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풍경화 사계 中 가을(가을아침)

KBS 클래식 FM과 아울로스 미디어가 함께 그린 음악풍경화 - ‘사계’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단풍잎처럼 사무치게 우리 가슴을 물들이는 가을의 음악


봄날 오후의 설렘, 여름밤의 추억, 가을 아침의 투명한 서정, 그리고 겨울 저녁의 침묵. 그들과의 동행 ...

12년 전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 . .

12년 전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시간을 뛰어넘어 1998년으로 되돌아간다. 낡은 책장 속의 오래된 책들이 시간의 흔적만큼 정겨운 책 내음을 품고 있듯이 음반 속의 글도, 사진도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안의 음악들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예전과 너무나 달라진 첨단의 미디어 시대, 마음만 먹으면 어떤 경로든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 시대에 옛 음반을 다시 세상에 내어놓으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라디오이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라디오에 기대는 아날로그적인 정서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나 또한 라디오를 친구삼아 젊은 날을 보냈고, 지금도 여전히 라디오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사계' 음반은 라디오와 더불어 시간을 보내고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업이었다. 12년 전 '사계 시리즈'를 만드는 동안 경험했던 행복한 고통들을 떠올려 본다. 모스크바에서 차이코프스키 콩쿨을 취재할 때 만났던 사람들의 소박하고도 깊은 음악사랑. 자신들이 가진 가장 깨끗한 옷을 차려 입고 성스러운 표정으로 음악회장으로 들어서던 그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 눈빛엔 이념도, 가난도 없었다. 오로지 음악에 대한 사랑만이 넘쳤다.

클래식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리라. 오랜 세월 변함없는 친구처럼, 작은 물결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배처럼 깊이와 넓이를 가진 음악. 이 음반이 애청자들 곁에서 오랜 친구처럼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사계 시리즈'를 다시 준비하면서 지키려 했던 가장 큰 원칙은 '아쉬움이 있더라도 첫 번째 작업의 흐름을 그대로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저작권이나 음원 사용에 변동이 생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연주자나 곡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가을'의 타이틀곡으로 발매 당시 화제를 모았던 Inessa Galante의 Ave Maria를 싣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몇 년 전 레코드실에서 발견한 보석같은 Irina Arhipova의 Ave Maria를 대신 담게 되어서 역설적인 기쁨을 느낀다. 메조소프라노와 오르간, 트럼펫, 그리고 성당의 깊은 울림이 또 다른 감동을 주리라 생각한다. 이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이 최고의 명반, 최고의 명연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보다 많은 애청자들이 클래식에 한걸음 다가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내 방송생활 25년,
나의 젊음을 관통한 클래식 FM과 함께한 시간이 이 안에 응축되어 있다.
이 겨울, 나는 참 행복하다.
이 음반을 다시, 클래식을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께 내어 놓을 수 있어서.....
글. - 프로듀서 김혜선