠한 시각을 달리하는 연주도 카잘스가 세워 놓은 해석의 틀 아래에 놓여 있음을 알수 있다. 그의 음반의 훌륭함은 60년 넘게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그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영원할 것이다.

Ⅲ.무반주 첼로 모음곡 감상에 도움이 될 이야기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는 전주곡 - 알레망드 - 쿠랑트 - 사라방드 - 미뉴에트/부레/가보트 - 지그 등이 각 모음곡마다 순서대로 사용되어져 있다. 음악 감상을 위해 아래에 간단한 핵심적인 특징을 기술해 보았다. 이것만 알고 있으면 감상에 별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제1곡/ 프렐류드(Prelude)
곡의 특징은 대부분 도입적 성격을 지니며, 자유스럽고 즉흥적인 분위기를 띤다.

제2곡/ 알레망드(Allemande)
독일에서 유래한 춤곡. 신중한 느낌. 멜로딕하다. 알레그로와 모데라토 사이의 적당한 빠르기의 속도를 지니고 있다. 연주자에 따라 느리거나 빠르게 연주될 수 있다.

제3곡/ 쿠랑트(Courante)
빠른 속도의 춤곡. 정치한 느낌. 리드미컬한 느낌.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빠른 형식이 특징인 이태리식[코렌테(Corrente)]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약간 느린 형식의 프랑스식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의 쿠랑트는 일반적으로 빠른 속도로 연주된다.

제4곡/ 사라방드(Sarabande)
스페인에서 유래한 장중하고 무거운 느낌을 깔고 있는 3/4박자의 느린 춤곡이다. 아다지오 악장처럼 명상적인 정서를 깔고 있다.

제5곡:미뉴에트(제1,2번)/ 부레(제3,4번)/ 가보트(제5,6번)
①미뉴에트(Minuett)
     프랑스무곡. 귀족적이며 우아한 느낌을 주는 다소 빠른 형태의 춤곡이다.
②부레(Bourree)
     프랑스 무곡. 빠르고, 안정된 경쾌한 춤곡. 류트 모음곡 제1번에 사용된 부레는 다소 비트있는 박자와 선율로 인해 현대 락음악에서 원용되기도 한다.
③가보트(Gavotte)
     프랑스에서 유래한 2/2/박자의 활달한 춤곡이다.

제6곡/ 지그(Gigue)
영국에서 유행했던 빠른 춤곡. 분위기의 상큼한 전환. 피날레적 성격을 띤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 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